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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용기있는 지도자 김영삼 전 대통령

온라인 중앙일보 2015.11.22 04:56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한 축이다. 한국의 현대사가 그렇듯이 그는 길고 험한 여정을 걸어왔다. 시련과 도전, 투쟁과 타협 그리고 영광과 실패의 여정이다.

한국인에게 그는 '와이에스'였고 3김이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의 화신'이었다. 비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닥쳐도, 그는 항상 한국 정치의 한 복판에 서있었다. 1951년 최연소 국회의원서부터 98년대통령 퇴임까지 47년 동안 그는 정치를 떠난 적이 없다. 박정희 유신정권이 국회에서 쫓아내도, 전두환의 신군부가 자택에 가두어도 그는 결코 민주화 투쟁의 현장을 벗어난 적이 없는 '한국의 정치인'이었다.

와이에스(YS)라는 애칭은 그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것이다. 그는 온 몸으로 현대사를 겪었다. 일제 시대에 태어났고, 해방된 조국에서 대학에 들어갔으며,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국회의원이 됐다. 산업화-근대화-민주화를 거치면서 그는 9선을 기록했다. 사실상 '영원한 기록'이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민주화 지도자였으며, 3김 시대의 주역이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근대화 대통령 박정희가 한 축이라면 YS는 김대중(DJ)과 함께 현대사의 또 다른 축이다. 그가 없었더라면 한국의 민주화는 많이 늦춰졌을 것이다. YS의 꽉 다문 입은 고래힘줄 같은 의지를 상징하곤 했다.

실제로 고래힘줄처럼 그는 강인하게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다. 그는 적잖은 시련을 겪었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3선개헌을 반대하다가 초산 테러를 당했고, 79년 유신 말기에는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됐다. 80년대 초반엔 신군부가 그의 정치활동을 막았다.하지만 그는 고래힘줄처럼 버텼고 오뚜기처럼 일어섰다. 79년 그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쳤다.

국민은 부산과 마산에서 봉기했고 결국 유신 정권은 막을 내렸다. 80년대 가택연금됐지만 그는 싸웠다. 민주산악회를 만들고, 23일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였다. 결국 85년 2.12 총선으로 야당이 살아났다. YS는 93년 문민대통령이 됐고 한국 정치는 오랜 숙제를 마쳤다. 고래힘줄의 승리였다. 민주화 지도자와 문민대통령에만 그쳤다면 절반의 성공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된 후 YS는 칼국수를 먹으면서 개혁을 이끌었다. 공직자 재산공개를 단행했고, 군부의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했으며, 금융실명제로 부패의 중요한 고리를 끊었다. 전두환.노태우의 12.12 군사반란을 법정에 세워 정의를 실현했다.

그는 지칠줄 모르는 개혁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많은 지도자가 그러하듯 YS도 그늘과 실패의 기록을 남겼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는 국민의 피로써 달성된 민주화의 자랑스런 산물이었다. 그러나 YS는 권력앞에서 DJ와 분열했다. 두 사람이 합쳤다면 문민시대는 훨씬 당겨졌을 것이다. 1990년 그는 보수 3당 합당을 주도했다. 대통령이 되기위해서는 결과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국민이 만든 여소야대를 일방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이로 인해 호남세력과 진보그룹은 사회의 한 구석으로 몰리게 됐다. 지역감정은 악화됐고 이념갈등은 심화됐다. YS의 가장 큰 실패는 1997년 외환위기일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그는 세계화와 금융개혁 그리고 정경유착을 제대로 관리하는 데에 실패했다. 외환위기는 국민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었고 후유증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깨끗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안풍 사건'의 덫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YS가 집권 전에 받은 비자금 1000여억원을 안기부 계좌에 넣어두었다가 집권당의 선거자금으로 제공했다고 법원은 판결한 바 있다. YS는 아들 현철씨와 측근들의 비리를 막지 못했다. 아들이 감옥에 가고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YS 집권 말기는 어둡고 혼란스러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YS는 'Young Statesman(젊은 정치인)'이었다. 최연소(25세) 국회의원, 최연소(45) 야당총재였다. 70년에는 DJ와 함께 '40대 기수론'으로 한국 사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나이뿐만 아니라 정신으로도 그는 시대를 앞서 나갔다. 민주화를 위해 용기있게 투쟁했고 개혁을 이끌었다. 많은 젊은이가 시대의 무게에 눌려있는 지금 그의 '젊은 투쟁(Young Struggle)'은 값진 교훈이 될 것이다. 그의 명복을 빌면서 다시 한번 그의 값진 애칭을 불러본다. 와이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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