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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 큰 흔적 남기고… 김영삼 전 대통령 22일 서거

중앙선데이 2015.11.22 03:09 454호 1면 지면보기

[중앙포토]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22일 서거했다. 향년 88세.김 전 대통령은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증세로 치료를 받다가 이날 오전 0시22분 눈을 감았다. 김 전 대통령은 몸에서 열이 나 지난 19일 오후 서울대병원에 입원했고 21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김 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0일에도 검강 검진 차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17일까지 머물다 퇴원했다가 다시 입원했다.수년 전부터 치료를 받아온 김 전 대통령의 사인(死因)은 쇠약한 전신상태에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이 겹친 것으로 판단된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밝혔다. 오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은 과거 반복적인 뇌졸중과 협심증 폐렴 등으로 수차례 입원했었다”며 “2013년 4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중증 뇌졸중과 폐렴 등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었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혈액감염 증세 치료 중 서울대 병원서 영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김대중·김영삼으로 상징되는 '양김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金洪祚)와 어머니 박부연(朴富蓮)의 외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장목소학교, 통영중학교,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당선됐다. 당시 나이는 28세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최연소다. 이후 제 5·6·7·8·9·10·13·14대 국회의원까지 9선 의원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 당수 세 차례, 야당 원내총무 다섯 차례를 역임하며 평생의 민주화 동지이자 정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정권에 맞섰다. 양김의 '상도동' '동교동'은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으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야당 당수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다 1979년 총재 직무를 강제로 정지당하고 의원직에서도 제명되는 고초를 겪었다.



신군부 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들어서는 23일간의 단식 투쟁, 장기간의 가택연금 등의 모진 정치적 박해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87년 6월 항쟁' 주도 등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군사정권 기반 약화와 직선제 개헌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대도무문'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 투쟁과 인권 증진의 외길을 걸으면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자신의 신조처럼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체제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채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한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했다.



하지만 민주정의당ㆍ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합류, 박철언 전 의원과의 사활을 건 대결 끝에 대선후보를 쟁취했다. 1992년 대선에서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군정 종식'을 이뤄내며 '문민시대'를 열었다.



특히 재임 기간 '칼국수'로 상징되는 검소함과 청렴함을 표방하면서 하나회 청산과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실시, 전방위적 부패 척결 등을 통해 사회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역사바로세우기 역시 고인의 치적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임기 중 친인척 비리와 외환 위기에 따른 국가 부도 사태 초래로 임기 초반 누렸던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대부분 상실하며 극과 극을 달린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호남지역을 포위한 '3당합당', 상도동으로 대변되는 '가신정치'는 부(負)의 유산으로 기억된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PK(부산·경남)를 지역 기반으로 삼은 민주화 세력을 일컫는 '상도동계'의 영원한 리더로서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평생 거르지 않다시피한 새벽 조깅과 영문이니셜 애칭 'YS'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아들 현철 씨가 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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