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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영삼 전 대통령 어록 "닭 목 비틀어도 새벽온다"

중앙일보 2015.11.22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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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은 생전 '정치9단'으로 불리었다. 9단의 판단,신념,결정은 독특한 언어로 나타났다. 9단의 언어로 나타난 YS는 타고난 승부사였다. 다음은 생전 그의 주요 어록.

▶“대도무문(大道無門)”
“모든 일에 정당하다면 거리낄게 없다”는 것이 그의 좌우명이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새벽은 마침내 왔다”
YS는 신민당 총재이던 1979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의 박정희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를 주장했다. 여당이던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가 YS에 대한 의원직 제명안을 가결시켰키자 그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여당의 무리한 제명은 ‘부마(釜馬)항쟁’을 촉발했다.
YS는 퇴임 후인 2010년 6월 경남 거제시에 건설된 기록전시관 준공식에서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정부 수립에 버금가는 일대 사건이었다”며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마침내 왔다”고 했다.

▶“어떤 형태의 국회든 참여해 투쟁해야 한다”
1973년 2월 27일 총선에서 153개이던 지역구가 73개로 줄고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자 야당 의원들은 보이콧을 주장했다. 그러나 YS는 “어떤 형태의 국회든 의회 아ㄴ에서 유신체제를 붕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YS는 어지간한 일로는 길거리로 나서지 않았다. 정치를 길거리로 몰고가선 안 된다는 게 정치 신념이었다. 그러나 길거리로 나간다면 앞장선다는 것도 그의 신념이었다. 1987년 대토영직선제 투쟁 때 YS는 거리 투쟁의 선봉에 서 일명 ‘닭장차’에 실려가는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선거혁명이 이뤄지는 것만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
1987년 6월17일. YS는 본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민주화되어 선거혁명이 이뤄지는 것만 한 번 보고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최고의 소망입니다”라고 했다. 그가 그토록 소망했던 선거혁명은 실제가 됐고 5년뒤 14대 대통령이 됐다.

▶“야당이 이겨야 하는 것은 역사의 순리다”
1987년 선거를 앞두고 YS는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당시는 DJ와의 단일화 논의가 진행되기 전이었다. 그는 “민주당 집권은 99% 국민적인 합의다 민정당은 이제 야당 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87년 선거에서 YS와 DJ는 단일화에 실패하고 대선에서 패배해 다시 야당이 됐다. 대선 패배후 그는 신문 광고를 내고 “야권후보 단일화를 이룩하지 못한 부덕의 소치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을 글할 길 없으며 깊이 자성하고 사과드리는 바입니다”라고 했다.
 

▶“나무에 너무 집착하면 숲이 안보인다”
YS는 “크게 줄기만 잡고 단순하게 보는 것이 옳을 때가 많다”, “나무에 너무 집착하면 숲이 안보인다”는 말을 많이 했다. “노태우와의 합당은 나로서도 상상도 할 수 없다”던 그는 1990년 1월22일 3당 합당 직후 “정치인은 국가와 민족이 요구할 때는 중요한 결단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앞선 1월5일 민주당 시무식에선 “당을 깨고 나간 사람들과의 이합집산은 안된다. 잔꾀가 아니라 큰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었다. 1월31일 민주당 해단식에선 “후일의 역사가 지금의 정계재편은 시의적절한 것이었으며 또한 역사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내릴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대통령은 당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1992년8월 노태우 대통령이 충남 연기군 관건선거 파동으로 임기를 6개월여 남기고 탈당하자 그는 “대통령은 당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전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태우는 거꾸로 대통령이 자기 당을 떠나는 탈당의 전통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YS도 5년뒤인 1997년 차남 김현철 씨가 검찰 수사를 받으며 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자 당의 탈당 요구를 받아들였다.

▶“나는 평생을 통해 잠잘 때 꿈을 꾸지 않는다”
1992년 12월18일 대선 당일 아침 YS는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잠을 푹 잤더니 기분이 좋다. 나는 평생을 통해 잠잘 때 꿈을 꾸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날인 12월19일 당선 회견에서 그는 “나의 승리는 바로 위대한 우리 국민 모두의 승리다. 안정속에서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 모두의 승리다. 우리는 이제 명실상부한 문민정부를 창조했다”고 했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YS가 자주 쓰던 유명한 어록이다. 1995년 6ㆍ27 지방선거 4일전 YS는 청와대 기자단과 긴급 간담회를 열고 “북한이 100만톤의 쌀을 요구한. 재고에 문제가 있으면 사서라도 보내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선거 이틀전까지 국무총리가 북한행 쌀 선박을 향해 손을 흔드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그러나 DJ 역시 타이밍의 정치가다. DJ는 JP와 함꼐 “원칙없는 대북 지원”이라고 몰아세웠다. DJ는 서울시장과 호남권 시ㆍ도지사를 석권했다. JP도 충청은 물론 강원지사 선거에서 이겼다.
재미있는 건 대통령이 된 DJ도 2000년 4ㆍ13 총선 3일전 6ㆍ15남북정상회담 카드를 전격 발표했다. TV는 정상회담 뉴스로 도배됐지만, 민주당은 115석으로 133석을 가져간 한나라당에 패했다.

▶“DJ는 네로와 같은 폭군”
YS는 DJ가 대통령이 된 뒤 “김 대통령은 네로와 같은 폭군”이라고 했다. DJ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때는 “노벨상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원색적 비난을 하기도 했다.
1987년 대선을 앞둔 9월30일 YS는 DJ와 단일화 회동 직후 “김대중 고문은 민족의 지도자로, 민주화와 민족통일로 가는 희망으로 남아달라”고 했다. 10월17일 부산 수영만 집회에서 그는 “내가 김대중 고문을 밀어서 민주화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대통령 후보를 양보하겠다. 그러나 김 고문이 후보가 되면 영ㆍ호남이 완전히 대립될 것”이라고 했다.

▶“인생은 투쟁이다”
YS는 자신의 회고록에 “인생은 투쟁이다. 자유를 위한 투쟁.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부정에 대한 정의의 투쟁. 투쟁이 없으면 인생이 없고, 자유가 없으며 나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나와 내 조국은 마침내 민주주의의 동트는 새벽을 맞게 됐다”고 했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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