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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판세 42 vs 33 … 소극 지지자 동원력에 승패 달렸다

중앙선데이 2015.11.22 01:27 454호 6면 지면보기
“대한민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 보수 세력은 위쪽에, 진보 세력은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 세력은 죽을 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들다. 보수 세력은 뻥 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진보 세력의 정치적 열세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화두를 꺼낸 이후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선거 때마다 야권의 패배를 설명하는 하나의 논리로 자리 잡았다. 내년 20대 총선을 앞두고도 운동장 경사론의 위력을 놓고 정치권에선 엇갈린 해석을 내놓고 있다. 중앙SUNDAY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는 1987년 이후 선거 데이터와 유권자 여론조사를 토대로 운동장의 기울기로 표현되는 한국 유권자 분포의 실체를 분석해봤다.


[데이터로 본 20대 총선] ②‘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는?



16승3패. 87년 대통령직선제가 시행된 이후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전신 포함)이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 19번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진보 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전신 포함)을 상대로 거둔 성적이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28년 동안 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까지 세 번의 선거에서만 승리를 거뒀다. 운동장이 보수 쪽으로 기울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19개 선거를 통해 얻은 득표율을 분석해 보니 새누리당의 평균 득표율은 41.9%, 새정치연합(전신 포함)의 평균 득표율은 33.1%였다. 새누리당이 8.8%포인트 격차로 우세를 보였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42’와 새정치연합을 지지하는 ‘33’의 구도가 계속되면서 16승3패라는 압도적인 결과로 연결됐다는 분석이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이 인구가 많은 영남에 지역기반을 두고 있는데다, 고령화로 인해 보수 성향이 강한 50대 이상의 유권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반면 진보 성향의 젊은 층은 상대적으로 투표장에 나오지 않으면서 운동장이 기울어지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좀 더 면밀한 분석을 위해 새누리당 지지 유권자를 ‘적극 지지자’와 ‘소극 지지자’로 나눴다. 적극 지지자는 역대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아무리 경쟁력이 낮은 후보를 내거나 이슈에서 상대 정당에 밀려도 무조건 새누리당을 선택해온 유권자 층이다. 역대 선거 득표 추이 등을 종합 분석해본 결과 새누리당의 적극 지지자 규모는 33.3%로 나타났다. 반면 ‘소극 지지자’는 새누리당을 지지하지만 투표장까지 나가기 위해선 별도의 동기부여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슈나 후보, 공약이 마음에 안 들면 투표장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다. 새누리당 소극 지지자 규모는 8.6%로 분석됐다.



반면 새정치연합의 경우 적극 지지자는 19.3%, 소극 지지자는 13.8%였다. 새정치연합의 적극 지지자와 소극 지지자 모두가 투표를 한다고 해도 새누리당의 적극 지지자 규모와 비슷한 수준에 그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쟁이 치열한 지역일수록 지지층이 탄탄한 새누리당은 상수이고, 새정치연합이 변수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정치연합 후보가 잘하면 근소한 우세를 보일 수 있지만 못하면 참패를 당하는 것이다.



양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은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25%)에 달했는데 성향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됐다. ‘보수 성향의 무당층’(10.7%)과 ‘실질적 무당층’(7.9%) 그리고 ‘진보 성향의 무당층’(6.4%)이다. 보수 성향의 무당층은 92년 대선의 정주영 국민당 후보처럼 보수 성향의 제3후보나 정당을 선호하는 층이다. 진보 성향의 무당층도 이와 같다. 2007년 대선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를 지지한 세력이다. 실질적 무당층은 한마디로 ‘스윙 보터(Swing Voter)’다. 성향보다는 선거 당시 상황에 따라 지지 정당이나 후보를 선택한다.



이 공식을 2012년 대선에 대입해봤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51.6%를, 문재인 후보는 48.0%를 얻었다. 이를 ‘유권자 지지층 분포’로 분석해보면 박 후보는 ‘새누리당 지지층+보수 성향의 무당층’을, 문 후보는 ‘새정치연합 지지층+진보 성향의 무당층’, 여기에 스윙 보터인 ‘실질적 무당층’의 표까지 획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00년 이후 완만해지는 여야 기울기 흥미로운 사실은 2000년대 들어 운동장의 기울기가 점점 완만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10년 안에 치러진 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과 격차를 상당 부분 좁혔고 2012년 총선과 대선, 2014년 지방선거 등 최근 세 차례 선거에선 평균 격차가 5.5%포인트로 더 줄었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과거에 7대 3 정도로 보수 세력이 유리했다면 지금은 6대 4 정도로 완화돼 야권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년 총선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은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까. 야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새정치연합 민병두 의원은 “운동장의 지형이 아직 바뀌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1월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직을 사임하며 “지난 대선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구조적 한계가 확인됐다. 다음 총선과 대선으로 갈수록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사도가 커질 것”이라고 주장해 야권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민 의원은 “기본적으로 영남의 의석수가 호남보다 30석 이상 많은 데다 대선과 달리 총선은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운동장을 더 기울게 만든다”며 “‘뿌리는 깊게, 그늘은 넓게’라는 전략으로 중심 가치는 가져가면서도 당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운동장이 이미 평평해졌기 때문에 총선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이형선 정무연구실장은 “민주화 경험을 지닌 4050세대는 이전 세대처럼 무조건적인 보수가 되기보다는 합리적인 중도 노선을 견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며 “영남에서의 야당 득표도 이미 일정 수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고령화에 따른 보수화 현상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오랜 정당 역사를 가진 미국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연령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며 “정당이 유권자와 어떻게 신뢰 관계를 쌓느냐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은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IMF 세대는 이슈 따라 표심 바꿔 내년 선거에서 양당이 가장 주목할 유권자층은 소극 지지자다. 각 정당의 소극 지지자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소극적이다. 투표장에 나오면 지지 정당의 후보를 선택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기권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정당 입장에서 소극 지지자들은 최우선적인 동원 대상이며 승패의 첫 번째 관문에 서 있는 유권자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양당이 내년 총선에서 전략적으로 노릴 수 있는, 소극 지지자층이 두터운 지역은 어디일까.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유권자 4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유·무선 전화조사, 95% 신뢰 수준 ±1.5%)를 실시해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소극 지지자의 분포를 확인했다.<지도 참조> 양대 정당의 핵심 기반인 영호남 지역은 분석에서 제외했다. 새누리당의 소극 지지자는 강원 영서 지역과 서울 강동-강남권, 경기도 남부권에 많았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강원 영동과 서울시 강북-서북권, 경기 동남권에 소극 지지층이 집중해 있었다. 양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 및 제3당 지지층은 제주와 인천, 경기 서북권, 서울 강동-강서권에 가장 많이 분포했다. 이런 지역이야말로 여야 모두 승부를 걸어볼 수 있는 곳이다.



연령별로는 새누리당 소극 지지자는 주로 50대 이상이, 새정치연합은 20~30대가 많았다. 직업으로는 새누리당이 자영업자나 농축수산업자가 많았다면, 새정치연합은 화이트칼라(사무관리직)가 강한 소극 지지 성향을 보였다. 이 밖에도 자신을 학생이라고 밝힌 소극 지지자는 양당 모두 20% 넘는 높은 분포를 기록했다. 채진원 교수는 “6·25 세대인 60~70대와 민주화 세대인 40~50대가 지지 성향이 뚜렷한 것과 달리 ‘IMF 세대’로 불리는 20~30대는 경제나 특정 이슈에 따라 표심(票心)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며 “20~30대와 중도층을 투표장으로 이끌 이슈를 어느 쪽이 선점하느냐가 내년 총선의 승패를 가르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천권필 기자?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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