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마’ 회담에도 국민당 후보 고전 첫 미혼 여성 총통 탄생 초읽기

중앙선데이 2015.11.22 01:18 454호 10면 지면보기

1 차이잉원 대만 민진당 총통 선거 후보가 지난달 출간한 책 『잉파이(英派)』가 타이베이 정치대 부근 서점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2 낙마한 훙슈주 후보를 대신해 ‘구원투수’로 지난달 선출된 주리룬 국민당 총통 후보가 17일 타이베이 시내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타이베이=장세정 기자



2016년 1월 16일 치러지는 대만 총통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등록(23~27일)에 이어 다음달 18일에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주요 정당의 총통 후보 대진표가 거의 확정됨에 따라 대만은 사실상 선거전 국면에 들어갔다. 현지 언론매체는 매일 선거 동향과 유력 후보자의 일정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중앙SUNDAY 르포] 총통 선거 두 달 앞둔 대만 -상-



지난 18일 오후 2시(현지시간)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 시내의 중정(中正)구 베이핑둥(北平東)로에 위치한 야당 민진당 당사 9층 회의실. 차이잉원(蔡英文·59·여) 당 주석 겸 총통 선거 후보가 직접 주재한 가운데 중앙위원회 상무회의가 열렸다. 기자는 현장에서 이날 회의 초반부를 직접 지켜봤다. 여론조사에서 민진당이 여유 있게 집권 국민당 후보를 앞서고 있어서 그런지 회의 분위기가 아주 밝았다.



앞서 16일 부총통 러닝메이트로 정해진 천젠런(陳建仁·64) 대만 중앙연구원 부원장을 차이 후보가 “대만 국민의 높은 평가를 받는 분”이라며 직접 소개했다. 천 후보는 전염병 전문가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영웅’으로 통한다. 이날 천 부총통 후보는 국민당이 자신의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흑색선전일 뿐”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 시간 뒤 민진당사에서 약 1.2㎞ 떨어진 중산(中山)구 바더(八德)로에 위치한 국민당 당사 1층 회의실로 달려갔다. 대만의 거의 모든 언론매체들이 운집한 가운데 주리룬(朱立倫·54) 당 주석 겸 총통 선거 후보가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왕루쉬안(王如玄·54·여) 변호사를 처음 공개했다. 주 후보는 “왕 부총통 후보는 셋방에 살면서 대만대 법대에 합격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인권 변호사로서 명성을 날렸다”고 소개했다. 왕 변호사는 “남녀평등과 여성 권익을 위해 일해왔는데 부총통 후보로 나서게 됐다”며 각오를 밝혔다.



국민당 남녀와 민진당 여남 커플 대결 대만은 2000년 첫 직선 총통을 선출했다. 선거에는 총통과 러닝메이트 부총통이 함께 출마한다. 총통은 4년 연임이 가능하다.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후보는 2000년 총통 선거에서 처음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했으나 퇴임 이후 부패와 자금세탁 혐의가 드러나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0년부터 복역하다 현재는 자택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08년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현 총통이 8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2012년 재선한 마 총통의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당은 내부 갈등으로 선거를 3개월 앞두고 총통 후보를 급히 교체하는 홍역을 치렀다. 당초 6월에 훙슈주(洪秀柱·67·여) 당 부주석이 국민당 총통 후보로 뽑혔을 때만 해도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와 함께 사상 첫 여성 총통 후보 대결이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격차가 30%포인트가량 벌어지자 지난달 17일 결국 주리룬으로 전격 교체됐다.



주 후보는 대만 북부 타오위안(桃園)현에서 태어나 대만대 공상관리과를 졸업한 엘리트다. 미국 뉴욕대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만대 교수를 역임했다. 입법위원(국회의원)과 행정원 부원장(부총리)을 거쳤다.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자치단체장(신베이 시장)에 당선됐다. 장인 가오위런(高育仁)이 입법위원 출신이어서 그의 성장에 든든한 배경이 돼줬다. 왕루쉬안 부총통 후보는 대만 남부 장화(彰化)현 출신의 유명 변호사다. 중국인민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는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 미군 부대를 상대로 세차장 사업을 크게 했던 부친 차이제성(蔡潔生)의 고향은 민진당의 표밭인 대만 남부 핑둥(屛東)이며 객가(客家) 출신이다. 모친은 원주민 혈통이다. 대만대 법대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치대 교수를 거쳐 입법위원 및 행정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천젠런 부총통 후보는 대만 남부 가오슝(高雄) 출신으로 대만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이학(병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원 위생서장과 국가과학위 주임위원을 역임했다.



대만 언론들은 국민당의 남성 총통 후보와 여성 부총통 후보를 ‘주쉬안페이(朱玄配)’, 민진당의 여성 총통 후보와 남성 부총통 후보를 ‘잉런페이(英仁配)’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던 ‘시마후이’ 대만 총통 선거전에 가장 큰 돌발변수는 지난 7일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의 첫 양안 정상회담이었다. 이른바 ‘시마후이(習馬會)’로 불린 두 사람의 만남은 중국과 대만이 공식 분열된 1949년 이후 66년 만이자 장제스(蔣介石)와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마오 담판’ 이후 70년 만에 성사된 양안 최고 지도자끼리의 만남이었다.



중국과 대만 양측에서 “마오쩌둥의 비서인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의 아들 시진핑 주석과 장제스의 아들인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의 영어 통역 비서였던 마잉주 총통의 만남은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대만 현지에서 확인해 보니 시마후이는 대만 선거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지난 6월 미국을 방문한 차이잉원 후보가 대만 독립 노선에 대한 우려를 희석하기 위해 “양안 관계는 현상을 유지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대만 독립 노선은 이번 선거에서 핵심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민진당의 한 자문위원은 “한마디로 지나가는 바람이었을 뿐 선거 판세와 지지율 변화에 거의 영향을 못 끼쳤다”고 말했다. 차이중민(蔡中民) 대만 정치대 교수도 “양안 최고 지도자가 만난 것 자체는 분명 좋은 일이지만 선거를 앞두고 만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선거에도 영향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현지 여론조사에서도 대체로 확인됐다. 시마후이가 열리기 전인 지난 3일 핑궈일보 조사에서 차이잉원과 주리룬의 지지율은 각각 40.3%, 18.6%였다. 시마후이가 열린 이후인 11일 발표된 공상시보 여론 조사에서는 두 후보 지지율이 각각 45.2%와 22.5%를 기록했다. 두 후보 모두 소폭 상승했지만 지지율 격차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른 조사에서도 거의 비슷했다.



“한국처럼 여성 지도자 나올 때 됐다” 대만 현지의 관심사는 ‘사상 첫 미혼 여성 총통’의 등장에 쏠려 있는 분위기였다. 과거 천수이볜 민진당 총통 집권 시절 여성으로는 뤼슈롄(呂秀蓮) 부총통이 이미 배출됐지만 여성 총통은 아직 없었다. 타이베이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같은 동양문화권인 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첫 여성 대통령으로 뽑았다”며 “대만에도 여성 총통을 배출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말했다. 대만 정치대 정문 인근에서 만난 50대 여성 린(林)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더라도 대만에서 여성 총통이 나온다고 더 이상 이상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시먼(西門)역 근처 발마사지 가게에서 만난 40대 여성 한(韓)은 차이잉원 후보를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했다. 그는 “샤오잉(小英)은 예쁘고 총명하다”며 “그의 정책이나 말솜씨까지 좋아해 그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60대 택시기사 리(李)는 “정당보다 인물이 중요하다”며 “4년 전에 한 번 출마했던 차이잉원은 준비된 총통 후보라 당선되면 정치를 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비판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60대 택시기사 허(何)는 “국민당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하려고 해도 민진당 정부가 법안 통과를 가로막았다”며 “민진당은 통행을 막는 도로 위의 붉은 신호등 같은 정당”이라고 꼬집었다.



50대 택시기사 뤼(呂)는 양비론을 폈다. 그는 “국부(國父) 쑨원(孫文)의 삼민주의(三民主義) 초심을 저버린 국민당은 나쁜 당이고, 민진당은 말만 잘하지 국민을 속이는 당”이라며 “나는 제3의 쑹추위(宋楚瑜) 친민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국민당 집권 후 큰 기업만 돈 벌어” 박한진 코트라 타이베이 무역관장은 “10여 년간의 경기 침체로 대만 대졸자의 초임이 2만2000대만달러(TWD·약 78만 원)에 불과해 ‘22K세대’라는 말이 생겼다”며 “대만 사회의 빈부 격차와 내부 분열이 심하고 장기간의 경기 침체로 사회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대만 경제는 90년대 중반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연평균 5% 성장률을 유지했다. 하지만 2011년부터 성장률이 3~4%로 떨어졌고 올 들어서는 내수와 수출이 부진하면서 성장률이 1% 아래로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왕젠취안(王健全) 중화경제연구원 부원장은 “당초 올해 3.5%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실제로는 1%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아 바오이(保一, 성장률 1% 지키기)에 비상이 걸렸다”며 “그런데도 법적 제한 때문에 재정 투자를 늘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대만 사회 전반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대만역사박물관에서 만난 50대 판(範)은 “8년 전 천수이볜 정권이 부패해 국민들이 깨끗한 이미지만 믿고 마잉주 총통을 뽑았는데 제대로 개혁을 못했다”며 “젊은이들의 취업이 어렵고 불만도 커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시내 2·28국가기념관에서 만난 대졸 직장 초년병 친(秦)은 “지난 8년간 국민당 정권이 대륙과 너무 가까웠다”며 “큰 기업은 돈을 많이 벌었지만 일반 국민의 경제생활은 어려워졌다”고 비판했다. 16일 대만 정치대에서 만난 경제학과 3학년 학생은 “세수를 늘린다면서 2013년 증권소득세를 갑자기 도입했지만 외국인이 증시에서 빠져나가 정책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15일 오후 중정기념당 옆 자유광장에서 만난 대학 졸업반 여대생 5명은 “공대에 다니지만 아직 취업을 못했고 주변에도 취직한 친구들이 드물다”고 말했다. 택기기사 쉬(許)는 “월 3만 대만달러를 받는 딸이 월급이 안 올라 5만 대만달러를 주는 한국기업으로 옮기기 위해 2년째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잉주 총통의 정치력 부재도 비판을 받고 있다. 야당인 민진당뿐 아니라 같은 집권여당인 국민당 출신인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국회의장)과도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대만의 한 중견 언론인은 “차이잉원 후보가 집권하면 천수이볜을 사면하고 마잉주를 기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타이베이=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