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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 된 나치 벙커·장벽 … 베를린, 비극을 예술로 바꾸다

중앙선데이 2015.11.22 00:30 454호 22면 지면보기

오른쪽부터 단 보의 ‘숫자들(6)’(2011), ‘트리오’(2010),‘위 더 피플(detail)’(2011)



“가난하지만 섹시하다.”


통독 25년, 문화 도시로 변신하는 베를린

‘게이 시장’으로 유명했던 클라우스 보버라이트(Klaus Wowereit) 전 베를린 시장은 베를린을 이렇게 정의했다. 나치 제국의 수도에서 베를린 장벽으로 상징되는 분단의 역사까지, 근대사의 한복판에 섰던 베를린이 통일 25주년을 맞아 매력적인 문화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인구는 350만 명에 불과하지만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을 넘어 최근 유럽의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도시 곳곳에 남은 역사의 잔해를 예술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등 베를린만의 독특한 공간 활용법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1 아이웨이웨이의 ‘나무’(2009-2010)

2 잠룽 보로스 미술관 외경

3 세리스 윈 에반스의 ‘무제’ (2008)



‘중앙’을 뜻하는 베를린 미떼(Mitte) 지구를 걷다 보니 잿빛 콘크리트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창문이라기보다는 환기구에 가까운 구멍이 사방에 뚫려 있는 폐쇄적인 건물의 외형에서는 왠지 음울한 분위기가 풍겼다. 입구에 긴 줄이 늘어서 있는 걸 보고서야 이곳이 찾고 있던 ‘잠룽 보로스(Sammlung Boros) 미술관’이라는 걸 알았다.



히틀러 정권 시절 공습을 피하기 위해 지어진 베를린 유일의 지상벙커였던 이곳은 유명 미술품 컬렉터인 크리스티안 보로스 덕분에 현재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핫스팟이 됐다. 냉전 시대에는 열대 과일이나 채소를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면서 ‘바나나 벙커’라 불렸고, 1990년대 초반까진 유명한 테크노 클럽이었던 곳이다.



원래는 사전 예약으로만 관람이 가능해 적어도 석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을 만큼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하지만 운 좋게도 이날은 예술 주간을 맞아 미술관을 개방해 예약 없이도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안내원이 철문을 열어주면서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농담 섞인 주의를 줬다.



80여 개의 방이 미로처럼 펼쳐진 미술관 내부에는 중국의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와 독일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 등 90년대 이후에 활동한 현대 예술가 23명의 작품 130점이 전시돼 있었다. 작품보다도 더 눈길을 사로잡은 건 벙커 특유의 공간이 빚어낸 분위기였다. 전시실 곳곳에 무전기와 녹슨 환풍 시설 등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미술관 전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전시된 미술품들도 벙커라는 색다른 공간과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전시장 큐레이터는 “작가 대부분이 본인의 작품을 공간적 특성에 맞게 직접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4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의 한 그래피티 작품에 전 세계 관광객들이 남긴 낙서가 적혀 있다.

5~7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를 장식하고 있는 벽화들. 작품 대부분이 ‘평화’와 ‘화해’를 상징하고 있다.



비극의 장벽이 길거리 화랑으로 입장료가 부담스러운 배낭족이라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베를린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야외 미술관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거리 곳곳에서 개성 있는 그래피티(graffiti) 작품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ㆍ서독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도 89년 무너진 이후 남은 잔해들이 거대한 캔버스로 활용됐다. 대표적인 곳이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다. 베를린 중심부에 남아있던 1.3km 길이의 장벽에 세계 21개국 118명 작가들이 그림을 그려넣었다. 입장료가 없는 건 물론 관람 시간에도 제한이 없는, 말 그대로 길거리 화랑이다.



슈프레 강변을 따라 세워진 높이 4m의 장벽에는 화려한 그래피티 작품들이 그려져 있었다. 두 남성이 키스하고 있는 그림이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러시아 화가 디미트리 브루벨의 작품으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를 상징하는 대표작으로 자리 잡은 ‘형제의 키스’다. 다소 민망한 포즈를 연출한 두 남성은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동독의 최고지도자 에리히 호네커. 1979년 이들이 동독 정권 30년을 기념하며 만났을 때 나눈 격정적인 키스는 냉전시대 당시 동방진영의 견고한 결합을 상징했다.



하지만 이제는 역사의 잔해로 남은 장벽에서 해학적으로 재해석된 희대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그림 아래에 러시아어로 적혀 있는 문구는 더 걸작이다. ‘주여, 이 치명적인 사랑에서 제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밖에도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과 독일과 이스라엘의 국기를 합쳐놓은 벽화 등 평화와 통일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빼곡히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2년 전 고급 아파트 건설을 위해 갤러리가 조성된 장벽 중 23m 구간을 철거하려 했지만, 이에 반발한 시민들의 시위로 인해 철거 작업이 중단됐다고 한다. 동독 출신의 베를린 장벽 투어 가이드인 마티아스 페터스도르프는 “통일 이전 많은 동독인들이 베를린 장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하려다 희생됐고, 나에게도 베를린 장벽은 두려움과 호기심의 대상이었다”며 “이제는 분단을 경험하지 못한 많은 독일 학생들이 꼭 찾아오는 베를린의 중요한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8 템펠호프 공원에서 시민들이 바람을 이용해 보드를 타는 ‘카이트 랜드보딩’을 즐기고 있다.

9 템펠호프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도심 속 활주로를 달리는 쾌감에 대하여 베를린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푸른 베를린’(Grunes Berlin)이라고 불릴 정도로 도시 곳곳에 공원이 즐비하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진정한 베를리너의 여유를 느끼고 싶다면 템펠호프 공항에 가보자. 확 트인 활주로를 두 다리로 마음껏 달리는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공항으로서 역할을 잃은 템펠호프 공항은 베를린시의 공간 재활용 프로젝트 중 성공작으로 꼽히는 곳이다.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템펠호프 공항에 들어서자 자전거를 타고 활주로를 달리는 현지인들이 보였다. 한쪽에선 금발의 남자 아이가 아버지와 연을 날리기도 하고, 연인들은 활주로 옆 잔디밭에 누워 도심 속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1923년 개항한 이 공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을 방어하는 독일 공군의 본거지 역할을 했다. 분단 후에는 공산 세계의 섬으로 남아 있던 서베를린 시민을 위해 서방 연합군이 수십만 톤의 물자를 수송하는 외부 세계와의 유일한 통로였다. 2008년에 주변 소음을 이유로 폐쇄가 결정되자 베를린시는 356만㎡에 달하는 광활한 공간을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재활용’하기로 했다.

베를린의 명물 ‘커리부어스트’



베를린 길거리 음식의 최고봉 ‘커리부어스트’?음식으로는 프랑스, 이탈리아에 비해 다소 명성이 떨어지지만 베를린에 갔다면 꼭 먹어봐야 하는 별미가 있다. 소시지에 케첩, 거기에 커리 가루를 뿌린 ‘커리부어스트(Currywurst)’다. 찾아간 곳은 전철역 고가 밑에 있는 ‘콘놉케의 임비스(Konnopke‘s Imbiß). 무려 1930년부터 3대에 걸쳐 커리부어스트를 팔았다고 하는 곳이다.



뭐 별다른 맛이 있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소시지와 커리의 환상적인 궁합은 명불허전. 한 마디로 맥주를 위해 탄생한 안주다. 가격까지 저렴(2.2유로·약 2700원)해 간단하게 배를 채우기에도 그만이다. 커리부어스트에 맥주가 빠지면 곤란하지만, 주량이 약하다면 맥주와 레모네이드를 혼합한 라들러(Radler)를 추천한다. 독일어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마신 후에도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



 



 



베를린 글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사진 베를린 관광청?ⓒNOS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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