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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죽이는 신앙, 살리는 신앙

중앙선데이 2015.11.22 00:30 454호 27면 지면보기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에 대해 말씀하는 분은 많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모순적인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종교가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할 것 같지만, 과다한 종교심은 오히려 인간을 견딜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는 것이다. 종교뿐만이 아니다. 도덕이든 정치 사상이든 어떤 것이든 간에, 애초에는 사람에게 득이 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극단으로 빠져 버리면 해가 된다.



우리 민족의 정치적 열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주 느끼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 절제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사상에 심취해 나라가 사달이 나든 국론이 분열되든 상관하지 않는 듯한 군중과 정치인을 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무엇이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삶과 믿음

예수님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지 않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 같은 관용을 가진 종교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종교를 갖기 전에는 마음이 넓고 이해심이 많던 사람이 종교를 갖고 종교심이 깊어질수록 마음이 좁아지고 아량이 없어지는 것을 본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참지 못한다. 종교란 절대적인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심이 커질 수록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이것은 모순 중에 모순이다. 종교가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하였으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론적 종착역으로 가면 고집스럽고 배타적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신약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일관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이러한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는 이웃을 사랑할 것과 원수를 축복할 것을 말씀하시는 동시에, 종말에 양과 염소를 가르듯 하나님이 인류를 심판하실 것과 오른 손이 사람을 실족하게 하면 그것을 찍어 내버릴 것을 명하셨다. 자애로운 교훈과 무섭도록 엄한 교훈이 공존했다. 바울의 서신에도 만인의 심금을 울리는 사랑의 노래, 즉 “내가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으로 시작하는 사랑장이 있으나, 동시에 불신자와 죄인에게 지옥의 심판을 경고하는 구절이 공존한다. 우리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 목사가 20세기 말에 예언하길, 21세기는 종교 간에 충돌을 빚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예언이 정확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종교 자체의 문제인가, 인간의 문제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게 더 듣기가 편하다. 그게 아니고 종교의 내재된 문제라고 한다면 낙심할 것이다. 종교가 개혁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여기에 존재한다. 종교의 참된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는 길은 맹목적으로 종교를 추종했을 때 발생하는 모순을 경험하는 데 있다. 이것은 매우 괴롭고 내가 알던 세계를 흔들 수 있다. 그러나 참된 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종교적 열심이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죽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진정한 회심을 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라고 본다. 인간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신앙. 거기에 참된 하나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영준 목사pastorted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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