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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力 -무력-

중앙선데이 2015.11.22 00:27 454호 27면 지면보기
춘추시대 초장왕(楚莊王·재위 BC614~ BC591) 때의 얘기다. 초나라가 진(晉)나라와 싸워 크게 이겼다. 당시 신하 번당(潘黨)이 초장왕에게 다가와 “진이 버리고 간 시체를 모아 경관(京觀)을 만들자”고 제의했다. 시체로 개선문을 만들어 축제를 벌이자는 얘기였다. 왕은 이를 물리치며 이렇게 말한다.



“전쟁은 무공(武功)을 자랑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폭력을 방지해 백성들에게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문자를 봐도 그렇다. ‘武(무)’라는 글자는 그친다는 뜻의 ‘止(지)’자와 창을 의미하는 ‘戈(과)’가 합쳐져 만들어 졌다. 武는 결국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무위(武威)를 과시하기 위해 시체를 쌓아 경관을 조성하는 행위는 폭(暴)이지 진정한 무도(武道)가 아니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초장왕은 무력에도 7가지의 덕행(德行)이 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폭력을 금지해야 하며, 전쟁을 미연에 막아야 하며, 강대함을 유지해야 할 경우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나라의 기틀을 공고히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민중들을 단결시키고, 재부를 증강시켜야 한다. 나는 이 7가지 중에서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다. 후대에 무엇을 남겨줄 수 있겠는가.”



왕은 번당을 꾸짖어 말한다.



“진나라의 군졸들은 국군(國君)의 명령을 받아 싸웠을 뿐이고, 전사한 사람들이다. 어찌 그 시신을 모아놓고 경관을 만든단 말인가?”



이 고사(故事)의 출처인 『좌전(左傳)』의 ‘선공(宣公)편’은 결국 ‘초나라 군인들은 왕의 명령에 따라 황하(黃河)주변에 하신(河神)단을 쌓아놓고 제를 올렸다’고 전하고 있다.물론 글자 武에 대한 이 같은 해석은 그릇된 것이다. 갑골문에 나오는 武는 사람이 창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이다. ‘무력(武力)’이 원 뜻이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후대 많은 이들이 武를 ‘止+戈’로 해석하곤 했다. 폭력보다는 평화를 갈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테러로 무고한 시민이 죽고, 공습으로 또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무력을 행사하는가.



 



한우덕 중국연구소장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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