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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에 없던 일 때문에 모든 계획은 무너진다

중앙선데이 2015.11.22 00:21 454호 29면 지면보기
미래는 사건들의 조합이다. 신이 아닌 이상 모든 사건을 예측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아무리 완벽한 계획이라도 실제 결과와는 다르다. 즉 현실세계에서 어느 정도 계획오류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넘치면, 우리의 뇌는 미래가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이 때문에 계획오류가 과도한 수준으로 발생한다.



대규모 건설사업은 계획오류의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예컨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1957년 당시 계획 단계에서는 700만 달러를 투입해 1963년 완공을 목표로 설정했다. 그러나 실제 완공 시점은 예상보다 10년이나 늦춰졌고, 건설 비용도 무려 14배나 더 투입됐다. 한국의 경부고속철도, 인천국제공항 역시 원래 계획보다 두세 배 많은 예산이 투입됐다.


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표심을 잡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면 이행되지 않은 선거공약도 일종의 계획오류로 볼 수 있다. 지난 7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발표에 의하면, 공약 정보를 공개한 19대 국회의원 218명의 임기 3년차 공약완료율은 39.53%로 나타났다. 이는 조사시점을 기준으로 19대 국회의 선거공약 계획오류가 약 60%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계획오류는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피하기 어렵다. 한 실험연구에서 심리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가장 순조로운 경우(A), 일반적인 경우(B), 가장 최악의 경우(C)로 나누어 예상토록 했다. 실험 결과 학생들은 각각 27.4일(A), 33.9일(B), 48.6일(C)로 전망했다. 하지만 실제 학생들이 논문 한 편을 완성한 시간은 55.5일이었다. 최악의 시나리오(C)보다 더 오래 걸린 것이다.



계획오류는 평범한 일상에서 자주 발생한다. 학원이나 헬스클럽에 3개월 이상 장기 등록을 하고 한 달도 안되어 포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중도에 포기할 것을 확실히 예측하였다면 누구나 장기등록을 위해 굳이 돈을 쓰지 않는다. 우리의 뇌는 고작 두세 달 뒤에 자신이 계속 학원이나 헬스클럽에 다닐 지조차 확실하게 예측하지 못한다.



미래가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믿음은 무의식적으로 자기고양성을 높인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과도하게 넘치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까지 자신감을 보인다. 가령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번호로 구입한 로또복권의 당첨확률을 더 높게 예측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당첨확률에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 반응이다.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기대와 다른 계획과 동떨어진 현실을 마주하지 않으려면, 애초에 ‘완벽한 계획따윈 없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의 지구생환을 다룬 영화 ‘마션’은 매 순간 발생하는 계획오류를 극복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마지막 대사는 계획오류에 대처하는 마음가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주에서는 뜻대로 되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또 해결하고 그러다 보니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지.”



계획에 대한 자신감이 확신을 넘어 과신으로 넘어가면, 우리의 뇌는 계획과 다른 외부신호를 쉽게 무시한다. 하지만 확신이 강할수록 오류 역시 커질 뿐이다. 계획은 치밀하게 세우되 자신감만으로 이를 고집해선 곤란하다. 모든 계획은 계획에 없던 사건 때문에 무너진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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