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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통 기자단 따라잡기] 미션! 남한산성의 군사 방어 시설을 찾아보자

온라인 중앙일보 2015.11.22 00:03
남한산성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산성입니다. 끊임없이 다른 민족의 침입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의지가 깃들어 있죠. 남한산성에는 전쟁에 대비한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남한산성 답사를 마친 서울 한산초 역사통 기자단 3기가 남한산성에 남아 있는 방어 시설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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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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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장대 암문]

성의 비밀스러운 통로 ‘암문’

암문은 구석진 곳에 위치한 작은 성문으로 비밀통로 역할을 했어.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적의 눈을 피해 이동할 때, 식량과 물자를 운반할 때,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구원요청을 하거나 역습을 하기 위해 만든 방어시설이지. 남한산성의 암문은 총 16개인데, 우리나라 성곽 중 암문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는군. 이중 10곳은 윗부분이 둥근 무지개형의 홍예식(위 사진)이고 6곳은 양쪽 성벽 위로 장대석이나 판석을 놓아 드나들게 한 평거식(아래 사진)으로 만들었어.

주변을 둘러보며 성을 지키는 ‘장대’

장대는 성 안팎 주변 지역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에 세운 건물이야. 평상시에는 군사들이 올라가 주위를 살펴보며 성을 관리하고, 전쟁 중에는 장군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했지.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쌓을 때 동서남북 봉우리에 4개, 봉암성 봉우리에 외동장대 1개를 두어 총 5개의 장대를 만들었다고 해. 현재는 남한산성 서쪽 청량산 봉우리의 수어장대(서장대라고도 함)만 남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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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관]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는 ‘연무관’

연무관은 각종 군사 훈련을 하는 곳으로 1624년(인조 2)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처음엔 ‘연무당’으로 불리다가 숙종 때 ‘연병관’이라 쓴 현판을 받아 연병관 또는 연무관이라 불렸어. 성을 지키는 군사들은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평상시 체력을 단련하고 무기를 다루며 수련했던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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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사]


승군이 머무르며 성을 지키는 ‘사찰’

남한산성에는 신라시대부터 망월사와 옥정사라는 2개의 사찰이 있었는데 인조가 성을 쌓으면서 7개의 사찰(장경사·국청사·개원사·한흥사·천주사·동림사·남단사)을 추가로 만들었다고 해. 인조는 승려들로 구성된 군대인 승군을 남한산성 축조에 동원하고, 다 지은 후엔 성 안의 사찰에 거주하며 성을 지키도록 했어. 이는 고종 때까지 지속됐대. 남한산성의 사찰은 종교 시설이면서 군사 시설이기도 했었던 거야. 현재는 장경사만 남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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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괘정]


무기제작소와 무기고 옆에 위치한 ‘침괘정’

침괘정은 무기제작소로 추정돼. 침괘정 오른쪽에서 발견된 창고에서 무기를 제작하고 보관했던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야. 1624년(인조 2)에 남한산성 축성 총책임자였던 이서가 수풀 속에서 발견했지. 1751년(영조 27)에 새로 지어 침괘정이라 이름 붙였어. 침괘정에는 아궁이를 통해 난방을 한 흔적이 있어서 무기를 제작하던 사령들이 온돌방에서 쉬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해.

글=권소진 인턴기자, 김동연·김민형·김유진·유다현·이성민·이현성·이환욱·정효상 역사통 기자단 3기(서울 한산초)

자료=문화유산국민신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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