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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문화유산국민신탁·카툰캠퍼스가 함께하는 역사통(通) 기자단 3기 남한산성

온라인 중앙일보 2015.11.2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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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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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렬전]

온조왕을 모신 숭렬전과 군대를 지휘하던 수어장대

역사통 기자단 따라잡기
조선의 장군이 되다 ② 남한산성


기자단은 왕의 영역인 행궁과 신의 영역인 좌전을 지나 서쪽 정상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산 중턱의 ‘숭렬전’은 백제의 온조왕과 남한산성 축성 총책임자였던 ‘이서’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여느 사당처럼 ‘홍살문’을 세워 신성성을 나타내고, 소박한 단청을 통해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으로 봄·가을 제사 때에만 문을 열죠.

이곳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합니다. 청나라와 대치 중이던 밤, 인조의 꿈에 백제 온조왕이 나타나 “적이 사다리를 타고 북쪽 성을 오르는데 어찌 막지 않는가”라며 호통을 쳤대요. 깨자마자 북쪽 성벽을 살핀 인조는 청나라 군대를 발견해 빠르게 물리쳤죠. 이를 계기로 인조는 온조왕을 기리는 사당을 짓게 합니다. 이후에도 인조는 꿈에 나타난 온조왕의 예언에 따라 왕의 사당 옆에 남한산성 축성 책임자 이서의 사당을 지었다고 해요.

숭렬전을 지나 서쪽 정상에서 성벽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면 웅장한 2층 누각 ‘수어장대’가 보입니다. 지휘관이 적의 동태를 살피고, 군대를 지휘하는 건물이죠. 서쪽 청량산 봉우리의 수어장대에서는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직접 군사들을 통솔했다고 해요.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 각 봉우리와 봉암성 봉우리까지 총 5개의 장대가 있었는데 현재는 수어장대만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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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당]


수어장대 마당엔 이회와 관련된 매바위가 있습니다. 남한산성의 동남쪽 축성을 맡았던 이회는 공금을 횡령했다는 모함을 받아 처형 당하게 돼요. 무죄를 주장한 이회는 자신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면 기이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죠. 처형 직후 그의 목에서 튀어나온 매 한 마리가 근처 바위에 앉아 울다가 날아가는 일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소문이 오해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회의 목에서 나온 매가 앉았던 바위를 매바위라고 부르고 신성시하며 수어장대 옆에 그의 넋을 기리는 사당 ‘청량당’을 지어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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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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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


유비무환의 중요성을 일깨운 서문과 북문

한강과 서울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수어장대의 서북쪽 성벽은 산성 길 중 가장 가팔라서 전투에 유용한 지형이기도 하죠. 하지만 병자호란 때에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어요. 서북쪽에 위치한 서문(우익문)과 북문(전승문)은 전투에서 패배하고, 항복하러 가는 길로 이어지는 가슴 아픈 공간입니다.

4개 성문 중 가장 규모가 작은 서문은 청과 최후의 전투를 벌였던 곳입니다. 성벽에 사다리를 걸치고 기어오르는 적군을 막고, 밤 새 세 차례의 공격을 막아냈죠. 하지만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인조는 결국 청의 항복 제안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전투에서 지켜냈던 서문을 통해 항복하러 가게 됩니다. 이 길은 경사가 매우 심해 인조는 말도 타지 못한 채 걸어서 삼전도로 향했어요. 삼전도에 도착한 인조는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을 선언하는 수모를 겪었죠. 청 태종은 이를 기념하는 비석까지 요구했어요. 현재 서울 잠실동에 있는 ‘삼전도비’가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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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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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을 통해 성 밖으로 나온 역사통 기자단.]

서문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북문은 싸움에서 모두 승리한다는 뜻을 담아 전승문이라 불렀어요. 하지만 이름과 달리 법화골 전투에서 장졸 300명이 몰살 당하며 참패한 장소입니다. 조선인 포로와 가축을 미끼로 던져두고, 가파른 언덕 밑에 숨어있던 청군의 위장 전술에 빠졌던 거죠. 당시 군을 이끈 김류 장군은 인조의 신임을 받아 처벌 받지 않았지만 한꺼번에 많은 생명을 잃어 병자호란 최대의 전투로 기록됐어요. 지금도 북문에는 이날을 잊지 말자는 의미의 글귀가 적혀 있죠. 미리 대비하지 못해 전쟁의 요충지로 불린 남한산성에서 겪은 치욕의 역사를 통해 국력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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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역사통 기자단 3기 | “수어장대는 처음엔 1층이었는데, 1751년(영조 27)에 2층으로 보수했어요. 내부에는 ‘무망루,’ 외부에는 ‘수어장대’라는 현판을 걸었죠. 무망루는 치욕과 원한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청나라에 항복한 인조, 볼모로 잡혀간 효종과 백성들의 한을 잊지 말자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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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찬 역사통 기자단 3기 | “인조의 항복과 청 태종을 칭송하는 글은 이조판서 이경석이 썼어요. 치욕적인 일이지만 나라에 힘이 없어 어쩔 수 없었죠. 전쟁을 미리 대비하고, 국력을 키워 놓지 않으면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병자호란의 역사를 기억하며 준비하는 자세를 길러 승승장구 발전하는 나라를 만들어야겠어요.”


역사통(通) 기자단의 생각이 커지는 워크북

‘생각이 커지는 워크북’은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취재하고 그 내용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코너입니다. 다양한 방식의 퀴즈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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