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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몇 명이나 희생될까”

온라인 중앙일보 2015.11.22 00:01
오미드 파테히 카라조와 아내 나데레, 딸 와냐(10)는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며칠 뒤 그들은 그리스의 섬 중 어느 하나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비좁은 고무보트를 타고 터키 해안에서 출발할 예정이다. 그들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를 위해 집의 소파에 함께 앉아 웹캠을 바라봤다.

시리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지를 탈출해 유럽으로 가는 난민들, 추위·배고픔으로 사망자 속출할 듯

카라조는 통역사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내가 중간 중간에 끼어들었다. 딸 와냐는 그들의 무릎에 앉았다가 곁에 앉기를 반복하며 수줍게 웃었다. 그녀는 “겁나요”라고 말했다. “특히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는 바닷길이 위험하거든요.” 그녀는 수영을 할 줄 알지만 부모는 그렇지 않다. 카라조는 떠나기 전에 구명조끼를 구입할 생각이다.

그들은 원래 이란 쿠르드족 자치구의 수도 사난다즈에서 살았다. 약 3년 전 카라조가 쿠르드 정당에 가입한 일로 체포돼 고문당한 후 그들은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구로 피신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이란 보안군의 협박을 받자 그들은 다시 국경을 넘어 터키의 에스키세히르에 가서 지금까지 19개월을 지냈다.

겨울이 다가오고 이동의 위험이 커지지만 그들은 더는 터키에서 살 수 없다고 말했다. 터키인이 쿠르드족을 인종적으로 차별하고 학대하기 때문이다. 카라조는 최근 이웃에게 공격당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쿠르드족이 터키에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떠나라고 했다. 카라조는 “우리에겐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럽의 겨울은 매우 춥다고 하지만 이곳에서 위협에 시달리는 것보단 낫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온이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지중해를 건넌 난민이 21만8394명이나 됐다(지난해 10월엔 2만3050명이었다). 이전엔 난민위기가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여름철엔 유럽으로 넘어오는 난민이 많지만 겨울철엔 크게 줄곤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이동 경로가 바뀐 것이 큰 이유다. 터키에서 출발해 그리스로 향하는 난민이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난민의 약 4배로 늘었다. 터키에서 그리스까지는 튼튼한 배로 2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에게해에 몰아치는 겨울 폭풍으로 폭우가 쏟아지고 파도가 높아 밀입국 알선업자들의 고무보트로 항해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대다수 난민은 거리가 짧아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는다.

터키~그리스 겨울철 배삯 1500달러

지난해엔 그 경로를 선택한 난민이 4만1000명 남짓했지만 올해 들어 인기가 크게 높아졌다. 애드리언 에드워즈 UNHCR 대변인은 “터키에서 그리스로 건너가 발칸반도를 통과하는 것이 올해의 최고 인기 노선이 됐다”고 말했다. 시리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의 분쟁이 악화된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다. 그 나라들의 출신이 그리스에 도달하는 난민의 93%를 차지한다.

그 나라들은 터키와 가까워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경로를 택할 이유가 없다. 그 나라들을 탈출하는 난민은 올겨울에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러시아가 지난 9월 말 공습을 개시한 이래 시리아 내전은 더욱 치열해졌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탈레반이 꾸준히 약진하고 있다.

전쟁 난민은 경제 난민과 달리 출발 시기를 선택할 여유가 없다. 터키와 레바논 같은 나라에서 돈 없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난민은 유럽으로 건너간 사람들의 성공을 보고 또 한 차례의 추운 겨울을 그곳에서 지내느니 그들의 뒤를 따르려고 한다. 또 유럽연합(EU)이 국경을 폐쇄하거나 터키와 국경 단속 협약을 맺을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난민도 많다. 그들은 아무리 춥고 위험해도 서둘러 유럽으로 건너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밀입국 알선업자들은 사업에 타격을 받을까 우려해 할인 가격으로 난민을 유혹한다. 한 업자는 뉴스위크와 가진 SNS 인터뷰에서 특별 겨울철 할인가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여름철엔 터키에서 그리스까지 뱃삯이 1인 당 1500∼2000달러지만 지금은 1000∼1500달러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하얀 요트 사진이 올라 있지만 유럽에 도달한 난민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선 사진 배경에 검은 고무보트가 보인다.

카라조 가족은 1200달러씩 주고 터키에서 그리스로 건너가기로 했다. 카라조는 공사판에서 일하며 하루 10달러씩 벌었지만 뱃삯을 대기엔 턱없이 모자라 친척과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 그들이 바다를 안전하게 건넌다고 해도 그리스에서 임시 거처를 찾기는 너무도 어렵다. 국제앰네스티·세이브 더 칠드런 같은 인권단체는 그리스 정부가 적절한 수용시설을 마련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로마에 본부를둔 가톨릭 구호단체 국제카리타스의 패트릭 니콜슨 홍보국장은 “텐트에 방한 설비를 갖춰야 하지만 아직 여름철에 쓰던 것 그대로”라고 말했다. 난민은 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소속 절차를 밟으려면 방한 설비가 없는 텐트에서 48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건물 현관이나 나무 아래서 잠을 청하는 난민도 있다고 니콜슨 국장이 말했다. 그는 지난 9월 마케도니아 국경 부근의 그리스 마을 이도메니를 방문했을 때 철로 위에서 자는 난민도 봤다.

난민이 통과하는 유럽과 발칸반도에 적절한 수용시설이 없는 것이 큰 문제다. 에드워즈 UNHCR 대변인은 “유럽 전체로 볼 때 대규모 난민 유입을 위한 적절한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라마다 수용시설이 큰 차이가 난다.” 여름철엔 노숙하거나 얇은 텐트에서 잘 수 있지만 겨울철엔 특히 추위가 심한 발칸반도에서 그렇게 지내기는 불가능하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고 폭설이 도로를 막을 때면 동사하는 현지 주민이 적지 않다. 며칠 동안 집 밖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따라서 서유럽으로 가기 위해 그곳을 통과하다가 목숨을 잃는 난민이 속출할 게 뻔하다. 에드워즈 대변인은 “올겨울은 극도로 절망적이다”고 말했다. “수용시설이 미비해 많은 난민이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세르비아 국경에서 가까운 크로아티아 오파토바츠 난민캠프에선 벌써 기온이 약 2℃까지 떨어지고 비도 자주 내린다. 세이브 더 칠드런의 어린이 보호 자문관 샬로타 란드-알 헤브시는 수용시설과 기본 서비스가 부족해 어린 아이들이 비에 젖은 채 추위에 떨며 야외에서 잔다고 말했다.

헝가리가 세르비아와의 국경을 폐쇄한 후 지난 10월 16일 크로아티아와의 국경까지 폐쇄한다고 발표한 이래 많은 난민이 오스트리아로 가려고 슬로베니아를 통과하면서 병목현상이 빚어졌다. 그리고 21일 크로아티아 국경과 가까운 슬로베니아 브레지체 캠프의 난민은 텐트를 불태우며 열악한 조건에 항의했다. 그들은 기다림에 지친데다 음식과 물, 추위를 막아줄 담요도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카라조 가족은 돈이 부족해 방한복을 구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카라조는 일단 그리스에 도착하면 다른 난민을 따라 이동하겠다고 말했다. 딸 와냐는 어디서 살고 싶으냐고 묻자 통역사를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어머니의 친척이 사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여윈 열 살짜리 소녀가 비와 추위 속에서 유럽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는 모습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구호기관이 임시 캠프에서 우의와 마른 옷, 담요를 나눠주지만 이동하는 난민을 따라다니며 그들을 보살필 순 없다. 유럽 정부와 기관, 구호단체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다. 에드워즈 대변인은 “캠프의 월동 프로그램을 가동하지만 난민이 너무 많아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월동 준비를 서두르는 구호기관들은 난민 다수가 목숨을 잃는 것을 엄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들이 떠올리는 암울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올겨울에 과연 몇 명이나 희생될까?”

- MIRREN GIDDA 뉴스위크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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