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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권력 서열 1~7위 한자리 모은 후야오방

중앙일보 2015.11.21 01:18 종합 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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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후야오방 전 총서기 탄생 100주년 기념 좌담회에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전원이 참석했다. 왼쪽 셋째부터 장가오리 부총리, 류윈산 상무위원, 장더장 전인대 위원장,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 위정성 정협 주석, 왕치산 중앙기율위 서기. [베이징 신화=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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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야오방

‘비운의 개혁파’ 후야오방(胡耀邦·1915∼89)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탄생 100년을 맞아 사실상 복권됐다. 관영 신화통신은 2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후야오방 탄생 100주년 기념 좌담회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전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은 “후야오방 전 총서기는 개혁·개방에 위대한 공헌을 했다”고 칭송했다. 공산당 의전상 최고 격식을 갖춰 후의 탄생 100년을 기념한 건 공식적 복권 선언으로 해석된다. 후의 어록과 원고를 정리한 『후야오방 문선』과 사진 496장을 담은 『후야오방 사진집』도 발간됐다. 국영 중국중앙방송(CC-TV)은 이날부터 5부작 다큐멘터리 ‘후야오방’ 방영을 시작했다. 오는 23일 후난성 류양(瀏陽) 후의 생가에서 기념식이 열린다.

탄생 100년 좌담회, 복권 공식화
시진핑 “개혁·개방에 위대한 공헌”

 10대 소년 시절부터 공산당 혁명에 투신한 후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제1서기 등을 거쳐 1982년 공산당 최고위직인 총서기에 올랐다. 하지만 과감한 정치 개혁과 자유화를 추진하다 보수파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87년 학생 민주화 운동에 동정적 입장을 취했다는 비판을 받고 실각했다.

 후는 78년 광명일보에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란 논문을 발표해 덩샤오핑의 실사구시 노선이 ‘마오쩌둥(毛澤東)은 무조건 옳다’는 화궈펑(華國鋒)과의 노선 투쟁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문혁 때 축출된 당 원로와 간부 복권에 앞장섰다.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도 이때 복권됐다. 시중쉰은 87년 후의 실각에 유일하게 반대했다. 후의 아들 후더핑(湖德平)은 시 주석과 절친 사이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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