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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몰랐다, 이 4명이 얼마나 독한지

중앙일보 2015.11.21 00:45 종합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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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야구대항전 프리미어 12 한국-일본의 준결승전.

한국 프로야구 대표적 악바리들
9회 연속 안타, 몸에 맞는 볼 …
몸 안 사리고 물고 늘어져 출루
끝났다 하는 순간 대역전 물꼬


 김인식(68) 대표팀 감독은 0-3으로 뒤진 9회 초 선두타자로 대타 오재원(30·두산)을 내보냈다. 왼손타자 오재원은 오른발로 홈플레이트를 꾹꾹 밟은 뒤 타석에 들어섰다. 마치 ‘몸쪽 공은 내 영역이다’라는 메시지를 일본의 두 번째 투수 노리모토 다카히로(라쿠텐)에게 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노리모토의 5구째 변화구를 툭 밀어쳐 좌전 안타를 뽑아냈다. 1루로 뛰어가며 오재원은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했다.

 이어 두 번째 대타 손아섭(27·롯데)이 등장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근성이 가장 강한 선수라는 말을 듣는 그는 노리모토를 매섭게 노려보며 중전안타를 쳐냈다. 무사 1·2루에서 1번타자 정근우(33·한화)가 좌익선상 2루타를 때려내 오재원을 불러들였다. 앞서 7회 초 공격에서 일본의 에이스 오타니 쇼헤이(니혼햄)로부터 첫 안타를 때려낸 정근우는 대표팀의 첫 타점도 기록했다.

 다음 차례는 이용규(30·한화)였다.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오른다리를 스트라이크존까지 뻗는 그의 타격자세는 투수들이 무척 싫어하는 동작이다. 몸쪽 공을 쉽게 던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 순위결정전에서 일본 우쓰미 데쓰야(요미우리)가 이용규의 머리로 ‘헤드샷’을 던진 이유도 투수의 신경을 건드리는 타격폼 때문이다. 이용규는 더 악착같이 홈플레이트 쪽으로 붙었다. 결국 오른 팔꿈치 보호대를 스치는 사구를 얻어내 무사 만루를 만들었다. 보통 타자들이라면 절대 몸맞는 공을 얻어낼 수 없는 코스였다.

 이후 김현수(27·두산)가 밀어내기 볼넷, 이대호(33·소프트뱅크)가 역전타를 날리면서 한국은 4-3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기적의 흐름을 만든 건 분명 앞선 네 명의 독종이었다.

 오재원은 승부욕이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많은 안티팬을 갖고 있다. 2루수 오재원은 지난달 11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1루 커버를 하다 넥센 서건창과 충돌했다. 넥센 선수들은 오재원이 과격한 동작으로 서건창을 태그했다며 그라운드로 몰려나왔다. 오재원은 4차전이 끝날 때까지 넥센 팬들의 야유를 받았다. 상대 선수들과 팬들에게 그는 불편한 존재다.

 오재원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더 독해졌다. 홈플레이트를 꾹꾹 다지는 동작은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야구팬은 “오재원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우리 편’이 되니 정말 멋지다. 난 이제부터 그의 팬”이라고 인터넷 게시판에 썼다.

 정근우도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상대를 괴롭히는 선수다. 그러나 국가대표가 되면 모두가 응원하는 1번타자가 된다. 일본전 승리 후 정근우는 “노리모토의 공이 좋았지만 오타니와 비교하면 해볼 만 했다. 어떻게든 살아나가고 싶어서 집중했다” 고 말했다. 이용규는 지난주 대만리그에서 탈수증세로 고생했다. 김인식 감독은 “이용규에게 뛸 수 있냐고 물어보면 곧바로 ‘뛸 수 있습니다’라며 뛰어 나간다. 정말 대단한 악바리”라며 혀를 내둘렀다.

 김인식 감독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명승부에 마침표를 찍은 건 이대호였지만 네 선수의 근성이 없었다면 기적 같은 역전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야구는 ‘힘’은 달렸지만 ‘악’ 으로 이겨냈다.

 ◆오늘 오후 7시 미국과 우승 다툼=미국은 20일 준결승에서 멕시코를 6-1로 꺾었다. 결승에 선착한 한국은 미국과 21일 오후 7시 도쿄돔에서 우승을 다툰다. 지난 15일 조별리그에서 미국에 2-3으로 패한 한국은 결승전에 김광현(27·SK)을 선발로 내세운다. 미국은 잭 세고비아를 선발로 예고했다.

도쿄=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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