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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무기 한 건만 따내도 수백 억 ‘대박’ … 군 간부 자녀 학비도 대줘

중앙일보 2015.11.21 00:39 종합 1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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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의 대당 가격은 2000억원가량이다. 차세대구축함사업(KDX).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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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차미사일 토(TOW) 도입에도 수천억~수조원이 소요됐다. [중앙포토]

“방산비리 정점에 거물 중개상들이 있었습니다. 군과의 유착 관계가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했어요.”

[뉴스 속으로] 방산비리 ‘거물’ 중개상들
장교·경찰 출신, 미국 시민권자도
예비역 장성 고문으로 영입해 로비
“현역 장군들에겐 을이 아닌 갑”


 21일로 출범 1주년을 맞는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합수단) 소속 A검사는 그동안의 수사 결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말 ‘거물급 무기중개상 3~4명이 비리에 연루된 단서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무기 도입 과정에서 전·현직 군 간부들에게 뒷돈을 건넸다는 첩보였다. 이는 1년 뒤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A검사는 “군 최고위층도 거물 무기중개상과 일회성 대가를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오랜 세월 공생 관계로 함께 성장했다”고 말했다.

 합수단은 지금까지 정옥근(63) 전 해군참모총장 등 전·현직 군 장성 10명을 포함해 66명을 뇌물수수 등 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들의 뒤에 지난 30여 년 굵직한 무기 도입 사업에 관여해온 이규태(66) 일광공영 회장과 정의승(76) 전 유비엠텍 대표, 무기중개업체 S사 대표 함모(59)씨 등 거물급 무기중개상 3명이 있었다. 이 회장은 이미 구속 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지만 나머지 2명에 대한 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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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도소 담장 위의 거물 중개상들=현재 정씨는 독일 잠수함 도입 과정에서 받은 1000억원대 수수료를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을, 함씨는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등 무기중개 사업을 따내는 과정에서 금품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합수단이 방대한 분량의 압수물을 분석하며 두 사람에 대한 단서를 차곡차곡 쌓을 무렵 거물급 무기중개상인 이규태 회장에 대한 범죄 단서가 포착됐다. 검찰은 지난 3월 일광공영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들어갔고 이 회장을 1100억원대 공군 전자전훈련장비(EWTS)를 사기 납품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 회장은 ‘무기 중개’라는 말이 낯설던 1980년대 이 분야에 뛰어든 1세대 무기중개업자로 통한다. 80년 간부후보로 경찰에 입문한 그는 5년 남짓 경찰 생활을 한 뒤 85년 일광공영을 설립해 무기중개업자로 변신했다. 이 회장이 ‘거물’로 성장한 계기는 2002~2006년 진행된 2차 ‘불곰 사업’이다. 불곰 사업은 소련에 대한 차관을 러시아제 무기로 대체해 받는 사업이다. 당시 이 회장은 러시아 무기제조 업체들의 대리인으로 활동하며 대전차 유도미사일 METIS-M과 공기부양정 무레나(Murena) 등 3억1000만 달러 규모의 사업을 중개했다. 수수료로 84억원을 챙기며 단숨에 업계의 ‘큰손’으로 올라섰다. ‘불곰 이규태’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지난 7월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된 전 유비엠텍 대표 정의승씨는 77년 해군 중령으로 예편한 뒤 무기중개업에 뛰어들었다. 독일 방산업체 엠테우(MTU)의 한국 지사장으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독일제 무기 도입 중개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한때 ‘해군 무기의 80% 이상을 독점 중개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영향력이 막강했다고 한다. 그는 93년 율곡비리 사건에 연루돼 사법처리됐다. 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에게 뇌물 3억원을 건넨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합수단 관계자는 “정씨는 전역한 지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현역 해군 장성들이 정씨를 어려워할 정도”라며 “정씨는 을이 아닌 갑”이라고 했다.

 해상작전헬기 도입 과정에서 군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벌인 의혹을 받고 있는 함씨는 미국 시민권자로 미국에서 무기중개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치열한 미국 무기 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함씨는 한국으로 눈을 돌렸고 1조원대 규모의 와일드캣 사업을 중개하는 데 성공했다. 합수단은 군 경력이 전무한 함씨가 예비역 장성과 전역한 영관급 장교들을 고문 등으로 대거 영입해 ‘로비’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합수단 수사 과정에서 함씨는 최윤희(62) 전 해군참모총장과 한국국방연구원 관계자 등에게 전방위 금품 로비를 편 정황이 드러나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법원은 “전달된 돈의 성격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잘되면 ‘로또’, 안 돼도 ‘본전’=방위사업 관리규정은 ‘군 무역대리점(무기중개상)’을 ‘외국 수출입업자의 위임을 받아 물품을 수출입하는 계약의 체결 및 부대행위를 업으로 영위하는 자’로 정의한다. 군에서 필요로 하는 무기 등 물건을 중개하는 게 기본 업무다. 합수단에 따르면 무기 구매 예산은 2005년 7조원 수준에서 2015년 11조원으로 크게 늘었다. 방위사업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군 당국이 무기중개상을 통해 체결한 무기 도입 계약은 2조5800억원 규모다. 통상 무기중개상이 가져가는 수수료 5%만 적용해도 1300억원을 중개업자들이 챙겼다는 계산이 나온다.

 무기 도입 시장이 커지면서 방사청에 등록된 무역대리점(무기중개상)도 2005년 480곳에서 10년 만에 944곳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상위 10개 업체가 전체 거래의 90%를 싹쓸이한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무기중개상이 줄어들지 않는 건 거액의 수수료 때문이다. 적게는 몇 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에 이르는 무기 도입 중개 한 건만 따내도 ‘로또’를 맞는 셈이다.

 ‘로또 당첨’을 기대하는 무기중개상들이 신경 쓰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 무기 도입에 직접 관여하는 부서와 이들을 감시하는 기무사 등 군 수사당국 관계자들에 대한 ‘관리’다. 현금이나 상품권을 당사자에게 직접 건네는 건 옛날 방식이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자녀를 둔, 전역 직전의 50대 초·중반 간부가 주요 타깃이라고 한다. 자녀들에겐 학비와 용돈을, 간부 본인에겐 전역 후 일자리를 보장하며 오랜 기간 ‘공’을 들인다. 중개 사업을 따내지 못해도 손해는 아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무기를 판매하는 회사에서 기본적인 홍보비나 활동비를 지불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개를 성공하면 대박, 실패해도 본전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비리 의혹=무기중개상으로 국내에서 가장 유명세를 떨친 인물은 린다 김(62)이다.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95년 공군의 2200억원대 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백두·금강 사업)에서 미국 방산업체의 대리인으로 활동하며 군 기밀을 빼낸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재미동포 사업가 고(故) 조풍언씨가 ‘숨은 실세’로 통했다. 무기중개상 김영완씨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을 정도로 각종 의혹에 휩싸였다.

 이처럼 무기중개상들의 비리 의혹이 정권마다 반복되는 이유는 그들이 취급하는 물건의 가격이 천문학적인 수준이라서다. 게다가 중개 과정이 ‘군사기밀’에 해당돼 밖으로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합수단 관계자는 “사관학교 때부터 시작해 군 생활까지 거의 같이 근무해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기 어렵다”며 “이런 폐쇄적인 조직 문화도 비리 근절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방위사업 비리 근절 대책’을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대책의 핵심은 합수단 수사의 후속 조치로 방위사업 비리를 상시 감독하는 방위사업감독관을 신설하고 방사청 퇴직자의 민간취업 제한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욱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군과 방사청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게 더 중요하다”며 “무기 도입 과정의 매뉴얼을 명확하게 만드는 작업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백기·이유정 기자 key@joongang.co.kr

[S BOX] 이규태 회장, 공군 전자장비 사업비 20% 수준 216억 챙겨

지난 2002년 3월 31일 무기중개상 김영완씨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 9인조 떼강도가 들이닥쳤다. 강도들이 김씨 집에서 털어 간 현금은 7억원, 미화·엔화 등 8억2000만원이었다고 한다. 수표·채권 등을 합친 피해 규모는 100억원대에 달했다. 그로부터 9년 뒤 붙잡힌 강도범은 자기가 턴 금액이 1400억원대라고 주장해 어안을 벙벙케 했다.

 도대체 무기중개상은 돈을 얼마나 버는 걸까. 통상 무기중개상은 총 사업비의 3~5%를 커미션(수수료)으로 받는다. 수조원대 대형 국책 무기 도입 사업의 경우 수수료만 수백억원에 이른다.

 린다 김은 김영삼 정부 때 통신정찰기 도입 사업인 백두사업 중개로 1000만 달러(약 117억원)를 받았다고 한다.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은 2000년대 중반 러시아제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 2차 때 러시아 무기업체 측 중개를 맡아 수수료·착수금으로 84억원을 가져갔다.

이 회장은 자신 몫의 돈을 돈암동 소재 교회 기부금으로 ‘세탁’한 혐의가 드러나 2012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러시아 업체와 맺은 계약에 따르면 불곰사업 2차 사업비 3억1000만 달러의 중개 수수료 1387만4000달러 가 이 회장 등 중개상들의 몫이었다. 이 회장은 재판 중인 공군 전자전훈련장비(EWTS) 도입 사업에서는 터키 하벨산사로부터 사업비(1101억원)의 20% 수준인 216억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중개상 수수료는 무기 도입비를 부풀리는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이 때문에 중개상 수수료를 의무 공개하는 ‘수수료 신고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방위사업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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