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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24시

중앙일보 2015.11.21 00:32 종합 17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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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디지털포렌식센터에서 최준원(왼쪽)·박인영 분석관이 스마트폰에서 발견한 증거를 분석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좋은 아침입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아동음란물 단속하기 위해
하루 종일 포르노만 보니
정신 혼미, 아무 느낌 없어


 지난 9월 11일 금요일 오전 8시30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국제협력팀 홍성진(34) 경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통화 발신지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제협력팀. 전화 속 요원은 유창한 영어로 도움을 요청했다. 나이지리아인 A씨가 미국 유타은행 직원에게 자신을 ‘항공기 대여업체 직원’이라고 속여 한국 외환은행으로 9만 달러(약 1억원)를 송금토록 해 빼돌린 사건과 관련해 공조 수사를 요청해 온 거였다. A씨는 실제 존재하는 항공기 대여업체의 홈페이지에 알파벳 하나만을 추가해 가짜 홈페이지를 만든 뒤 유타은행 직원을 속이는 수법을 썼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은 국제협력팀에 사건을 배정하고 계좌 추적에 나섰다. 같은 날 오후 1시. 수사팀은 경기도 평택 외환은행 지점으로 돈이 송금된 사실을 확인하고 은행 측에 인출 연기를 부탁했다.

 주말이 지나 은행이 문을 연 14일. 돈을 찾으러 온 나이지리아인 B씨(33) 등 2명이 현장에서 대기 중이던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공범 D씨(48)도 붙잡았다. 지난달 13일 서울중앙지검은 이들을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러자 FBI 측이 홍 경감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수사가 빨리 진행될 줄 몰랐다. 미국과 정보 분야 우방인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를 함께 일컫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이어 한국은 ‘여섯 번째 눈(sixth eye)’이다”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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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소속 110명의 경찰은 ‘국경 없는 범죄’의 최전선에 서 있다. 안전국 산하엔 사이버안전과·디지털포렌식센터·사이버범죄대응과 등 3개 부서가 있다. 사이버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범죄를 다룬다. 동남아 지역에 서버를 두고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한국인을 찾기 위해 24시간 도박 사이트를 모니터링 하는 수사관도 있다. 때로는 실제 도박에 참여해 단서를 찾기도 한다.

 2012년 8월 30일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발생 당시 범인 고종석(당시 23세)이 아동음란물을 보며 범행을 계획했다는 경찰 발표가 나갔다. ‘아동음란물 단속 강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시 홍 경감도 토렌트(파일 공유 사이트)에 올라온 40GB 분량의 아동음란물을 보며 서버를 분석해야 했다. 홍 경감은 “아침부터 밤까지 음란물만 보고 있었더니 처음엔 정신이 혼미해졌다가 좀 지나니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며 “불법 음란물을 단속하는 경찰이 경찰청에서 음란물을 보고 있는 모습이 아이러니했다”고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디지털 증거 분석 능력은 사이버안전국 요원이 갖춰야 할 필수 역량 중 하나다. 최준원 분석관은 포털사이트 업체에서 근무하던 중 특채로 뽑힌 컴퓨터 보안 전문가다. 최 분석관은 “아파트 10층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스마트폰을 분석하다 음성녹음으로 저장된 유서를 발견했다”며 “‘그분이 남긴 마지막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자 단서를 찾았다는 뿌듯함보다 숙연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분석관들은 주로 약 16㎡(5평) 남짓의 작은 공간에서 증거 분석을 한다. 한쪽에는 현미경·핀셋 등이 놓여 있고 다른 한쪽에는 다양한 종류의 스마트폰 기기가 진열돼 있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늘면서 모바일 기기 분석 능력은 더 중요해졌다. 실제로 2014년 모바일 기기 디지털 증거 분석 건수는 1만656건이었지만 올해는 1~10월에만 1만6600건이다. 지난 한 해 전체 건수를 넘어섰다.

 아쉬운 점은 예산 부족이다. 홍 경감은 “해외 수사기관에서 자료를 받아와야 할 때도 있는데 예산이 부족해 자비를 들여 출장을 다녀오거나 항공기 조종사를 통해 밀봉된 증거 자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국제협력팀의 한 해 예산은 2013년부터 6000만원으로 동결돼 있다.

박병현 기자 park.b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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