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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작은 자의 힘

중앙일보 2015.11.21 00:15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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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석
시인·단국대 교수
영어영문학과

다운증후군 아들을 둔 어느 시인의 이야기다. 그의 아들은 현재 스물일곱 살의 청년인데 지능과 몸집은 초등학교 4~5학년 정도밖에 안 된다. 자식이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시인은 장애아를 둔 여느 부모들처럼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사실 자체를 감당할 수 없었고, 어마어마한 치료비와 특수교육비도 큰 부담이었다. 빚을 내가며 오랫동안 치료와 교육에 매달렸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의사는 아무리 치료가 잘 되더라도 결국 초등학교 4~5학년 이상의 지능을 가질 수 없다고 선언했다.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억장이 무너졌다. 절망의 끝에서 시인 부부는 안타깝게도 여러 번 자발적 죽음을 생각했다. 그러나 운명은 이들을 절벽으로 내몰지 않았다. 벌써 27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실을 거부하던 시인 부부는 현실을 조금씩 수용하면서 고통의 터널을 어렵게 지나왔다.

 늘 집 안에 갇혀 살던 청년이 처음 사회생활을 한 것은, 시인의 친구가 사장으로 있는 어느 공장에서였다. 친구의 권유와 도움으로 청년은 매일 공장에 출근하여 하루 종일 나사 닦는 일을 했다. 흐린 하늘에 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 공장에 나간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시인 아빠는 얼굴에 기름칠을 한 채 나사를 닦고 있는 아들을 찾아갔다. 아들 옆에 말없이 앉아 자기도 나사를 닦아보았다. 장애인 아들이 하기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시인 아빠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들의 손을 잡고 집에 가자고 했다. 그러나 아들은 어느새 그 일에 흠뻑 빠져서 집에 가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서서히 연봉 1000만원을 받는 노동자가 되어갔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청년이 번 돈은 청년의 통장에 고스란히 저축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청년은 다니던 성당에서 다른 장애인들과 바리스타를 배우게 되었다. 그는 또 이 일에 빠져들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능숙하게 커피를 내리게 된 지금, 그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 작은 카페의 사장이 되었다. 물론 카페의 운영은 부모의 몫이다. 그러나 그의 공식 직함만큼은 어엿이 사장이다. 아빠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다운증후군 아들과 함께 일하도록 하고 있다. 시인 아빠에 의하면, 오픈한 지 일 년여가 된 카페는 지금도 매월 100만원가량의 적자를 보고 있다. 그래도 앞으로 4년은 더 버틸 수 있다며 시인 아빠는 웃는다. 아들이 공장을 다니며 모아놓은 돈이 아직도 꽤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때 자발적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시인 아빠와 엄마는 요즘 이 아들에게서 깊은 치유의 기쁨을 얻고 있다. 아빠와 엄마가 청년을 돌보는 게 아니라 거꾸로 장애인 아들로부터 이들이 삶의 동력을 얻고 있다. 고난의 세월을 거쳐 온 아들의 가슴속엔 신기하게도 사랑밖에 없다. 그는 비장애인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할 때면,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잘못했다고,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한다. 그의 인생관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며,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페 일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서도 늘 일거리를 찾는다. 설거지부터 시작해 집안 청소 등, 도대체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보다 못한 시인 아빠가 만류할 때까지 말이다. 아들이 말하는 공부란 다름 아닌 성경 읽기다. 신명이 좋은 시인 아빠가 기타라도 치며 놀고 있으면, 아들이 다가와 “아빠,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해”하면서 성경책을 내민다. (특정 종교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이 불경이면 어떠랴.)

 이 청년이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신부(神父) 놀이’다. 시인 아빠는 아들을 위해 작은 방 하나를 미니 예배당으로 꾸며주었다. 이 방에는 강대상도 있고 양쪽에 큰 초도 놓여 있다. 장애인인 아들은 스스로 사제가 되어 비장애인인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 앞에서 기도를 한다. “서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열심히 일하게 해 주세요” “열심히 공부하게 해 주세요”. 이것이 청년이 매일 하는 기도다. 이 기도로 나머지 가족이 큰 힘을 얻는다. 작은 자가 때로 큰 자를 이긴다.

오민석 시인·단국대 교수 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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