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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집 속에 집을 짓다, 미국 땅에 둥지 튼 성균관 명륜당

중앙일보 2015.11.19 02:30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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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한국실 개관 행사에서 국가실 학생 가이드 모임인 ‘쿼바디스’ 회원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한국 교민과 각국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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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실이 자리 잡은 미국 피츠버그시 피츠버그대 ‘배움의 전당’의 전경.

‘명륜당’이란 문패가 걸린 문을 열자 한옥 대문이 나온다. 둥근 원주 두 개가 당당하다. 건너편 마루 위 넉넉한 창문 너머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보인다. 한걸음 내딛자 열 맞춰 들어찬 책상과 의자가 반들반들 빛난다. 엄정하고 맑은 기운이 방 전체를 휘감는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피츠버그시 피츠버그대 ‘배움의 전당(Cathedral of Learning)’ 건물 304호. 7년에 걸쳐 조성된 ‘한국실(Korean Heritage Room)’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피츠버그대가 자랑하는 ‘국가실’의 서른 번째 방으로 탄생한 한국실은 ‘집 속의 집’으로 보는 이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장기 프로젝트를 지휘해온 맥신 브루넌(91) 담당 교수는 “못 하나 안 쓰고 나무들을 짜 맞춰 교실 안에 한옥을 재현한 한국 목수들의 솜씨가 놀랍다”고 칭찬했다. 긴 줄을 이뤄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손님들은 신기한 듯 창살무늬를 쓸어보고 의자에 앉아 책상을 어루만졌다.

‘배움의 전당’에 30번째 국가실
1500여 교민들 후손 위해 힘 모아
국제교류재단·아름지기 등 후원
한국 대목수 직접 가서 한옥 재현
“학교가 있는 한 이어질 외교 요람”

 한국실은 피츠버그에 정착한 1500여 한국 교민들이 후손을 위해 힘을 합쳐 지은 선물이다. 1970년대에 의사로 이민 온 이관일씨는 “각국의 문화 전통과 자부심을 담아낸 국가실에 한국실이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어 자랑스럽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씨는 2007년 한국실을 만들기 위해 구성된 위원회의 초기 위원 중 한 명으로 박상종 박사, 데이비드 김 등과 함께 기금 조성과 공사 진행을 이끌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유현석)과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는 현지로 날아가 사업 후원과 실무를 맡았다. 설계자인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 명륜당의 틀, 학문 연구와 인격 도야의 선비정신을 되살린 강의실로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건축가 이민아, 가구디자이너 하지훈, 시각디자이너 안상수, 도예가 이영호씨 등이 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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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실 내부. 성균관 명륜당을 본떠 만들었다.

 로비에서는 한국실 개관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졌다.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합창단이 아리랑을 부르고, 사물놀이패가 풍물을 울렸다. 김밥과 한과 등이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에서는 교민들이 손을 맞잡고 기쁨을 나눴다. 한인회 임원인 박영혜씨는 “이 교실에서 대를 이어 공부할 우리 아이들이 조국에 긍지를 지니게 됐다”며 감격해했다. 김기환 주뉴욕 총영사는 “이제까지 지어진 서른 개 방 중에서 한국실이 가장 아름답고 독창적이라는 평을 들었다”고 기뻐했다.

 대학 측과 위원회, 실무진과 현장을 오가며 대화와 의견 조율의 다리 구실을 한 박상종 박사는 “한국실은 피츠버그대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살아있는 공공외교의 마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츠버그(미국)=글·사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국가실(Nationality Room)=미국 피츠버그대 ‘배움의 전당’ 1층과 3층에 조성된 문화관 성격의 각국 강의실 겸 전시 공간. 철강 도시 피츠버그가 각국에서 모여든 노동 이민자의 정체성 함양과 화합을 위해 1926년부터 위원회를 설치한 뒤 38년 ‘초기 미국실(The Early American Room)’을 시작으로 90년 간 아르메니아실, 중국실, 스위스실 등 30개를 만들었다. 해당 국가의 전통 건축 양식과 디자인, 정신성과 문화력을 견주어볼 수 있는 기념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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