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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커 돈 쓰러 오는데 … 연 9조 면세점 시장, 규제로 묶어놔

중앙일보 2015.11.19 01:56 종합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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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한국 면세산업이 정부발 ‘진입 규제’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한국 면세점 세계 1위 만든 업체들
5년 사업권에 묶여 경쟁력 위협
“누가 수천억 붓고 직원 뽑겠나”


 유럽은 물론 중국과 일본·대만 등이 면세점을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출 기업’으로 키우고 있는 반면 한국은 국내용 독과점 논리를 잣대로 삼는 바람에 면세산업 전체를 ‘규제산업’으로 가둬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면세 시장은 최근 5년 사이 눈부시게 성장해 2012년부터 중국·미국 등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중국 관광객의 증가와 ‘한류 열풍’,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와 경영 노하우가 시너지를 낸 결과다.

 면세산업은 관광산업과 동반 성장 중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 목적 1위는 단연 ‘쇼핑’(72%)이었다. 실제 지난해 한국 면세 시장은 77억8100만 달러(약 9조1326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관광수입 19조원 중 5조원(27%)이 면세점에서 나왔다. 문제는 2013년 개정 관세법에 따른 ‘5년짜리 시한부 사업권’이다. 그동안 면세 사업권은 영업상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10년 단위로 갱신됐지만 법이 개정돼 특허 기간이 5년으로 단축되고 기존 사업자도 재입찰을 통해 원점에서 심사받도록 했다.

그 결과 지난 14일 세계 3위 롯데면세점이 운영하는 월드타워점이 89년 개장 이후 26년 만에 탈락했다. SK네트웍스 역시 23년 된 면세사업부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탈락 후유증은 롯데·SK 등 특정 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제도 자체가 면세산업 특성과 정면으로 배치돼 앞으로 누가 사업을 하든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심각한 건 사업의 지속성이 5년마다 위협받는다는 점이다. 관세청은 심사를 할 때 ‘관리역량’과 ‘경영능력’을 가장 크게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탈락 사례로 심각한 위법이나 실적 부진이 없더라도 사업권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됐다.

 이런 불확실성은 투자 위축으로 직결된다. 워커힐면세점은 최근 1000억원을 들여 매장 면적을 두 배로 늘려 12월 재개장 예정이었다. 월드점도 불과 1년 전 3000억원을 투자해 인테리어를 개선했다.

 최영수 전 면세협회 회장은 “면세점은 초기에 시설비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최소 10년은 돼야 자리를 잡는다”면서 “5년 사업하려고 누가 수백~수천억원을 붓고 누가 직원을 정규직으로 뽑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세계인을 상대로 하는데 국내 독과점은 의미가 없다. 이런 정책을 하면 유커(중국인 관광객)들을 다 일본에 빼앗긴다”고 우려했다. 제도의 불확실성으로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 면세 사업장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브랜드가 입점을 꺼려 결국 관광객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면세점에 입점해 있는 한은희 애니통상 대표는 “내년 봄 납품할 제품이 이달 중 선적되는데 취소해야 할 판”이라며 “외국인 거래를 트려고 몇 십 년 신뢰를 쌓았는데 이렇게 무너지는 게 말이 되느냐”고 답답해했다. 그는 “유커들이 선호하는 명품 업체들은 특히 중장기적인 신뢰와 거래 관계를 중시하는데 이대로라면 한국 면세점에 입점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현행 관세법은 기본적으로 면세점을 ‘특혜’라고 본다. 그래서 특정 기업이 오래 사업을 하거나 독과점을 이루는 현상을 막는 데 치중한다. 반면 해외 국가들은 정부가 앞장서 면세점의 대형화를 지원하고 있다. 면세점은 규모가 큰 사업자일수록 브랜드 유치와 가격 협상력이 높아져 소비자에게 다양한 면세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직접 상품을 구매해 판매하기 때문에 재고 관리 능력도 필수적이다. 여기서 살아남지 못한 면세점들은 사업을 매각하거나 반납할 수밖에 없어 세계 면세 시장은 살아남은 글로벌 강자들의 각축장으로 흘러가고 있다. 실제 스위스 듀프리는 2013년 세계 2위였지만 지난해 업계 7위인 스위스 뉘앙스, 올해 이탈리아 WDF 등을 인수해 미국 DFS를 제치고 1위로 등극했다. 업계 4위인 프랑스 LS트래블리테일 역시 지난 8월 북미 지역 면세점 운영업체인 파라다이스를 인수해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면세기업 상위 4개 사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16%에서 지난해 25%로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금처럼 특정 기업 몇 곳에만 특허를 내주는 대신 누구든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자유롭게 면세 시장에 진출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도록 하는 신고제 또는 완화된 인허가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정치권의 대표 경제통으로 통하는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면세점을 왜 소수의 기업만 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한국 이미지를 나쁘게 하지 않는 조건만 갖춰지면 어느 업체든 개방을 해서 관광산업이 시골까지 확대되고 지방산업으로 발달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관세청 재승인제는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고, 정부가 오히려 독과점과 온갖 뒷말을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승욱 중앙대 교수는 “면세사업은 관광산업 발전의 핵심 축인데 우리끼리 나눠 먹기를 해서는 관광이 클 수가 없다”며 “관세청도 규제보다는 정책을 신경 써서 면세 진입 문턱을 낮추고 외국 관광객 주머니를 더 열게 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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