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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 팔려도 ‘제 살 깎기’ 할인은 안 돼

중앙일보 2015.11.19 00:26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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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호 출판인회의 회장은 “작은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개정 도서정가제의 성패를 판단하기 힘들다”며 “일단 독자를 설득하면서 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모든 책 값의 할인폭을 정가의 15% 이내로 제한한 개정 도서정가제가 21일로 시행 1주년을 맞는다. 시행 직전 각 서점의 ‘폭탄 세일’에 힘입어 급격히 치솟았던 책 판매는 제도 시행 후 급락해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후 책값이 다소 하락 했고, 지역 서점들의 매출도 증가하는 추세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수년 간 도서정가제 개정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온 한국출판인회의는 개정 도서정가제 1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윤철호(54) 출판인회의 회장(사회평론 대표)을 17일 만났다. 1998년 설립된 출판인회의는 현재 440여 개 회원사를 두고 있다.

윤철호 출판인회의 회장
1년 새 10% 넘게 매출 줄었지만
출판사 70% “정가제 유지·강화”
제도 안착해야 10년 장기 투자
어린이책·참고서 가격 더 내려야

 - 책이 안 팔린다고 출판사들이 아우성인데.

 “이상하다. 나 역시 여러 출판사로부터 매출이 너무 줄었다. 도서정가제를 괜히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실제 회원사를 조사해보니 대부분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10% 이상 줄었다고 답했다. 그런데 도서정가제 자체에 대해서는 기존대로 유지하거나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70% 이상이었다. 현재 상황은 힘들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제 살 깎아먹기’ 식의 할인 경쟁을 막는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득이 없다.

 “독자, 즉 소비자에게 유익한 건 제품의 품질이 높아지고, 다양한 제품이 싸게 공급되는 것이다. 무분별한 할인 경쟁이 없어져야 더 좋은 책을 만드는 새 경쟁이 생겨난다. 이건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출판사의 기획력이 높아져야 하고 체질도 바뀌어야 한다. 일단 제도가 안착해야 10년 뒤를 내다 보는 장기 투자 도 가능하다. 소비자 만족을 위해서는 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어린이책이나 참고서 가격을 보다 적극적으로 내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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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이익을 본 건 서점뿐이다.

 “오프라인 중대형 서점들은 실제 이익과 관계없이 온라인 과 경쟁을 해볼 만하다는 심리적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지방 서점들도 도서관 납품 이 가능해지면서 숨통이 트였다. 온라인 서점은 매출은 줄었지만, 출판사로부터 예전과 같은 가격에 책을 사고 할인은 하지 않으니 영업이익이 늘었다. 서점도 잘돼야 하지만, 혜택이 한쪽으로만 쏠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 결국 공급률(출판사가 서점에 공급하는 책값의 정가 대비 비율)이 논의돼야 한다.”

 - 얼마 전 교보문고가 공급률을 오프라인 기준으로 조정할 방침을 밝혔는데.

 “예를 들면 그동안 1만원짜리 책을 오프라인 서점은 출판사로부터 7000원에 사고, 온라인 서점은 6000원에 샀다면 이것을 오프라인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이야기다. 교보문고가 나선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른 온라인 서점들이 아직 완강하지만, 새해부터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두고 싸워보려 한다.”

 -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제도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점점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 한국인들은 책을 하루에 6분 본다고 한다. 그것을 어떻게 10분까지 늘릴 까가 숙제다. 분명한 건 책을 읽고 사유하는 능력 없이 이 시대가 강조하는 창조성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훈련’이고 그러기 위해선 제도나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지원도 필요하다. 도서관의 경우 도서정가제 시행 뒤 책을 싸게 구입할 수 없어 불만이 많다. 개정안 시행 전 정부가 도서관 예산을 증액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오히려 예산이 줄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글=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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