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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 라샤드의 비정상의 눈] 이집트의 빵과 한국의 벼·쌀·밥

중앙일보 2015.11.19 00:10 종합 3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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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 라샤드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한국에 온 외국인이 반드시 받는 질문이 몇 가지 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인지, 그리고 주식으로 무엇을 먹는지 등이다. 한국에선 쌀이 주식이다. 얼마 전 통역 일을 하다 이집트 사람의 아랍어를 곧이곧대로 “곡식물가게”라고 옮겼더니 한국 사람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옥수수·밀·쌀·콩 같은 곡물을 파는 가게”라고 설명하자 “아, 쌀가게!”라고 단박에 이해했다. 한국에서 쌀은 농산물의 대표다.

 어떤 문화권에서 특정 개념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파악하려면 이를 표현하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지를 알아보면 된다. 한국에는 쌀에 대한 낱말이 무척 많다. 논에 있는 쌀은 벼, 수확해 시장에서 파는 것은 쌀, 익힌 쌀은 밥이라고 각각 부른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여러 곡식을 파는 곡물가게를 쌀가게, 다양한 종류의 식사를 모두 밥이라고 부르는 것도 역시 쌀에 대한 인식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쌀 과자나 쌀 빵을 한국에서 처음 본 외국인도 적지 않다. 게다가 한국의 막걸리도 쌀로 만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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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람들은 “밥 먹었어요?”라는 말을 인사말로 쓴다. 처음 한국말을 익힐 때 ‘밥’을 ‘쌀’로만 배웠다. 그래서 선생님이 “밥 먹었어요”라고 물을 때 쌀로 된 음식을 먹었으면 “네”라고, 다른 걸로 식사를 했을 때는 “아니요”라고 각각 대답했다. “아니요”라고 답하면 선생님께서 “얼른 밥 먹어요”라고 말씀하셔서 당황했다. “왜 내게 쌀로 된 음식을 먹으라고 하실까”라고 궁금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밥은 문맥에 따라 쌀일 수도 있고 식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궁금증이 풀렸다. 옛날 한국에선 식사할 때 무조건 쌀을 먹어서 밥이 곧 식사라는 뜻이 됐다는 내력도 알게 됐다.

 이집트에서도 벼농사를 짓고 일 년 내내 쌀을 먹지만 한국만큼 쌀을 중시하지 않는다. 대신 쌀의 형제 격인 밀로 만든 빵이 주식이다. 피라미드나 신전에 가면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밀 농사를 짓거나, 흙으로 지은 창고에 밀을 보관하거나, 밀로 빵 만드는 모습을 그린 벽화를 볼 수 있다. 고대에 즐겨 마셨다는 맥주도 밀로 만들었다. 이집트에서 빵은 곧 삶이다. 빵을 가리키는 ‘에이쉬’라는 단어에는 ‘생존·생계’라는 뜻도 있다. 빵에 대한 어휘도 풍부해 빵 한 장, 빵 한 조각, 음식에 찍어서 먹는 빵 등을 가리키는 낱말이 따로 있을 정도다. 한국과 이집트는 서로 주식은 달라도 이를 중시하는 문화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새미 라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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