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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분양 천국, 입주 지옥”

중앙일보 2015.11.19 00:10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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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며칠 전 지인의 상갓집에 갔을 때다. 동석한 고위 경제관료 J에게 전직 장관 N은 “이 정부의 부동산은 대표적으로 실패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이유를 묻는 J에게 N이 한 말은 이거였다. “분양은 성공했는지 몰라도 입주는 실패야.”

 N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랬다. 올해 주택시장은 달궈질 대로 달궈졌다. 지난달까지 100만 채 넘는 집이 사고팔렸다. 작년 1년간 거래된 것보다 많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괜찮다. 문제는 아파트 분양시장이다. 올해 분양 물량만 약 48만 가구다. 지난해보다 14만 가구가 많다. 쏟아진 물량을 따라 뭉칫돈이 움직였다. 분양시장엔 올 들어 9월까지 53조원 넘는 돈이 몰렸다. 지난해보다(31조2683억원) 70% 넘게 늘었다. 같은 기간 주식시장에는 5조2198억원이 순유입됐을 뿐이다.

 뭐든 과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올해 몰린 분양대금 53조원은 계약금+중도금이다. 입주가 시작되면 내야 할 잔금은 그보다 많을 수 있다. 행여 지금 분양시장이 과열이라면? 반짝 아파트 열기가 2~3년 지나 가라앉으면? 다음 수순은 뻔하다. 입주시기와 맞물려 집값은 더 떨어지고 급기야 입주 대란이 일어날 것이다. 미분양과 불 꺼진 빈집이 수만 채씩 쌓일 것이다. N장관은 “말 그대로 분양 천국, 입주 지옥이지. 물론 뒤치다꺼리로 X바가지를 쓰는 건 다음 정권이겠지만…”이라며 말을 흐렸다.

 분양 천국은 정부가 각종 규제를 풀고 인위적으로 불을 붙인 결과다. 주택값이 오르면 소비에 큰 도움이 된다. 이른바 자산효과다. 최경환 경제팀이 노린 것도 그것일 것이다. 하지만 불을 때도 너무 땠다. 미친 전셋값에 지친 이들이 몰려들고 건설사들은 ‘내일이면 늦다’며 물량을 쏟아냈다. 투기세력까지 뛰어들었다. 군불을 지피려다 산불이 나게 생긴 것이다. 급증한 가계부채가 당장 골칫거리다. 규제를 풀자마자 1년 새 100조원 넘게 불었다.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는 지적도 많다. 1100조원짜리 뇌관이 터지면 한국 경제가 통째로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소비는 찔끔 살아나는 데 그치고 부작용만 눈덩이처럼 커진 셈이다. 1년 전 규제 완화 때부터 여러 사람이 걱정한 대로다.

 또 하나의 우려도 현실화하고 있다. 집값의 빈익빈 부익부다. 올 들어 강남 아파트의 오름세는 강북보다 가파르다. 33평 아파트 기준으로 강남과 강북의 가격 격차는 5배쯤으로 다시 벌어졌다. 지난해엔 4배 정도까지 좁혀졌었다. 강남 재건축 규제 완화를 풀어준 게 큰 이유다. 최경환 팀은 ‘강남선도(先導)론’을 과신했던 것 같다. ‘강남 아파트가 먼저 올라야 강북→수도권→지방의 집값이 뛴다. 그러니 강남 아파트값을 먼저 끌어올려야 한다.’ 일종의 낙수 효과다. 하지만 강남선도론은 심각한 결함이 있다. 정책이 성공할 경우, 보통 사람은 웬만해선 강남 주민이 될 수 없다. 지금은 배고픈 것보다 배 아픈 게 더 문제인 세상이다. 가만 놔둬도 아픈 배를 더 아프게 하는 정책도 정책인가.

 방향이 틀린 정책의 결과는 재앙이다. 분양천국은 끝났다. 지금부터 입주 지옥에 대비해야 한다. 마침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공급 과잉, 분양 과열 양상이 보인다”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주택시장은 급등도 없고 급락도 없어야 한다”고도 했다. 대책으로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임대주택 공급도 늘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의구심이 든다. 과연 그 정도로 입주 지옥을 막아낼 수 있을까.

 강호인은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주택은 다뤄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역대 국토부 장관 18명 중 주택 전문가는 거의 없다. 국세청장 출신이 4명, 기재부 출신이 4명, 나머지는 대부분 정치인이다. 지난 정부 때는 주택·건설 전문가가 자리를 지켰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숙원 사업인 4대 강 때문이었다. 애초 역대 장관 역할이란 게 본업인 주거복지보다 세금 많이 걷고 경기 떠받치고 삽질 열심히 하는 쪽이었다는 얘기다. 국토부의 주택정책이 왜 늘 다음 정권에 누가 돼왔는지 알 만하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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