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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파리는 아주 오래된 도시였고…”

중앙일보 2015.11.19 00:10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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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요 며칠간의 동선입니다. 파리의 공화국 광장에 이어 볼테르 가를 거쳐 알리베리 가와 퐁텐 오 루아 가를 갑니다. 때론 거꾸로도 돕니다. 샤론 가도 들릅니다. 낯익은 지명들일 겁니다. 맞습니다. 대부분 테러 현장입니다.

 길을 나설 때마다 마음의 빗장을 닫아겁니다. 현장은 잔인했고 참혹했으며 또 처절했고 침통했습니다. 날로 쌓여 가는 초와 꽃은 오히려 처연했습니다. 텅 빈 얼굴들은 자리를 뜰 줄 몰랐습니다. 빗장 덕에 저는 그나마 심리적으로 안전했습니다. 아니, 안전하다고 느꼈습니다.

 잭 대니얼스였습니다. 옥수수로 만든 버번위스키면서 고집스레 테네시 위스키라고 주장하는, 프랭크 시내트라가 너무나도 좋아해 무덤 속에 같이 들어갔다는 바로 그 술입니다. 바타클랑 극장 앞에 놓여 있더랬습니다. 수시로 술잔을 들어 올렸을 한 사내를 떠올렸습니다. 그의 호탕한 웃음도. 이제 그는 없습니다.

 헤밍웨이도 있습니다(『Paris est une fete』·파리는 축제). 파리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헤밍웨이는 이렇게 썼습니다. “파리는 아주 오래된 도시였고 우리는 너무 젊었으며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단순한 게 없었다. 가난도, 갑자기 생긴 돈도, 달빛도, 옳고 그름도, 달빛을 맞으며 곁에 잠들어 있는 한 사람의 고른 숨소리도.” 애독자에게도 파리는 그런 대상이었을까요? 그러나 그 역시 없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총탄 자국도 봤습니다. 세다 말았습니다. 높이들 때문입니다. 명백한 살의에 움츠러들었습니다. 반쯤 비운 와인 잔도 있었습니다.

 바타클랑의 누군가는 테러범이 셋 중 하나꼴로 확인 사살하는데 자신은 의수(義手)를 한 덕에 움찔하지 않아서 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대신 바로 옆에 있던 머리를 향해 쐈다고요. 생과 사의 경계는 얇디얇아 때론 희극적이기까지 합니다.

 한 꼬마를 만났습니다. 퐁텐 오 루아 가에서 쪼그리고 앉아선 추모 초에 불이 꺼지면 옆에 초를 들어 불을 붙이곤 했습니다. 뜨거울 법한데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소명으로 느끼는 듯했습니다. 아득해졌습니다.

 대부분 “공포에 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압니다. 우린 이미 두려워합니다. 광장엔 온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또 압니다. 꾸역꾸역 살아가고 또 듬성듬성한 기억 덕분에 견딜 수 있으리란 것을. 그래도 잊지 맙시다. 우리의 오늘은 또 내일은, 그네들이 당연할 것이라고 여겼던 내일이자 모레란 걸. 산다는 게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고정애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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