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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의구심만 키운 생색내기용 물대포 시연

중앙일보 2015.11.19 00:03 종합 3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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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익
사회부문 기자

“표적도 없이 바닥에 물만 쏠 거면 뭐하러 불렀습니까?”

 지난 17일 오전 서울 신당동 서울경찰청 기동본부 주차장. 검은 기동단 단복을 입은 경찰관 한 명이 취재진 20여 명에게 둘러싸여 거센 항의를 받았다. 예정된 물대포 시연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지만 “표적 세우는 것만은 절대 안 된다”는 경찰 입장엔 변화가 없었다. “이런 쇼를 왜 하느냐”고 항의하는 기자도 있었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40~50분이 지난 후에야 첫 번째 물대포가 약 10초간 바닥을 향해 발사됐다. 항의가 또 이어졌다. 물대포 발사 각도가 지난 14일 민중총궐기대회 당시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실랑이 끝에 살수차 7~8m 앞에서 최대 출력인 3000rpm으로 물대포를 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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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서울 신당동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에서 경찰이 물대포 발사 시연을 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이날 물대포 시연은 14일 집회에서 농민 백남기(68)씨가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것과 관련해 언론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이었다.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를 공개적으로 검증해보자는 취지였지만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경찰이 당시 물대포의 세기라고 밝힌 2500~2800rpm이 어느 정도 충격을 주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어림짐작을 하며 물대포의 위력을 가늠하던 기자들 사이에서 작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2500rpm 넘어가면 완전히 사람 잡는 무기네.” “건장한 성인 남성이면 어떻게 버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또 다른 쟁점이었던 물대포 고의 직사(直射) 여부도 정확히 가려지지 않았다. 당초 경찰은 “(백씨를 향해) 고의로 직사를 한 건 아니다. 가로 15㎝, 세로 10㎝ 화면을 통해 바깥 상황을 확인하다 보니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설명과 달리 차량 내부엔 38.1㎝ 크기의 모니터가 달려 있었다. 오히려 물대포를 쐈을 때 물줄기로 인해 시야가 가려지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더욱이 시연에 동원된 살수차는 백씨가 쓰러질 때 쓰였던 2005년식이 아니라 2010년식이었다. 차량 내부에 탑승한 경찰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차량 내부 촬영을 허용하지 않은 것도 공개 시연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언론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경찰이 “검증에 응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건 아니었는지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생색내기용 시연은 왜 하겠다고 한 것일까. 경찰은 제대로 된 집회·시위 대응 매뉴얼을 갖고 있는 걸까. 국민들에게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려는 의지가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이날 시연을 지켜보면서 의문은 커져만 갔다.

글=한영익 사회부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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