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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울타리 안에 갇힌 면세점, 그 슬픈 운명

중앙일보 2015.11.18 00:18 종합 3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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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한국의 면세점 사업은 이대로 가면 망한다. 국회는 2013년 관세법을 고쳤다. 대기업이 사실상 독점하는 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는 취지를 내세웠다. 포장은 그럴듯했다. 면세점 사업자의 사업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했다. 사업기간이 만료되면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으면 갱신되는 제도도 없앴다. 대신 사업권 만료 시 면세점 사업을 희망하는 다른 사업자들과 경쟁하게 했다. 그 첫 심사가 이번에 이뤄졌다.

 신세계와 두산은 승자가 됐지만 환호만 하고 있을 처지는 아니다. 곧바로 5년 후를 걱정해야 한다. 그때 가서 이번에 떨어진 롯데(월드타워점)와 SK(워커힐호텔점)처럼 고배를 마시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설령 5년 후 사업 기간 연장에 성공해도 또 5년 지나면 회사의 운명을 걸어야 한다. 5년마다 이런 노심초사의 연속이다.

 이런 구조에서 회사는 정규직 직원을 뽑을 수 없다. 5년 후에 문 닫으면 그 직원들을 어찌하란 말인가. 이번에 탈락한 두 면세점에서 족히 2000명 넘는 직원의 일자리가 날아갈 위기다. 물론 그룹 차원에서 일부 종업원은 재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사업자로 선정된 신세계와 두산이 인력을 흡수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종업원을 고용 승계할 수는 없다. 새 사업자가 신규 고용할 규모를 따지면 전체 일자리 수는 줄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긴 하다. 틀린 말은 아닐 터다. 하지만 고용의 질을 따져 보자. 기업에선 5년짜리 직원을 찾는 게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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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투자도 문제다. 5년간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치자. 그러고 나서 탈락하면 그 돈, 다 날아간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10월 잠실 롯데월드에 있던 면세점을 3000억원 들여 길 건너에 새로 지은 월드타워점으로 옮겼다. SK 워커힐면세점도 돈 들여 새 단장 중이었다.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 드러났다. 관세법 개정은 문제의 본질을 감춘 ‘눈 가리고 아웅’이다. 국내 면세점 시장은 허가제라 사실상 ‘지대(地代·rent)’가 보장된 시장이다. 지대는 정부가 쳐 놓은 울타리 안에서 공급량이 한정된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자가 독점적으로 얻는 이익을 말한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인위적으로 독점이 허용된 시장에서 기업이 생존하려면 어디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까. ‘고객 서비스? 가격 경쟁력? 이 모든 걸 종합한 실력?’ 모두 틀렸다. 이 시장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효과적인 대정부 로비다. 굳이 기업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갖출 필요가 없다. 인허가권을 쥔 국가 권력에 접근해 사업권만 받으면 된다.

 관세청 직원을 비롯한 공무원들은 꽃놀이패를 쥐었다. 퇴임한 공무원을 면세점(또는 모기업)이 채용하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할 것이다. 심지어 관세청 직원에 대한 직간접 접대와 뇌물 같은 부패가 없으리란 법도 없다. 이런 지대추구(rent-seeking), 성공하면 돈 버는 건 떼놓은 당상인데 기업이 앞다퉈 매달리지 않을 리 없다.

 공무원이 노린 건 이런 시스템이다. 심사권을 틀어쥐고 있으면 노후가 보장된다. 현직 때도 훈훈하게 대접받을 수 있다. 이런 구조를 그들이 외면할 리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구조를 만든 것이다. 피해는 모두 소비자의 몫이다. 로비에 들어간 비용은 가격에 전가되고, 서비스의 품질은 떨어지게 된다. 관광객이 한국 면세점에서 발길을 돌리는 건 자명한 이치다.

 한국은 전 세계 면세점 시장 점유율 10.6%(2013년 기준)로 세계 1위다. 중국 관광객 덕이었다. 하지만 올 상반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파문 때 유커(遊客)의 발길이 뚝 끊어진 적이 있다. 그만큼 면세점은 외부 변수에 크게 영향 받는 사업이다. 천재지변이 발생하거나 전염병이 돌면 관광객은 안 온다. 국내 수요로만 면세점이 버티기 힘들다. 결국 경쟁력이 해법이다. 5년마다 심사받고, 지대 챙기는 데 혈안이 되면 될수록 장기적 관점의 경영은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이래 놓고 국내 면세점에서 질 좋고 가격 적절한 제품,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부의 규제나 시장 개입이 많을수록 지대추구는 더 횡행해진다.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증가도 불가피하다. 요건만 갖추면 원하는 기업은 모두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야 한다. 허가제는 공무원의 철밥통만 데우는 장작불일 뿐이다. 공정한 경쟁의 장이 만들어지면 특정 제품에 특화한 경쟁력 있는 중소·중견 면세점이 생길 수 있다. 대기업끼리는 혁신 경쟁을 통해 고부가가치 면세점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면세점은 주파수와 같은 한정된 자원이 아니다. 왜 정부가 면허장사를 하는가. 기업이 정부가 친 울타리 안에서 생기는 독점 이익에 길들면 혁신은 사라진다. 그 결과는 공멸이다. 한국 면세점 산업이 그 길을 따라갈 것인가. 당장 공무원이 틀어쥔 울타리를 걷어내라.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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