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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신 믿느냐 프랑스인이냐” 물으며 15초마다 1명씩 사살

중앙일보 2015.11.16 01:33 종합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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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날 살렸다” 파리 테러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한 남성은 “삼성 스마트폰 덕분에 폭탄 파편을 피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아이텔 캡처]

평화롭던 프랑스 파리의 ‘13일의 금요일’ 저녁이 ‘피의 금요일’로 변하는 데는 세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슬람국가(IS) 소속 3개 테러 그룹은 파리의 공연장과 식당, 축구경기장 등 8곳을 동시 다발적으로 공격했다. 공격하기 쉬운 민간인을 겨냥한 ‘소프트 타깃’ 테러였다. 이들이 자행한 총기 난사와 자살폭탄 테러로 최소 129명이 숨지고 35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99명은 중상이어서 희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13일 금요일밤 9시20분 악몽 시작
1500명 몰린 바타클랑 극장 난입
탄창 세 번 갈아끼우며 89명 학살
용의자 전원 액체폭탄 조끼 입고
3시간 동안 8곳 동시다발 테러
프랑스 검찰 “7명이 3개 조로 범행”
IS는 8명 주장 … 1명 도주 가능성

 연쇄테러 수사를 지휘하는 프랑수아 몰랭 파리 검찰청장은 테러 발생 다음 날인 1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용의자 7명이 3개 조로 나뉘어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7명은 모두 ‘사탄의 어머니’라 불리는 고성능 액체 폭약 ‘TATP’를 담은 자폭 조끼를 입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전했다. IS가 “이번 테러는 우리의 형제 8명이 공격했다”고 밝혀 용의자 1명은 도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가장 먼저 테러가 발생한 곳은 파리 동북쪽 외곽의 ‘스타드 드 프랑스’ 축구경기장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친선 축구경기가 열린 13일 저녁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을 비롯한 관중 8만여 명이 경기장을 채우고 있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문을 연 이 경기장은 알제리 이민자 출신인 지네딘 지단이 프랑스에 첫 월드컵 우승을 안겨주며 ‘통합의 상징’으로 떠오른 곳이다. 경기 시작 15분 뒤인 9시20분 자살폭탄 조끼를 입은 테러범 1명이 경기장 진입을 시도했다. 그는 보안 검색대에서 몸 수색으로 폭탄 조끼를 입은 사실이 발각되자 폭탄 조끼를 터뜨렸다. 폭발로 주변의 행인 1명이 숨졌다. 올랑드 대통령은 폭발음이 들리자 급히 피신했다. 축구경기는 끝까지 진행돼 관중들 대부분이 자리를 지켰다. 일부 관중들은 경기가 끝난 뒤 안전을 이유로 축구장에 머물러야 했다.

 10분 뒤 경기장 인근 식당에서도 두 건의 자폭 테러가 발생했으나 테러범 두 명만 죽고 희생자는 없었다. 비슷한 시각인 9시25분부터 9시40분까지 15분 동안 파리 식당 네 곳에서 총기 난사사건과 자폭 테러가 발생했다. 테러범들은 파리 10지구의 캄보디아 레스토랑 ‘르프티 캉보주’에서 식사를 하던 시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해 15명을 숨지게 했다. 인근 파리 11지구 볼테르 대로의 식당 2곳에서도 총기 난사사건이 발생해 24명이 숨졌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곳은 1500명의 관객이 모인 파리 11지구의 바타클랑 극장이었다. 이곳은 지난 1월 테러 공격으로 17명이 숨진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에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록 그룹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 콘서트가 열린 이날 10~50대 관객들은 흥겹게 춤을 추며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공연 시작 50분이 지난 9시40분쯤 갑자기 “탕! 탕! 탕!” 총소리가 들렸다. 검은 폴크스바겐 폴로 차량을 타고 도착한 무장 남성 세 명이 공연장에 난입해 기관총을 쏘기 시작했다.

 20대로 보이는 테러범들은 프랑스어로 “너희들이 시리아에서 우리 형제들을 죽여서 우리가 이 자리에 왔다.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쳤다. 휴대전화를 꺼내는 사람들이 주요 타깃이 됐다. 이들은 탄창을 세 번 갈아 끼우며 15초 간격으로 한 명씩 죽였다. 공연에 참석한 한 칠레인은 “괴한이 나에게 ‘신을 믿는냐? 프랑스 사람이냐?’를 물어 칠레인이라고 답했더니 풀어줬다”고 말했다. 목격자 이소벨 보우더리는 “처음엔 사람들은 괴한들이 총을 쏘는 것이 공연의 일부분인 줄 알고 웃었다. 눈앞에서 한 사람씩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을 보고 다들 바닥에 엎드리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시체처럼 보이기 위해 한 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관객 중 일부는 비상 탈출구를 통해 달아나려다 목숨을 잃기도 했다.

 2시간40분 동안 이어진 인질극은 14일 자정을 넘겨 경찰이 공연장에 진입하면서 끝났다. 괴한 두 명은 폭탄 벨트를 터뜨려 자살했고, 나머지 한 명은 경찰에게 사살됐다. 공연장에서만 89명이 숨지며 대참사는 막을 내렸다. 뉴욕타임스는 “150년의 역사의 바타클랑 극장이 최근까지 유대인 소유였기 때문에 범행의 타깃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IS가 의도적으로 ‘13일의 금요일’을 노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3년 전인 2012년 11월 13일은 프랑스 정부가 IS와 대치하는 시리아 반정부 조직 시리아국민연합(SNC)을 합법 정부로 인정한 날이었다. 프랑스는 서방 국가 중 시리아 반군을 정부로 인정한 첫 나라였다. 가디언은 “오는 30일 열리는 파리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전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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