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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텔링] 격리 병실서 160여 일 … 내 남편 ‘80번 환자’ 제발 풀어주세요

중앙일보 2015.11.16 01:13 종합 1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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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대병원 격리병동 앞에서 메르스 80번 환자의 부인 배씨가 남편을 면회하러 음압 병실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80번 환자. 지난 173일간 내 남편(35)은 이름 대신 번호로 호칭됐다. 국내에 남은 마지막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환자다.

완치 판정 받고 퇴원 8일 만에 재발
감염력 거의 0% … 격리 해제 안 돼
림프종 치료 위해 골수이식 급한데
질병본부가 해제 미뤄 수술도 못해
14㎏ 줄고 전신 황달, 완전 딴사람
네 살 아들 놀랄까 영상통화도 피해

 남편이 메르스에 감염되기 전만 해도 우리 둘은 네 살배기 아들을 둔 평범한 30대 부부였다. 물론 고비도 있었다. 지난해 3월 남편은 림프종(혈액암의 일종)에 걸렸다.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면서도 늘 나와 아들에게 미안해하는 속 깊은 가장이었다. 우리 가족의 기도가 통했을까. 그 해 12월 남편은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고 건강을 되찾았다.

 “아무리 어려운 순간에도 가족이 똘똘 뭉치면 이겨낼 수 있어.” 남편과 나는 그런 믿음을 가졌다. 그날 밤 악몽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5월 27일 남편은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감기 증상이 오래가서 혹시 림프종이 다시 도진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폐렴이네요. 림프종이 재발한 건 아닌 걸로 보입니다만 혹시 모르니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죠.” 의료진의 지시에 따라 남편은 병원 응급실로 옮겨 검사를 받으며 사흘간 대기했다. 훗날 ‘수퍼 전파자’로 불린 14번 환자(35)가 그때 같은 공간 어딘가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열흘 뒤인 6월 7일 남편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80번 환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도 이때다. 그는 홀로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음압 격리 병실에 입원했다.

 악운이 겹쳤다. “남편 분의 증상이 메르스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안타깝게도… 림프종이 재발한 것 같습니다.”

 내 몸속의 피가 순식간에 어디론가 다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 나은 줄 알았던 림프종이 하필 메르스와 같이 찾아오다니.

 남편은 홀로 버텨야 했다. 전직 간호사인 나 외엔 가족 누구도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하루 30분 남짓 내가 온몸을 감싸는 레벨 D 보호복을 입고서야 만날 수 있었다. 라텍스 장갑을 벗은 맨손으로 닿을 수도, 고글 없는 맨눈으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나마 남편의 유일한 낙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아들과의 영상통화였다. “우리 아들, 지금 뭐하고 놀고 있어요?” 스마트폰 화면 너머 보이는 아들의 얼굴이 골방 같은 격리 병실에서 그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7월 중순부터 항암 치료와 메르스 치료를 동시에 받으면서 메르스 검사에서 음성과 양성이 번갈아 나오기 시작했다. 혈액 속의 암세포를 잡기 위해 항암제를 투약하면 면역력이 떨어져 메르스 바이러스가 번지고, 메르스를 없애려고 항암제를 끊으면 림프종이 심해지는 딜레마에 빠진 것도 이때부터다. 빨리 격리에서 풀려나 림프종 치료에 전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완치 판정 기준(증상이 사라진 뒤 24시간 간격으로 두 번 검사를 시행해 두 차례 연속 음성 반응)을 충족해야 격리 해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사에서 음성 반응이 나와 “이제 집에 가는 건가”라고 기대를 할라치면 여지없이 다음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언론에서 ‘80번 환자 때문에 메르스 종식 선언이 미뤄진다’는 야속한 기사가 나올 때면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드디어 지난달 3일 메르스 완치 판정을 받았다. 확진받은 뒤 116일 만이다. WHO에 보고된 메르스 환자 중에 가장 오랜 기간 양성 반응을 보인 환자라고 했다. 여드레 만인 지난달 11일 새벽 갑자기 남편의 열이 치솟았다. 집 근처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달려갔고 다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림프종 병세가 악화된 탓이었다. 한데 혹시 몰라 실시한 메르스 검사에서 또다시 양성 반응이 나왔다.

 80번 환자라는 이름은 질기게 따라붙었다. 그 길로 음압 병실에 격리됐다. 질병본부 관계자는 “메르스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에게서 바이러스가 다시 검출된 예는 세계적으로 처음”이라며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80번 환자는 메르스에 재감염된 것도 아니고, 재발한 것도 아니다. 이 환자가 주변 사람을 감염시킬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오늘까지 남편은 격리돼 있다. 며칠 전엔 메르스 검사에서 두 번 연속 음성 반응이 나오기도 했지만 질병본부는 “격리 해제할 수 없다”고 했다. 남편에게서 바이러스가 재검출되는 순간 기존의 완치 판정 기준은 깨졌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새로운 기준을 만들지도 못하고 있다. 질병본부 관계자는 “세계에서 처음 있는 사례라서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이제 림프종이 퍼질 대로 퍼져 항암제로는 치료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유일한 치료법은 골수이식 수술뿐이다. 그런데 골수 이식을 받으려면 컴퓨터단층촬영(CT) 등으로 검사를 하고 전신에 방사선을 조사(照射)한 뒤 무균실에서 수술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선 치료 단계별로 ‘음압 텐트’로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는 장치가 갖춰져야 한다. 의료진은 “격리 해제를 하든, 격리 상태에서 수술을 하든 질병본부에서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하는데 질병본부는 “병원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고 미루고만 있다.

 감염력이 0%에 가깝지만 격리는 해제할 수 없고, 목숨을 건지려면 이식 수술이 급한데 격리 상태라 수술은 할 수 없다니…. 그런 사이 남편의 병세는 깊어지고 있다.

 남편은 얼마 전 극심한 복통을 호소했다. 의료진이 병실에 들어가기 위해 보호복을 착용하는 20여 분 동안 남편은 홀로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15일 새벽엔 갑작스레 패혈증 쇼크를 일으켰다. 그런데도 격리 상태서 어떤 검사도 받지 못하고 있다.

 요즘 남편은 그렇게 좋아하던 아들과의 영상통화를 피한다. 아프기 전 남편은 키 1m77㎝에 체중 73㎏으로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지금은 겨우 59㎏밖에 나가지 않는다. 전신에 황달이 와 눈동자까지 노랗게 변했다. 남편은 변해 버린 자기 모습에 아들이 놀랄까 봐 그리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다.

 “내가 너무 변해서 애가 놀라면 어떡해….”

 그러면서 아들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만 하루 종일 보고 또 본다.

 “엄마, 아빠 서울대병원에서 약 다 맞으면 오는 거죠. 몇 밤 더 자야 와요?” 아들의 물음에 누구도 답을 할 수가 없다. 모두가 메르스 사태를 잊어 가는 지금도 우리 가족의 고통은 끝나지 않고 있다. 얼마나 지나야 이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글=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메르스 80번 환자의 부인 배모(36)씨 인터뷰와 질병관리본부·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 관계자를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배씨의 관점에서 기사를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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