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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상한 척하지 맙시다

중앙일보 2015.11.1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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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 고상한 척하지 맙시다
'친구엄마' 공자관 감독

에로영화 ‘젊은 엄마’(2013)를 아는가? 그렇다면 공자관(38)이란 이름 석 자가 귀에 익을 것이다. 그는 2001년부터 스무 편 넘는 에로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으로, IPTV에서 개봉한 그의 대표작 ‘젊은 엄마’는 강도 높은 베드신, 흥미진진한 전개로 에로영화 관객 사이에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11월 12일 IPTV로 개봉하는 신작 ‘친구엄마’를 계기로 그를 만나 나눈 대화를 여기 전한다. 수위 조절에 각별히 신경 썼다.



이번 영화도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친구엄마’는 짝사랑하는 학교 선배 지연(시영)과 친구 엄마 현옥(아리)을 두고 갈등하는 스무 살 대학생 경수(김영삼)의 이야기다. 지연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거절당한 경수는 시골 어촌의 친구 집을 방문했다가 과부인 친구 엄마 현옥을 만나 매료된다. 파도 치는 갯바위 위에서의 베드신 등 파격적인 성애 장면도 눈에 띄지만, 영화가 더 자극적인 건 마치 친구의 경험담을 전해 듣는 듯 생생한 스토리텔링이다. 공 감독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 심의에서 제한 상영가 등급을 받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청소년 관람불가로 통과했다”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다시 ‘엄마’ 시리즈로 돌아왔다. “지난해 만든 ‘뽕2014’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 에로영화계에선 꽤 높은 제작비 2억원을 투입했지만, 예전 영화처럼 야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뽕2014’는 서사와 코미디가 메인이고 베드신은 양념에 가까웠는데, 알고 보니 관객은 베드신이 메인이고 서사가 양념이길 바랐더라. ‘얼마나 야한 걸 원해요? 한 번 써 볼게요’라고 작정하고 만든 게 ‘친구엄마’다. 나의 변태적 욕망과 판타지를 100% 불어 넣었다(웃음).”

-남성 성기를 사물에 빗대 묘사하는 등 심의 규정을 지키면서 과감하게 촬영했다. “영등위 규정에 음부·음모 노출을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래서 5년 전 성인 콘텐트를 제작할 때 성기를 과일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표현했는데, 실제보다 더 야했다(웃음). 그랬더니 영등위가 제한 상영가 판정을 내리더라. 그때 생각이 나서 ‘친구엄마’에선 은유 대상을 바꿔봤는데, 그 장면 때문에 심의 통과가 안 될까봐 노심초사했다. 영등위 심사 기준은 좀 공론화 될 필요가 있다. 규정에 일관성이 없거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님포매니악’(2014)에서 성기를 노출해도 통과시켜 주면서, 내가 소품으로 과일을 쓴 건 왜 안 되지?”

 

공 감독은 에로영화계에서 잔뼈가 굵다.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중이던 2000년, 그는 비디오 가게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꿀 두 편의 에로영화와 만났다. 에로영화 제작사 클릭이 만든 ‘쏘빠때2’(이필립 감독)와 ‘이천년’(봉만대 감독)이었다. 두 영화는 완성도 면에서, 무턱대고 ‘벗어젖히는’ 여느 에로영화와 급이 달랐다. 공 감독은 해당 영화사를 수소문해 2001년 에로영화 현장에 뛰어들었고, 이듬해 ‘위험한 연극’으로 감독 데뷔했다. 2000년 중반 만든 저예산 에로 코미디 ‘색화동’은 2006년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리고 IPTV·VOD(주문형 비디오)의 등장으로 에로영화계가 제2의 호황기를 맞았던 2013년, ‘젊은 엄마’를 내놓았다. 그는 이 영화로 봉만대 감독에 이은 에로영화계의 새 주자로 급부상했다.

 

-에로영화의 어떤 면에 끌린 건가. “학생 때부터 돈도 안 되는 충무로 영화판에 막내로 들어가긴 싫었다. 조폭영화 등이 범람하던 한국 상업 영화계에서 딱히 따르고 싶은 영화 작가도 없었고. 그런데 생뚱맞게 에로영화 ‘쏘빠때2’와 ‘이천년’이 나를 건드린 거다. 비주얼부터 내러티브까지, 영화 속 농염한 기운이 살아 숨쉬는 기분이었다. 연극영화과를 나왔으니 에로영화계로 가면 바로 감독을 시켜줄 거라 기대했는데, 웬걸(웃음). 조연출 생활만 1년 했다.”

 

-2000년 초 에로 비디오 시절과 비교해 현재 IPTV 영화 시장은 어떻게 달라졌나. “에로 비디오는 그야말로 베드신이 전부였다. 하지만 IPTV에서는 그렇게 대충 서사를 만들 수 없다. 에로영화가 서비스되는 카테고리가 ‘영화 부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만 좋아졌을 뿐, 서사는 다시 에로 비디오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도무지 영화에 의욕이 없어 보인다. 그건 관객에 대한 태업이자 감독이 아닌 ‘업자’의 태도다.”

-서사를 왜 그리 강조하나. “인터넷 야동과 달리, 한국 에로영화는 성관계를 ‘연기’한다. 행위 자체가 가짜인 만큼, 서사가 빠지면 볼거리가 없어지는 셈이다. 긴장감 넘치면서도 누구나 공감 가능한, 욕망이 들끓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꼭 한 번 해 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 “과거 에로 비디오 현장에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에로영화계를 다룬 전작 ‘색화동’을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 앞서 ‘아티스트 봉만대’(2013, 봉만대 감독) ‘레드카펫’(2014, 박범수 감독)도 시도한 적이 있지만, 아직 이 업계를 제대로 그린 영화는 없는 것 같다. 할리우드 영화판을 다룬 미국 드라마 ‘안투라지’(2004~2011, HBO)가 레퍼런스다.”

 

두 편의 영화에서 욕망의 대상을 ‘엄마’ 뻘의 여성으로 내세운 공 감독. 그에게 왜 금기에 가까운 대상을 내세우는지 이유를 물었더니 ‘원래 금기의 대상이 더 흥미로운 법’이라며 ‘가식과 위선을 떨던 인물이 욕망 앞에서 솔직해지는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에로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라 보인다. “‘젊은 엄마’ 이후 연출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대본이 만족스럽지 않아 모두 거절했다. 돈보다는 내가 쓴 작품을 재밌게 연출하는 게 더 의미 있다. 에로영화 감독이라고 사회 생활이 불편하진 않다. 4년 전엔 결혼도 했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배우 캐스팅이 쉽지 않다는 거다. 일단 에로영화라면 무조건 기피하거든. ‘친구엄마’는 상영 시간 101분 중 베드신이 채 10분도 안 된다. 벗는 것보다 감정 연기가 요구되는, 엄연한 ‘영화’다. 에로 배우들도 좀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에로가 무슨 낙인인가? 다큐 같은 데 나와서 울긴 왜 울어.”

-인터뷰에서 ‘가식 없이’ ‘재밌게’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쓴 것 같은데. “어릴 적 부모님이 부부 싸움을 자주 하셨는데, 친척들까지 얽혀 심각하게 싸우는 게 답답했다. 그냥 이혼하지 왜 싸울까 싶었다. 그래서 열아홉 살 때 결심했다. 난 절대 진지하게 살지 않겠다고. 감독으로서 나는 영화를 본 관객이 그저 ‘재밌다’ ‘야하다’며 낄낄대는 걸로 만족한다. 고상한 척, 심각한 척하면서 자기를 포장하는 거? 나랑 영 안 맞는다. 아니, 정말 싫다.”


글=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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