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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12초 만에 지혈 연고, 색맹도 색 구별 안경, 1만원짜리 PC 칩

중앙일보 2015.11.14 01:23 종합 1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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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물 한 잔을 들이키는 사진이 지난 1월 언론에 공개됐다. 마시기 몇 분 전만 해도 이 물은 사람의 배설물이 들어간 ‘똥오줌 물’이었다. 그러나 올해 개발된 신기술 덕에 폐수는 깨끗한 식수로 변했다. 게이츠는 ‘변기 물을 식수로 바꾸는 기술’이란 제목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며 감탄했다. 지난 7월 15억 명의 사용자를 거느린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태양광으로 나는 드론(무인기) 아퀼라(Aquila·독수리좌)를 공개했다. 아프리카·인도 등 14개국의 인터넷 사각지대에 사는 40억 명도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무선 기지국’ 역할을 하는 드론을 띄운 것이다.

[세상 속으로] 미국 IT매체가 뽑은 올해 혁신기술
생활 편의
화장실 물을 깨끗한 식수로 바꾸고
외국어 간판 바로 번역하는 앱도


 미국 IT 전문 매체 테크인사이더가 선정한 ‘지난 1년간 개발된 흥미로운 혁신 기술’ 40가지 중 일부다. 여기엔 PC기능을 하는 9달러(1만원)짜리 컴퓨터 칩, 바르면 12초 만에 지혈되는 연고, 외국어 간판을 바로 번역하는 애플리케이션(앱)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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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실 물도 청정수로 바꾸는 신기술은 빌앤드멀린다게이츠 재단에서 자금을 대는 ‘옴니 프로세서’가 구현했다. 전 세계 20억 명이 청결한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해 고통 받는 상황에서 나온 기술이다. 옴니 프로세서는 매일 14t 이상의 폐수를 식수로 바꾼다. 배설물을 고온으로 가열해 수증기만 걸러낸 뒤 이를 냉각시켜 물을 얻는다. 정수는 기본이고 걸러진 배설물로 전기도 생산한다. 물과 전기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 특히 필요한 기술이다. 빌앤드멀린다게이츠 재단은 내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이 기계를 본격 보급할 계획이다.

 세계 최대 검색 엔진 구글은 해외에서 뜻을 알 수 없는 외국어 간판 때문에 당황하는 여행자를 위해 올해 ‘이미지 번역’ 앱을 내놨다. 예컨대 러시아어 표지판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영어로 번역된다. 스마트폰 화면에 비치는 글자를 원하는 언어로 번역해 주는 게 장점이다. 온라인 접속을 하지 않고도 번역이 된다. 한국어·영어·중국어·아랍어 등 27개 언어로 번역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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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조류를 이용해 만든 ‘베티겔’이라는 연고는 12초 만에 피를 멈추게 한다. 바르면 금세 지혈되는 베티겔을 발명한 사람은 뉴욕대를 졸업한 조 랜돌리나(22)다. 그는 이 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바이오기업 수네리스를 창립했다. 베티겔은 해조류를 잘게 쪼개 젤에 녹인 것으로 상처 위에 바르면 빠른 속도로 혈소판이 쌓여 피가 멎는다.

 1분 내로 3300~4000L의 물을 흡수하는 홍수 방지 콘크리트 ‘톱 믹스’는 영국·프랑스의 합작 시멘트 기업 라파즈 타르맥에서 발명했다. 주차장·도로·골프장 등에 사용되는 톱 믹스는 빗물이 튀어 넘치는 것을 막아주는 스마트 건축자재다.

 빈곤에 허덕이는 이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도 개발됐다. 스웨덴 가구회사 이케아와 유엔이 협업해 만든 ‘더 나은 쉼터(better shelter)’라는 간이주택이 그것이다. 4시간 만에 지을 수 있고 3년간 살 수 있는 태양열 주택이다. ‘더 나은 쉼터’는 분쟁과 자연재해 등으로 난민이 된 이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최대 5명이 살 수 있는 이 쉼터는 네팔·이라크·에티오피아 등에 설치됐다. 올해 말까지 1만 개의 쉼터가 설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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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코넬대에서 개발한 ‘패시브 하우스(폐열 등을 재활용하는 에너지 고효율 건물)’ 기술도 관심이다. 코넬대의 기술은 세계에서 가장 큰 패시브 하우스를 짓는 데 쓰이고 있다. 2017년께 20층 높이의 이 건물이 완공되면 다른 빌딩에 비해 매년 882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다른 건물보다 에너지를 60~70% 절약한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소요되는 건축비는 1억1500만 달러(약 1330억원)다.

 9달러짜리 초소형 컴퓨터도 올해의 기술로 선정됐다. 미국 스타트업 넥스트 싱(Next Thing)에서 제작한 컴퓨터 칩은 9달러, 칩과 배터리는 19달러(약 2만2000원)에 판매된다. 칩 크기는 가로 5.8㎝, 세로 3.8㎝로 매우 작지만 모니터와 키보드만 연결하면 PC처럼 쓸 수 있다. 인터넷·게임·문서 작업 등 기본적인 PC 작업이 가능하다. 크라우드펀딩(소규모 후원·투자 유치 활동)사이트 킥스타터에서 지난 5월 선(先)주문 받았는데 한 달여 만에 20억원 이상의 주문이 몰렸다. 올해 가을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올해 8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있는 스타트업 엔크로마에선 색맹도 색깔을 볼 수 있게 하는 안경을 내놨다. 이 색맹 교정 안경의 가격은 329~699달러(약 38만~80만원)이며 현재는 콘택트렌즈형으로도 개발 중이다. 빛의 파장을 조절하는 이 안경을 끼면 색깔 구별이 한결 쉬워진다. 한 해 수백 개에 불과했던 색맹 안경 판매량은 올해 1만2000개로 치솟았다. 테크 인사이더는 세계 인구 중 남성의 8%, 여성의 0.5%가 색맹이라고 보도했다.

 쑥쑥 크는 3D 프린팅 시장에서도 올해 신기술이 속출했다. 세계 3D 프린팅 시장은 지난해 40억 달러에서 2018년 125억 달러(약 14조4700억원)로 연평균 33% 성장할 전망이다. 제조업에서 다양하게 쓰이는 3D 프린팅으로 사람들이 먹는 약도 만든다. 미국에서 3D 프린터로 만든 의약품이 지난 8월 세계 최초로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FDA에 따르면 미 제약업체 아프레시아에서 만든 스프리탐은 뇌전증(간질)으로 인한 마비현상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테크 인사이더는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하면 의약품 제조 단가가 낮아질 수 있다”고 전했다.

 동물에 적용된 3D 프린팅 기술도 있다. 바이오 신생기업 펨비언트는 실제 코뿔소 뿔과 똑같은 뿔을 만들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매튜 마커스와 생화학자 조지 보나시는 올 1월 3D 프린터로 코뿔소 뿔을 만드는 회사 펨비언트를 세웠다. 코뿔소 뿔의 성분인 케라틴과 단백질 등을 3D프린터에 넣어 출력했더니 실제 뿔과 동일한 인조 코뿔소 뿔이 탄생했다. 이들이 뿔을 만들기 시작한 건 코뿔소 멸종을 막기 위해서다. 3D 프린터로 만든 코뿔소 뿔은 강장제·해독제 등의 민간 의약품으로 활용될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2007~2014년 코뿔소 밀렵이 7000%나 급증했다. 코뿔소는 8시간마다 한 마리씩 밀렵된다는 통계가 있으며 2025년이면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사람들이 코뿔소 밀렵에 나서는 이유는 야생에서 자란 코뿔소의 뿔이 개당 최대 10만 달러(약 1억1500만원)에 거래될 만큼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다. 마커스는 “인조 코뿔소 뿔은 암시장 거래 가격의 8분의 1에 불과하지만 성분은 동일하다”며 신기술 덕에 코뿔소 밀렵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모기를 통해 전파되는 뎅기열 말라리아 등을 퇴치하기 위한 신기술도 올해 본격 검증에 들어갔다. 영국 생명공학 회사인 옥시텍은 불임 백신을 넣은 유전자 조작(GMO) 수컷 모기를 개발했다. 몸속에 ‘자멸 유전자’를 지닌 GMO 모기와 야생 암컷 모기 사이에서 태어난 모기 유충은 성충이 되지 못하고 죽기 때문에 모기의 개체 감소에 도움이 된다. 올봄부터 브라질 상파울루주의 피라시카바에서 변형 모기를 풀어놓는 작업을 시작했다. 옥시텍은 이를 통해 파나마·브라질 등에서 모기 개체를 90% 이상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S BOX] 아이들 구하는 11만원짜리 인큐베이터

세상을 바꾸는 혁신은 반드시 많은 돈을 들여야 가능한 건 아니다. 낙후된 지역이나 소외된 계층을 배려한 적정 기술이 그 예다. 제작 비용이 비싸면 최빈국에서는 기술을 제공받아도 ‘그림의 떡’이 되기 쉽다. 따라서 지나치게 하이테크를 추구하기보다는 적정선에서 개발된 기술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게 낫다.

 인도에선 ‘주가드(Jugaad) 혁신’이라고 불린다. 주가드는 ‘슬기로움’ ‘즉흥적이고 대담하게 기발한 해결책을 고안하는 능력’을 뜻하는 힌두어다. 2012년에 나온 책 『주가드 혁신』에는 주가드의 원리가 소개됐다.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아라 ▶적은 자원으로 많은 일을 하라 ▶단순하게 하라 ▶소외계층을 포용하라 등을 원칙으로 한다.

 대표적인 예가 꼬마전구가 장착된 인큐베이터다. 인도 남부 쳉갈파투에서 소아과 의사를 하던 사티야 제가나탄은 유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서양에서 인큐베이터를 수입하려 했다. 그러나 비용이 비싸서 들여올 수 없었다. 대신 그는 나무로 만든 상자에 전구를 설치해 영아들의 체온이 유지되게 했다. 만드는 데 100달러(약 11만5000원)면 충분했다. 제품을 사용한 뒤 지역 유아 사망률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도넛 모양으로 생긴 6만원짜리 물통도 적정 기술 사례다. 알파벳 ‘큐(Q)’를 닮은 큐 드럼은 한 번에 50L의 물을 운반할 수 있고 15년 이상 사용 가능하다. 오염된 물 속에 사는 미생물을 자동으로 걸러내 사람들을 지키는 ‘라이프스트로(Lifestraw)’ 역시 적정 기술의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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