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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방귀 냄새 맡으면 질병 예방한다” 시시콜콜한 연구 많아 ‘영또’ 별칭

중앙일보 2015.11.14 01:15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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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학 연구팀들은 햄스터의 행복부터 방귀 냄새, 배트맨까지 연구 주제를 가리지 않는다. 황당해 보이지만 과학적 방법론이 있다.


#지난 7월 영국의 메트로지에 ‘이례적인’ 연구 결과가 실렸다. 기사 제목은 “햄스터, 그물 침대를 획득하면 더 낙관적(Hamsters are more optimistic when they’ve got a hammock, study finds).” 기사는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의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라며 “햄스터의 감정 변화가 측정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논평을 덧붙였다.

[세계 속으로] 기발한 과학연구 활발한 영국
햄스터에 그물침대 사주면 더 행복
테트리스 게임 하면 금연에 도움 돼
대중 접근 쉬운 ‘오픈 사이언스’ 지향
“어려운 과학 친숙하게 알려 긍정적”
‘영또’라고 무시? 실력 만만치 않아
노벨과학상 84건 … 미·독 이어 3위


 #영국 정론지 가디언은 지난해 7월 이런 제목의 기사를 썼다. “조용하지만, 치명적이진 않은 - 어떻게 방귀가 질병을 치료하나(Silent, not deadly; how farts cure diseases).”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엑세터대의 최근 연구 결과가 ‘방귀 냄새를 맡는 게 암과 많은 다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식으로 보도됐다. 실제 연구는 훨씬 복잡하고 구체적으로 방귀를 특정한 게 아니라 (방귀 냄새의 원인인) 황화수소를 언급한 것이지만, (중략) 실제 방귀 냄새를 맡아 질병을 낫게 한 경우가 있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이 두 연구는 제목만 보면 연구 주제나 결과 모두 엉뚱한 듯 보인다. 하지만 엄연히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이 연구들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영국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결과라는 것이다. 사실 영국에선 이외에도 기상천외한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온다. “테트리스, 금연에 도움”(영국 플리머스대 연구, 8월 14일 영국 데일리 메일 보도), “배트맨, 현 복장으로 하늘 날면 착지 시 사망”(영국 레스터대 물리학과 대학원생들, 2012년 ‘추락하는 배트맨의 궤적’ 논문 물리학 저널에 발표), “도둑들이 가장 선호하는 운동화는 리복 클래식”(영국 레스터대, 2010년 도둑 155명 발자국 분석 결과 발표) 등이다.

 이처럼 언뜻 보면 황당해 보이는 연구 결과가 영국에서 계속 나오자 한국 네티즌들은 이런 연구를 지칭하는 신조어 ‘영또’를 만들었다. ‘영국 연구팀’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기사 제목에서 착안한 말로 “영국이 또 황당한 연구를 내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런 ‘영또’ 연구를 조롱하면서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블로그 등을 통해 관련 기사를 적극 공유한다. 댓글을 보면 “영국은 정말 온갖 곳에 안 하는 연구가 없다” “진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이 연구 결과를 수긍하는 반응을 압도한다.

 하지만 실제 연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의 과학적 방법론이 있다. 우선 ‘방귀 냄새가 질병을 치료한다’는 연구는 냄새의 원인인 황화수소가 세포의 에너지 생성을 맡는 미토콘드리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되면 세포가 사멸하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면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연구를 수행한 영국 엑세터대는 개교한 지 150년 된 전통 있는 대학으로, 영국 대학 순위에서 10위권에 꼽히는 명망 있는 학교다. 연구는 영국 왕립화학학회(Royal Society of Chemistry)가 출판하는 ‘약화학통신(Medicinal Chemistry Communications)’에 실렸다.

 ‘햄스터, 그물침대를 획득하면 더 낙관적’ 연구 역시 햄스터의 감정을 기발한 방식으로 측정했다는 평이다. 쓴맛이 나는 물과 달콤한 설탕물을 설치하고 그 사이에 어떤 물이 나올지 알 수 없는 한 빨대를 설치했을 때 질 높은 환경에서 사는 햄스터가 더 적극적으로 팔을 뻗어 음료를 마셨다는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에밀리 베델 박사는 “이 연구는 좋은 환경에 사는 햄스터가 모호한 정보가 주어졌을 때 더 낙관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햄스터 연구는 ‘왕립오픈사이언스저널’에 실렸다. 이 저널은 일종의 ‘대안 과학 저널’이다.

 이 저널이 추구하는 ‘오픈 사이언스’는 말 그대로 ‘열린 과학’을 뜻한다. 최근 과학계에서 논의되는 주요 의제이기도 하다. 다양한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해 함께 과학을 발전시켜 나가자는 움직임이다. 지난달 대전에서 열렸던 ‘세계과학정상회의’에서도 오픈 사이언스가 화제였다. 당시 한 세션인 ‘OECD과학기술장관회의’ 기조 연설을 한 영국 맨체스터대 필 다이아몬드(천체물리학과) 교수는 “대중의 접근이 어려운 과학 연구는 발전 속도가 느리다”며 오픈 사이언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처럼 연구 주제에 한계가 없고, 오픈 사이언스 운동이 벌어지는 건 영국의 경쟁력이라는 평가다. 서울대 장대익(과학철학박사) 교수는 “영국에서 그저 이상한 연구 결과만 쏟아지는 것 같지만 과학에 대한 언론과 일반인의 관심이 높기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전북대 정원(과학사) 교수는 “어렵게만 생각하는 과학을 친숙하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영또’는 긍정적”이라며 “영국은 18세기에도 노동자 계층까지 초청해 과학 강연을 열기도 한 나라”라고 말했다.

 과학칼럼니스트 임동욱씨도 “한국 사람이 보기엔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이런 우스꽝스러운 연구에서 의미 있는 일들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과거엔 쓸모없는 연구라고 했지만 이후 재발견하면서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연구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영또’라고 무시하기엔 영국 과학자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 영국이 지금까지 받은 노벨과학상의 숫자는 84개. 미국·독일에 이어 세계 3위다. 문애리 덕성여대 약대 교수는 “결국 과학적인 근거로 이뤄지는 모든 현상의 기본을 이해하는 게 국민의 전체적인 과학 수준을 높이고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이정봉·정혁준 기자 mole@joongang.co.kr

[S BOX] “영국, 가장 많이 인용되는 연구 결과의 16% 생산”

산업혁명으로 인류 역사의 큰 장을 연 나라답게 영국은 과학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과학 저널인 네이처(Nature)를 갖고 있고, 세계 과학자들이 만드는 연구 결과 10개 중 1개가 영국에서 나온다. 2013년 영국 정부는 “영국 인구는 세계의 0.9%에 불과하지만, 세계 연구자의 4.1%, 가장 많이 인용되는 연구 결과의 15.9%를 생산해낸다”며 “미국을 넘어 가장 높은 연구의 질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최근 영국 정부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영국 정부는 과학 연구 투자 비용을 25~40% 깎으려는 계획을 내놨다. 영국 과학자들은 경기침체로 인해 과학 연구 투자 비용이 줄어드는 데 일제히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과학자들과 정부의 의견은 팽팽히 맞선다. 영국에서 존경받는 과학자들은 ‘과학은 생명이다 ’라는 캠페인 그룹을 만들어 정부의 정책에 강력한 반대 목소리를 일관되게 내고 있다. 이 그룹에 참여하고 있는 런던대 제니 론(미생물학) 교수는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과학에 투자를 줄이기 시작하면, 우수한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돼 영국은 과학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노벨과학상 수상자 7명을 포함해 54명의 원로 과학자들이 연구비 투자를 줄이겠다는 영국 정부의 정책에 반대 서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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