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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중동전쟁 속의 국산 중고차

중앙일보 2015.11.14 01:13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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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반군이 사제 연장로켓을 장착한 기아 봉고3 트럭을 타고 시리아 동부의 다이르 앗 자우르 도심을 통과하고 있다. [뉴스 사이트 알알람]


급진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촉발한 중동의 무력분쟁이 격해진 뒤 일이다. 전투 현장에서 무장세력들이 ‘KIA(기아)’ 봉고나 ‘HYUNDAI(현대)’ 포터를 타고 이동하거나 이들 트럭에 기관총이나 다연장 로켓을 싣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미국은 미 공군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의 폭격이 예상만큼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IS가 국산 트럭을 포함한 차량을 이용해 공습을 피해 다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봉고와 포터가 애먼 중동전쟁 한복판에 뛰어들게 됐을까.

봉고·포터 짐칸 넓고 튼튼
로켓 등 중화기 장착에 유리
IS·헤즈볼라 게릴라들 선호


 1990년대 초반 국제구호단체들은 기아에 허덕이는 소말리아로 들어갔다. 내전으로 치안 상황이 악화되자 이들은 소말리아 무장세력을 경호원으로 고용했다. ‘기술 원조자금(Technical Assistance Grants)’ 지출항목으로 경호비용이 나갔다. 무장세력은 그 돈으로 일제 픽업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구입했다. ‘테크니컬(technical)’이 무장병력을 수송하는 민수용 차량을 일컫는 용어가 된 이유다. 제3세계 무장세력은 하이럭스나 랜드크루저 등 도요타의 오프로드 차량을 선호했다. 내구성이 좋고 고장이 적은 데다 험지 주행 능력이 뛰어나서다. 또 독일제보다 싸다는 장점이 있다.

 테크니컬은 장갑(裝甲)이 빈약해 총탄 몇 발로도 간단히 제압될 수 있다. 군사잡지 ‘플래툰’의 홍희범 편집인은 “‘치고 빠지기’ 게릴라전술의 대가인 제3세계 무장세력엔 큰 문제가 아니다”며 “적을 급습한 뒤 잽싸게 도망갈 수 있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86~87년 리비아는 이웃 국가 차드와 전쟁을 벌였다. 리비아군은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워 침공했지만 대패한 뒤 철수했다. 차드군이 도요타 테크니컬에 대전차 무기를 달고 다니면서 리비아 기계화부대를 각개격파한 것이다. 그래서 이 전쟁을 ‘도요타 전쟁(Toyota War)’이라고도 부른다. 이후 테크니컬은 러시아제 소총 AK-47, 로켓추진유탄발사기 RPG와 함께 제3세계 무장세력의 3대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도요타는 한동안 테크니컬의 동의어였다. 그러다 최근 IS뿐만 아니라 헤즈볼라·자유시리아군(FSA) 등 다양한 무장세력이 국산 1t 트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헤즈볼라 게릴라들이 국내 자동차학원 이름이 쓰인 트럭에 탄 외신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국산 중고차가 시리아·이라크의 전장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인다. 공안 당국 관계자는 “국산 중고 트럭이 중동 무장세력에 수출됐다는 정황이나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국산 중고차는 가격 대비 성능이 좋고 부품 값이 싸서 인기다. 특히 중동에서 많이 찾는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트럭은 내수 모델이 수출 모델보다 옵션이 더 달려 있어 중고차 수출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중고차 딜러는 “전 세계 중고차 시장은 파키스탄 출신이 꽉 잡고 있다. 국내의 파키스탄 출신 중고차 딜러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중동 지역 수출을 많이 한다”고 했다. 파키스탄 출신 중고차 딜러는 “아반떼·봉고·포터가 주력 수출품”이라고 말했다.

 국산 1t 트럭은 도요타 오프로드 차량에 비해 짐칸이 넓다. 또 다른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국산 트럭은 과적이 일상적인 국내 환경에 맞게 만들어져 튼튼하다”고 했다. 그래서 다연장 로켓이나 대공기관포 등 중화기를 손쉽게 장착할 수 있다는 점을 이슬람 무장세력이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국산 중고 트럭이 중동 중고차 시장의 허브인 요르단을 거쳐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인근 시리아나 이라크로 넘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중고자동차수출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중고차 수출에서 요르단(3만3286대)은 대수 기준으로 리비아(6만8318대) 다음이었다. 그러나 금액 기준으론 1위(2억1522만 달러)였다. 승용차보다 값이 더 나가는 화물·특수차량 수출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국내 소상공인의 동반자인 봉고가 이슬람 무장세력의 발이 된 배경엔 세계화의 힘이 숨어 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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