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속으로] 딸기 사진만 보고 맛을 아는 이유는

중앙일보 2015.11.14 01:07 종합 22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의 1925년작 ‘노랑 빨강 파랑’. 칸딘스키는 색에서 소리를 듣는 공감각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흐름출판]

 
기사 이미지
소리가 보이는 사람들
제이미 워드 지음

소리 보고 색깔 듣는 공감각자들
감각은 뇌의 총체적인 작용
갑자기 눈을 뜨게 된 시각 장애인
전에 알던 물건 분간할 수 있을까

김성훈 옮김
흐름출판, 332쪽, 1만5000원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추일서정·1939년)’라는 구절로 유명한 모더니즘 시인 김광균(1914∼1993). 옛날 국어시간에는 이 시에 “시각적 심상을 사용해 인간의 의식이나 소리까지도 모양으로 바꾸어 놓는 회화적 특성이 있다”며 이 분을 ‘공감각의 시인’으로 가르쳤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와사등·1939년)’이란 구절의 의미를 묻는 문제에는 “시각을 촉각으로 전이한 대표적인 공감각적 심상”이라고 답해야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공감각은 문학적·인문학적 용어로 알려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영국 서식스 대학의 인지신경과학 교수인 지은이는 ‘소리를 보고, 색깔을 듣는’ 공감각이 자연과학에서도 폭넓게 다루는 ‘실체적 진실’이라고 강조한다.

 따져 보자. 인간은 감각기관을 통해 보고 듣고 맛보며 냄새 맡고 감촉을 느낀다. 과학적으로 풀어보면 인간은 눈에 들어온 가시광선의 내용물을 뇌가 인식하면서 비로소 물체를 보게 된다. 소리를 듣는 것은 청각 기관이 주변 음파를 감지하고 이를 뇌가 인식한 결과다. 그런데 시각적인 가시광선의 정보를 청각적으로 인식한다든지, 청각적인 음파의 진동 정보를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공감각자다. 소리를 보고, 색깔을 들으며, 냄새를 촉각처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딸기는 색, 모양, 냄새, 맛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사진만 봐도 모양은 물론 향기와 맛, 냄새까지 떠올린다. 지은이는 우리의 뇌가 다중감각의 보이지 않는 퍼즐을 스스로 채워 넣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맞은 경험이 없어도 맞으면 어떤 일이 생길지 상상할 수 있는 것도 뇌가 통각과 촉각을 시뮬레이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은이는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 등의 감각이 서로 분리돼 있다는 것은 우리의 오해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뇌의 인식이 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뇌 속에서 물체의 모양을 인식할 수 있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이미 17세기 영국 철학자 존 로크(1632~1704)는 ‘시각장애인이 갑자기 시력을 회복하면 과거 촉각을 통해 인식했던 주변의 사물을 시각적으로 제대로 인지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에 몰두했다. 그가 제시한 답은 ‘아니오’였다. 당시 윌리엄 몰리뉴 의원이 내놓아 ‘몰리뉴의 질문’으로 알려진 이 화두는 우리에게 공감각의 실체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실제로 로크가 세상을 떠난 뒤인 1782년 백내장 수술로 선천적 시각장애를 극복한 한 소년은 자기가 보는 것들의 이름을 제대로 대지 못했다. 고양이를 보고도 고양이인지 개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만져본 다음에야 고양이임을 알아차렸다.

 자동차 사고로 뇌를 다쳐 색맹이 된 한 화가의 사례는 감각기관의 인지와 뇌의 인식 사이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빛을 인간의 뇌를 통해 인지해야 비로소 시각적인 실체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화가는 사고 뒤에 갈색 개가 회색으로 보일 뿐 아니라 그늘에 있으면 잘 보이지도 않아 차라리 점박이 달마티안으로 바꿀까 고민했을 정도였다. 해돋이도 흑백으로 보였으니 사태가 심각할 만 했다. 화려한 색상의 그림만 그려왔던 그는 작품 세계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그는 완전 색맹이 본 흑백의 해돋이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색맹이 아닌 사람에겐 검은색이 흰색에 자리를 내주는 모습이나 핵폭발처럼 보였다. 이런 식으로 해돋이를 본 사람이 없었기에 그의 작품은 파격적이고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평론가들은 그를 ‘창조적으로 부활한 작가’로 표현했다.

의대를 다니다 미국 남북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했던 조지 디들로는 포격으로 팔 다리를 잃은 뒤 겪은 증상을 이렇게 기록했다. “팔다리는 가렵고 아프고 심지어 쥐가 나기도 했다.” 이미 절단된 다리에서 이런 감각을 느끼는 것을 환상 촉각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감각이 인간 뇌의 작용임을 보여준다.

 연구 결과, 공감각은 공간지각 능력이나 수리학적 이해, 언어 구사력, 기억력 등과 관련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1920년대 뛰어난 암기 전문가로 무대에서 공연까지 했던 솔로몬 셰레셰브스키는 공감각으로 숫자와 언어, 사물을 사진처럼 기억했다. 복잡한 난수표를 3분 정도 본 뒤 40초 만에 그대로 다시 적었고, 그 기억은 몇 달이 지난 뒤에도 그대로였다. 그는 시각은 물론 촉각·미각까지 동원해 다중감각적으로 암기력을 높이는 기억증진 기법을 개발했다. 뇌 속에서 감각이 이미지로 변환되고 이미지가 다시 기억으로 저장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지은이는 다양한 실험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공감각이 기억력을 높이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공감각의 존재는 우리에게 세상을 느끼는 자신만의 방식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는 게 지은이의 강조점이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그 세상을 인식하는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chae.intaek@joongang.co.kr

[S BOX] 포도주는 눈으로 마신다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문을 열어 런던·뉴욕· 나이로비 등에 지점을 냈던 ‘당 르 누아르(Dans le Noir·암흑 속에서)’라는 식당이 있다. 요리의 맛이 시각적 요인에 좌우되지 않도록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식사를 하게 하는 아이디어로 관심을 모았다. 어둠 속에서 식사를 하면 예전에 몰랐던 다양한 감각이 살아나 음식 본연의 맛을 충분하게 느끼게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그곳에서 식사를 한 결과 오히려 시각이 음식의 맛과 향을 더해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간이 느끼는 맛은 혀와 코만 통해 느끼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시각·촉각은 물론 심지어 청각까지 포함한 다양한 다중감각적 기억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백포도주에 붉은 색을 첨가해 적포도주 색으로 만들어 마시게 하는 실험을 했더니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상당한 수준의 와인 전문가도 이 가짜 적포도주에서 진짜 적포도주에서 느낄 수 있는 냄새를 자꾸 떠올린 것이다. 포도주를 코가 아닌 눈으로 판단한 셈이다.

 이처럼 음식과 술의 맛과 향은 코가 아닌 공감각의 총합이다. 특정 감각을 넘어 뇌가 가진 기억력까지 작용해야 비로소 식사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