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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다이어리] 4시간만 충전하면 될 일을 …

중앙일보 2015.11.14 00:44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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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키즈팀장

아파트에 정전 예고가 붙었다. 회사에 나가 있을 동안 벌어질 일이라 무심코 보아 넘겼으나 전날 저녁 딸랑구 2호가 다니는 단지 내 어린이집에서 문자를 받는 순간 재앙이 됐다. ‘내일 정전으로 인해 키즈카페에서 부모 참여 체험학습을 실시합니다. 오전 9시50분까지 같이 등원해주세요’.

 요 며칠 2호의 울음이 늘어 고민이 되던 터였다. 급기야 문제의 날, 2호는 외할머니 말고 엄마랑 가겠다며 나자빠졌다. 에라잇, 눈 딱 감고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현장에 도착해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같은 반 7명이 전원 엄마와 함께 참석했던 것이다. 설마 했더니 혼자 워킹맘이었던 모양이다.

 “오늘은 시간이 나셨나 봐요?” “얌전한 아이인 줄 알았더니, 이렇게 활발한 모습은 처음 봐요.” 어린이집 졸업을 코앞에 두고야 처음 인사를 나눈 급우 엄마들이 한마디씩 건넸다. 선생님도 “드디어 엄마랑 같이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겠네요!”라며 기뻐했다. 엄마가 아이와 같이 있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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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선생님들은 열심히 보고용 사진을 찍은 뒤 퇴장하고, 아이들과 엄마들만 남았다. 기쁨은 잠시, 이러다 아이가 영영 집에 안 간다고 하면 어쩌나 점점 불안해졌다. 2호를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같은 반 엄마를 꾀어 키즈카페 밖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곧 이별의 시간. 아이가 악다구니를 쓸지도 모른다. 심호흡을 하고 말을 꺼냈다.

 “이거 먹고 엄마는 회사에 가야 해. 너는 OO이랑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가고. 괜찮지?” 예상과는 달리 2호는 “네!” 하고 밝게 답했다. 맥이 탁 풀렸다. 전업맘인 친구 엄마 덕분에 친정엄마에게 인수인계하는 시간을 아끼고 회사로 향했다. 아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친구와 놀이터로 뛰어갔다. 엄마의 사랑을 충전하는 데 딱 네 시간이면 족한 것을, 그동안 왜 그렇게 인색했던가.

 같은 시각, 초등학교 1학년인 딸랑구 1호의 학교에선 바자회가 열리고 있었다. 엄마들 단체 카톡방에 ‘OO한테 물건 살 돈을 못 챙겨 보냈는데 빌려주실 분 있나요?’란 어느 워킹맘의 메시지가 올라왔던 모양이다. 뒤늦게 그걸 확인한 한 엄마의 답. ‘죄송해요. 너무 늦게 확인했네요. OO가 슬퍼할까 봐 우리 아이한테 선물 가져다주라고 했어요. OO는 지금 돌봄교실에 있죠?’

 역시나 돌봄교실에 있을 내 아이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코끝이 찡했다. 연일 자진 야근에 셀프 착취를 하는 직장생활 16년 차 워킹맘에게도 두 아이를 키우기에 네 시간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다른 아이까지 마음 써주는 따뜻한 전업맘들이 있으니까.

이경희 키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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