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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길!] 지속 가능한 개발, 과연 가능할까?

중앙일보 2015.11.14 00:44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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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세계시민학교 교장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니,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심히 의심스럽다. 네팔 오지마을을 상상해보자. 대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산속 마을에 마을사람들과 지역정부와 구호개발 NGO가 힘을 합쳐 지역개발사업이 시작됐다. 깨끗한 식수원을 확보하고 초등학교와 보건소를 짓고 인근 도시와 연결하는 도로를 내고 젊은이와 여성을 위한 직업훈련을 실시했다.

 그 덕으로 마을의 유아사망률과 질병발생률은 현저하게 낮아졌고 아이들은 모두 초등학교에 다니며 농산물 거래가 활발해지고 고용이 늘면서 소득이 높아졌다. 더불어 여성의 사회 참여도 활발해졌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맛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어느 날 아침, 강진이 이 마을을 강타해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200여 가구가 살던 마을 주민 대부분은 죽거나 다치고 건물들은 콩가루처럼 부서졌다. 지난 10여 년간의 공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린 것이다. 올 4월 네팔 지진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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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년간 이런 구호현장에 갈 때마다 그동안 들였던 노력과 자원과 땀과 눈물을 생각하면 너무나 허무하고 안타깝다. 그리고 생각한다. 모두의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대형 재해를 비롯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막는 주요 요인을 함께 찾아내고 함께 대처하고 함께 싸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요인들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 유엔에서 발표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가 반갑기만 하다. 올 9월 말 제70차 유엔총회에서 모든 유엔 가입국 193개국 정상들이 채택한 2030년까지 전 세계가 달성해야 할 17개의 개발목표가 공표됐다. 여기에는 ‘모든 국가에서 모든 형태의 빈곤을 없앤다’는 빈곤 퇴치를 선두로 경제·사회·환경목표를 아우르고 있다.

 물론 이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다. 이에 앞서 유엔은 새 천년을 맞아 빈곤 퇴치를 위한 새 천년 개발목표(MDGs· Millenium Development Goals)를 채택했다. 2000년부터 2015년까지 빈곤을 반으로 줄이고 초등교육 확대, 모자보건 향상, 양성평등 등 8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새 천년 개발목표는 인류에게 공동개발 의제가 생겼다는 점에서는 큰 의의가 있지만 그 과정에 소수의 전문가와 후원국만 참여했다는 태생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따라서 이 목표에 대한 공감대도, 이행할 책임이 있다는 주인의식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지속가능개발목표 과정은 완전히 달랐다. 지난 2~3년간 각국 정부, 유엔, NGOs, 학계, 연구기관, 기업은 물론 개인도 얼마든지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 총 140만여 명이 의제 설정 과정에 참여했고 그를 발판으로 목표를 선정했는데, 나 역시 월드비전 국제구호전문가와 유엔 자문위원으로 여러 형태의 토론회에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 덕분일까? 이번 유엔의 SDGs는 다 함께 만들었으니 우리의 목표이고 우리 모두가 실행할 책임이 있다는 공감대가 훨씬 높다. 또한 전 세계 각계각층의 전폭적이고 전방위적인 실천의지 없이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이 목표 달성에 빈곤을 퇴치한 경험이 있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의 역할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에 발맞춰 박근혜 대통령은 유엔개발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이 목표 실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연설했다. 특히 17개 목표 중 개발도상국 소녀들의 건강과 교육을 위해 노력하겠으며 2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천명해 큰 박수를 받았다. TV로 보던 나도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현장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개도국에 만연한 조혼, 여성 할례, 성폭행, 조기 임신 등으로 소녀들의 건강이 어떻게 처참히 망가지고 있는지, 교육을 제대로 받은 건강한 소녀가 지역 발전에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그러나 여태껏 이 분야에 대한 연구와 지원이 얼마나 열악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시의적절하게도 2013년부터 내가 박사과정 중인 이화여대의 국제대학원과 의료원이 빌게이츠재단 후원으로 개도국 소녀 건강에 대해 집중 연구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나는 한국이 이 분야를 통해 지속가능개발목표 달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이처럼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되 각 기관과 개인은 17개 목표 중 각자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 집중하면 그것이 지구촌 일원으로 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세계시민학교 교장으로서 내 역할은 많은 사람에게 쉽고도 친근하게 이를 알리는 것일 거다.

 지속가능개발목표! 싫든 좋든 지구에서 사는 한 앞으로 15년간은 다양한 경로로 수없이 들어야 하는 얘기다. 나도 많이 얘기할 생각이다. 오늘은 맛보기, 재미있는 본과정과 심화과정도 준비했으니 기대하시라!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세계시민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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