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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생각지도] 『대통령 용어사전』의 오류

중앙일보 2015.11.14 00:42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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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논설위원

우리 대통령의 화법은 참으로 독특해서 듣는 사람을 곧잘 헷갈리게 한다. 우선 화자의 시점(視點)이 기이한데 1인칭도 3인칭도 아닌 거의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그래서 관찰자였다가 비판자가 되기도 하며, 판관도 되었다가 때로 피해자가 되기까지 한다.

 스스로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여 갈등을 조장해 놓고는 이념 싸움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으르고, 자신은 정부와 상관없는 양 메르스 창궐의 책임을 보건복지부에 떠넘긴다. 세월호 승객 구조에 실패한 해양경찰을 질타하면서 사과 한마디 없고, 측근들이 연루된 ‘리스트’와 ‘문건’을 수사하는 검찰에 친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국제적 망신을 한 윤창중 성추행 사건 때 대통령 자신이 공개적으로 홍보수석의 사과를 받은 것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사실은 전임자의 것이었으나 훨씬 능수능란하게 사용해 자기 것으로 만든 이 ‘유체이탈화법’은 이제 너무 익숙해져 ‘어’해도 ‘아’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대통령의 ‘장소이탈화법’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며칠 전 ‘진실한 사람들’이나 몇 달 전 ‘배신의 정치’나 모두 국무회의에서의 발언이었다. 국무회의가 뭔가. 대통령과 총리, 장관들이 국정의 기본계획과 정부의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헌법기관이다. 물론 국무회의 의장인 대통령이 모두발언으로 국정에 협조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하거나 국정의 발목을 잡는 국회를 비판할 수는 있을 터다. 하지만 국무회의 석상에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거나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게 해달라”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건 선거 개입 여부를 떠나서도 맞지 않는다.

 그 모호함을 배가시키는 게 상식을 뛰어넘는 용어 선택이다. 이른바 친박들이나 알 수 있는 『대통령 용어사전』이 등장하는 이유다. ‘진실한’ ‘배신’ ‘은혜’란 단어들이 그렇다. 어려운 단어도 아닌데 예상치 못한 시점(時點)에 튀어나와 어안을 벙벙하게 만든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극히 일부를 제외한 국회의원들이 단박에 진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돼버렸다. 그 진실한 사람들이 누구냐에 관심이 모아진 건 당연한 일이다. 며칠 전 후배기자가 만난 친박계 핵심의원의 해석이 돋보인다. “박 대통령의 『정치용어사전』에서 진실의 반대말은 배신이다.”

 그제서야 알겠다. 진실한 사람들이란 누구처럼 ‘은혜를 잊고 자기 정치 즉 배신의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닌,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며 군소리 없이 뒷받침할 가신들’을 일컬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머지도 풀린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특보가 될 수 있고,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전수받은 장관과 참모들을 서둘러 국민의 대표로 내보내는 이유를 말이다.

 지금까지 숱하게 지적했던 터라 다시 얘기하자니 지치고 입만 아프다. 다만 한 가지가 가시처럼 걸린다. ‘진실’ 말이다. 진실이 다면체란 걸 우리 대통령이 모르는 것 같아 그렇다. 어느 한 면에 시선이 박혀 진실로 재단하고 나머지 면들을 돌아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리학에서조차 상대성이 인정되고 있는 마당에 절대적인 진리란 가당치 않다. 특히 최고권력자가 절대적 진리를 좇으면 절대적으로 위험하다.

 많은 현인이 경계하는 것도 그래서다. “진실을 찾는 자는 신뢰하되 진실을 발견한 자는 의심하라.”(앙드레 지드), “진리를 구했다는 확신이 인간을 잔혹하게 만든다.”(아나톨 프랑스) 그중에서도 1954년 노벨상을 수상한 독일 물리학자 막스 보른이 회고록에 남긴 얘기는 우리 대통령이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다. “나는 완전한 확실성, 최종적 진실 따위는 한낱 허구의 산물이며 어떤 과학 분야에서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유연한 사고방식은 현대 과학이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큰 축복이다. 유일무이한 진리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것을 소유한 자가 되고자 함은 이 세상 모든 악의 근원이다.” 과학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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