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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금요일] 긴축동맹의 균열

중앙일보 2015.11.13 01:47 종합 2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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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블라이드

“예상치 못한 폴트라인(Fault Line).” 미국 브라운대 마크 블라이드(정치경제학) 교수의 말이다. 그는 긴축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경제 지형을 분석해온 학자다. 폴트라인은 지각이 갈라진 선이다. 대지 요동이 주로 일어나는 곳이다. 그는 11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중도우파 정권이 4년짜리 긴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가 집권 11일 만에 몰락한 것에 대해 “포르투갈 정치 지각이 갈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 총리는 선거에서 이긴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10일 불신임받았다. 이런 정치적 기습의 중심에 ‘좌파연대’가 있다. 사회당을 비롯해 좌익블록·공산당 등이 가세한 연합세력이다. 보기 드문 좌파의 단결이었다. 이전까진 좌파진영은 ‘중도좌파 대 좌익블록·공산당·녹색당’ 구도로 갈라서 서로 앙앙불락(怏怏不樂)했다. 그런데 이들이 손을 잡았다. 좌파연대의 의석은 과반보다 7석 많은 122석이나 됐다.

구제금융 모범생 포르투갈의 배신 … 긴축시대 저무나

 좌파는 긴축 프로그램 반대에 똘똘 뭉쳤다. 코엘류 총리가 의회에 제출한 긴축안은 포르투갈이 2011년에 받은 구제금융 780억 유로(약 102조원)의 조건 가운데 하나였다. 코엘류 퇴진 이후 유럽 정계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포르투갈이 제2의 그리스가 될 수 있다는 분석과 전망이 여기저기서 제기된다. 이런 사태가 『긴축:위험한 아이디어의 역사(Austerity:The History of a Dangerous Idea)』의 지은이인 블라이드 교수 눈엔 어떻게 비칠까.

 블라이드는 “구제금융 모범생이 반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르투갈은 그리스와는 달랐다. 독일 등 국제 채권단의 요구를 착실하게 이행했다. 그리스는 급진좌파 정권이 등장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들먹이며 긴축 조건을 재협상하자고 나섰다. 그리스 좌파가 굴복하기는 했지만 과정은 험난했다.

 블라이드는 “나도 포르투갈에서 긴축정책을 바탕으로 형성된 정치적 지각이 균열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포르투갈이 유럽의 작은 나라지만 이번 사건은 긴축동맹 측면에서 볼 때 긴장할 만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긴축동맹은 ‘국가 재정은 건전해야 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 중도 좌·우파의 동맹이다. 한 세대(30년 정도) 동안 미국·유럽 등을 사실상 지배했다. 블라이드는 “동맹의 탄생은 1970년대 후반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저성장)이 낳은 트라우마 탓”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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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물가-저성장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실업과 경기 침체를 제치고 세계 경제의 주적으로 떠올랐다. 이전까지 경제정책은 실업과 경기 침체를 완화하는 데 집중됐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부각되면서 통화 증발과 재정적자는 용서할 수 없는 죄가 됐다.

 블라이드는 “80년 이후 반(反)인플레이션 전선이 형성되면서 영국·미국·독일 등에서 중도 좌·우파가 모두 정부 지출 삭감과 규제 완화를 내세웠다”고 설명했다. 긴축동맹의 탄생이다. 동맹은 단단했다. 영국에선 보수당 마거릿 대처와 노동당 토니 블레어, 독일에선 기민당 헬무트 콜과 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미국에선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과 민주당 빌 클린턴 등이 소속 정당은 달랐지만 큰 틀에서 보면 정책은 거의 비슷했다.

 통화 역사가인 글린 데이비스는 『화폐의 역사(A History of Money)』에서 “긴축동맹은 국제통화기금(IMF) 등 케인스주의 시대에 만든 국제기구의 성격마저 바꿔놓았다”고 했다. IMF 등은 부채나 외환위기에 빠진 신흥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긴축 위주 경제정책 도입을 요구했다. IMF의 애초 목적은 회원국의 국제수지 적자를 일시적으로 메워주는 것이었다. 데이비스는 “미국 정부가 80년대 초 남미 외채위기를 계기로 월가의 요구를 받아들여 IMF에 긴축처방 등을 하는 역할을 맡겼다”며 “비판적인 이론가들은 이를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부른다”고 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긴축처방은 94년 멕시코 사태, 97년 한국 외환위기 등을 거쳐 2010년 유럽 재정위기까지 정통 교리였다. 블라이드는 “부채 탕감 등 그 밖의 주장은 이단자의 외침으로 무시됐다”고 말했다. 긴축처방은 효과도 있었다. 그는 “한국의 회복이 긴축처방을 정당화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리스 사태는 긴축처방의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독일이 국제 채권단인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를 통해 그리스에 처방한 긴축정책이 실물경제를 악화시켰다. 사정이 이쯤 되자 트로이카에서 균열이 발생했다. 유럽통합 전문가인 안병억 대구대 교수는 “IMF가 긴축의 부작용을 인정하고 부채 탕감을 강력히 주장하기 시작했다. IMF는 트로이카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말했다.

 긴축동맹의 핵심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은 흔들리지 않았다. 자국에서 긴축동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가 탄탄해서였다. 대신 독일 밖에서 파열음이 들렸다. 그리스와 스페인 등에서 반긴축 정당이 집권하거나 강세를 보였다. 블라이드 교수는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독일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긴축동맹은 난공불락처럼 보였다. 그런데 영국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반긴축을 주장하는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당수가 됐다. 안병억 교수는 “블레어 등 건전재정을 지지하는 주류가 코빈을 정면으로 비판했지만 효과가 없었다”며 “노동당원들은 긴축 일변도인 집권 보수당 정책에 지쳐 코빈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서양 건너편인 캐나다에선 긴축을 반대하는 중도파인 자유당이 재집권했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선거 직후 워싱턴포스트에 쓴 글에서 “캐나다 유권자들이 반긴축을 선택했다”고 평했다.

 블라이드 교수는 “영국 노동당 사례와 캐나다의 선거 결과는 긴축동맹이 변방이 아니라 중심부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라며 “긴축 모범생 포르투갈의 중도우파 실각은 동맹 균열의 연장”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긴축이 위기로 이어졌는지는 역사적으로도 뜨거운 논쟁거리다. 블라이드의 『긴축:위험한 아이디어의 역사』에 따르면 20년대 미국·유럽·일본이 건전재정 도그마에 빠졌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무너진 금본위제를 복원하는 과정에서다. "당시 월가 사람들은 금의 뒷받침이 없는 종이돈 시스템을 중력이 사라지고 모든 게 흔들리는 혼돈의 세계로 받아들였다(『금융제국 JP모건』).” 이런 시각은 당시 월가의 위상 때문에 성경 말씀처럼 받아들여졌다. 그 시절 월가는 1차 대전을 계기로 채권자들의 최대 집결지가 됐다.

 블라이드는 “영국·독일·일본 등이 월가 요구에 따라 긴축을 단행해 물가상승률을 낮춰 통화-금의 교환비율을 1차 대전 이전 수준으로 되돌려 놓았다”며 “그 바람에 25년 전후 영국 등의 실업률은 20%에 달했다”고 말했다. 반면 금융자산가의 부는 안정적인 금본위제를 바탕으로 부풀어 올랐다. 블라이드는 “이런 불균형이 대공황의 근본 원인”이라며 “2008년 위기도 긴축동맹 시대 발생한 불균형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맞는지는 아직 검증된 게 아니다. 하지만 한 시대 경제상식으로 군림한 ‘나라 재정은 건전해야 한다’는 논리가 도전받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의 경제교사인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공개적으로 긴축 반대를 외치고 있다. 그는 클린턴 시대 신자유주의 정책의 선봉장이었다.

 그런데 서머스나 코빈,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새 총리 입에선 ‘재정지출 확대’란 말은 나오지 않고 있다. 대신 그들은 ‘공공투자 확대’란 용어를 쓴다. ‘재정지출=인플레’란 대중의 두려움을 자극할까 두려워서다. 이처럼 역사는 과거의 흔적을 안고 변하고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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