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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세로토닌 효과, 아드레날린 효과

중앙일보 2015.11.13 00:33 경제 11면 지면보기
<본선 32강전 B조>
○·펑리야오 4단 ●·나 현 5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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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보(92~101)=93으로 달려간다.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 못한 형태로 취약한 백 일단의 정수리를 두드리는 기분 좋은 일격! 프로, 아마를 막론하고 상대로 진로를 정면에서 가로막는 이런 수는 들판에서 초식동물의 무리를 홀로 덮치는 사자와 같은 강렬한 쾌감을 준다.

 고요히 상대를 응시하는 적연부동(寂然不動)의 자세가 잔잔한 호수처럼 평정한 마음을 만들어주는 세로토닌 효과라면 이쪽은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는 아드레날린 효과다.

 95, 96을 선수 교환하고 97로 젖혀간다. 94가 삶의 요소라면 이곳은 그 삶을 위협하는 급소. 아직 살의(殺意)가 짙게 풍기진 않지만 백의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참고도’처럼 서슬 퍼런 칼을 뽑을 수도 있다.

 98, 100. 조심조심, 살얼음판 같은 흑의 세력권에서 삶의 형태를 만들어간다. 여전히 미생(未生)이지만 완전한 삶을 구축하기만 하면 반격의 기회도 올 것이다. 음?

 문득, 미생을 말하고 보니까 국민만화 ‘미생’의 두 번째 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와 정신이 없다던 윤태호 작가의 즐거운 비명이 떠올랐다. 시작부터 수출보험에 얽힌 에피소드로 장그래에게 시련을 안겨줄 생각이라는데 바둑에서 말하는 실리와 세력, 두터움과 엷음의 이치를 어떻게 녹여낼지 기대가 된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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