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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Talk Talk] 찌질해도 다시 보자

중앙일보 2015.11.13 00:27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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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제일 바보같은 뒷북이 누군가의 성공을 본 뒤 “아, 내가 그 사람이랑 뭐 할뻔 했는데” 하는 겁니다. 기자의 흔한 뒷북 중 하나는 “아, 내가 그거 기사 쓰려고 했는데”이죠. 그 뒷북을 제가 울려보겠습니다. 둥둥둥~.

 2010년 초 수습기자가 기사 아이디어 발제란 숙제를 안고 씨름할 때였습니다. 궁하면 고향 찾는다고, 떠오르는 게 없으니 오랜 취미인 만화에서 생각의 단애를 얻고자 했습니다.

 당시 신인 작가 이말년의 만화가 제게 미칠듯한 웃음을 안기던 때였죠. 이른바 ‘병맛’이라는 코드가 막 피어나던 시절이었습니다. 황당한 전개와 어이없는 결말, 중학생이 그렸나 싶은 작화가 특징이죠. 이말년은 그 대표주자였고요. 병맛 만화에 젊은층이 반응하자 몇몇 기업이 ‘병맛 홍보 만화’를 시도했습니다. 자동차 광고인데 자동차를 타던 이가 교통사고로 죽는다든지, 스마트폰 광고인데 스마트폰을 보고 운전하다 길을 잃는다든지 하는 파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말년을 비롯한 몇몇 작가가 그렸지요. 그런데 취재해보니, 누적 조회수가 1억회를 넘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모아 ‘B급 만화의 경제효과’라는 기사안을 제출했더니 선배가 관심을 보였습니다. 문제는 다음이었죠. “그래, 어떤 만화인데?” 이말년 만화를 본 선배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림이…좀 심하다” 하더니 말을 잇지 못하더군요. 문화충격이었던 거죠. 저는 선배를 설득하려 하기보다는 ‘어쨌든 나는 숙제 했다’고 안도하고 넘어갔습니다. 지난주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이말년 작가가 출연하고 그의 억대 수입이 화제가 된 걸 보니 그때가 떠오르더군요. 여기서 포인트는 그의 그림 실력이 그대로라는 겁니다.

 요즘 트렌드라는 어떤 것들은 종종 수준 낮아 보입니다. 디지털 세상에선 더욱 그렇죠. 하지만 바로 그 찌질함 속에 이 시대가 소구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은지 짚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몇 년 전 우리가 웃어넘긴 ‘대륙’의 샤오미와 화웨이가 이미 일상을 점령했듯 말입니다.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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