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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통곡의 벽, 십자가 길, 사막의 요새…굴곡진 역사의 숨결 넘실~

[커버스토리] 통곡의 벽, 십자가 길, 사막의 요새…굴곡진 역사의 숨결 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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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는 역사적인 요새이자 전망 좋은 관광지다. 성벽에 서면 그 너머의 사해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이스라엘은 특정 종교의 성지만이 아니다. 되레 이스라엘은 다양한 문화와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나라에 가깝다. 예루살렘에 수 천년 역사를 헤아리는 유적이 수두룩하다면, 사해에서는 바다만큼 넓은 호수와 사막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스라엘에선 누구나 시간 여행자가 되고, 탐험가가 되고, 여유로운 여행자가 될 수 있다. 순례자가 아니어도 괜찮다.

구경거리 많은 이스라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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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시티의 골목 풍경. 기독교 교회 앞으로 정통 복장을 한 유대인과 아랍인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다양한 역사와 문화 - 예루살렘

예루살렘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올리브산(감람산·800m)을 올랐다. 성경에서는 예수가 승천한 장소가 올리브산에 있다고 했다. 지금의 올리브산은 도시 예루살렘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였다. 예루살렘의 복잡한 역사가 하나의 풍경으로 들어왔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올드시티(Old City) 안팎으로 이슬람 사원과 기독교 교회, 유대인의 공동묘지와 고층빌딩이 빽빽했다.

다마스쿠스문(Damascus Gate)을 통해 성 안쪽으로 들었다. 현지인은 무장 군인의 검문검색을 받았지만, 여행자는 무사 통과였다. 올드시티는 유대인·기독교인·아랍인·아르메니아인이 네 구역에 나뉘어 사는 독특한 성곽 도시다. 출입문 7개 중에서 어느 문으로 입장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과 만나게 되는 셈이다.

북쪽의 다마스쿠스문을 통과하면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꼬여 있는 아랍인 구역이 이어졌고, 남쪽의 분문(糞門·Dung Gate)을 거치면 유럽풍 건물과 넓은 광장을 품은 유대인 구역이 나왔다. 네 구역 사이에는 장벽이 놓인 게 아니어서 이동이 어렵지 않았다. 아랍 시장 골목에서도 검은색 정통 복장을 입은 유대인과 히잡을 두른 아랍인 여성이 옷깃을 스치며 지나갔다.

순례자에게도 경계는 무의미했다. 기독교인의 순례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십자가의 길)’는 아예 아랍인 구역의 골목길을 빌려 쓰고 있었다. 비아 돌로로사 14지점 가운데 예수가 십자가를 진 곳(2지점), 처음 쓰러진 곳(3지점) 등 8곳이 아랍인 구역 안에 있었다. 이슬람 구역에서 십자가를 파는 가게도 보였다.

시끌벅적한 시장길을 따라 오르니 어느 순간 골목 분위기가 바뀌었다. 기독교인 구역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로 들었다. 예수의 시신을 염했다는 바위와 예수의 무덤 앞은 엄숙하고도 분주했다. 감격에 겨워 흐느끼는 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가 경쟁하듯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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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00년 전 처음 세워진 유대교도의 성지 통곡의 벽.


유대인과 아랍인의 성지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어 상황이 더 복잡했다. 유대인 성지인 통곡의 벽(Wailing Wall) 바로 위에 마호메트 승천 장소인 이슬람 사원이 있었다. 유대인이 벽에 기대 기도를 하는 모습 위로 황금을 두른 바위 사원(Dome of Rock)이 겹쳐지는 풍경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전쟁을 몇 번이나 겪었는지, 통곡의 벽은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전혀 다른 구조였다. 가로 세로 1m의 바위 벽돌이 이어지다 말고, 다른 크기의 벽돌이 메워져 있었다.

“이스라엘에선 벽 하나에도 굴곡진 역사가 스며 있다”는 가이드의 말이 이해됐다. 통곡의 벽은 바닥에서부터 7단까지만 헤롯 시대(기원전 20년) 성전의 것이고, 그 위로 4단은 이슬람 시대(7세기), 나머지는 오스만 터키 시대(16세기)의 것이었다. 올드시티를 둘러싼 성벽도 400년을 훌쩍 넘겼단다. 올드시티에서는 골목을 지날 때마다 천 년 세월 정도는 가뿐히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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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뉴시티는 올드시티와 달리 현대적인 풍경이다.

성 바깥의 뉴시티는 또 달랐다. 성에서 15분 거리의 시온광장(Zion Square)과 벤 예후다(Ben Yehuda) 거리 일대는 예루살렘의 ‘명동’이자 ‘홍대 앞’이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와 음식점, 아기자기한 노점상이 수두룩했다. 버스킹과 거리 예술을 벌이는 젊은이의 풍경도 흔했다. 유대인의 음식 규율을 따르는 코셔푸드 가게도 수두룩했다. 코셔 간판을 단 ‘맥도널드’ 가게도 보였다. 유대인 규율이 고기와 유제품을 같이 못 먹게 해, 예루살렘의 맥도널드에서는 치즈버거도 카페라테도 없었다. 노천 카페에 앉아 잠시 여유를 즐겼다. 옆 자리의 거리 악사가 히브리어로 노래를 불렀다. 커피 맛이 오묘했다.



사막의 요새 또는 휴양지 - 사해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동쪽으로 방향을 틀자 곧 거칠고 망망한 사막 ‘유대 광야’의 품에 들었다. 유대 광야는 사방으로 바위산과 와디(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골짜기)가 널린 지루한 사막이다. 하나 신의 백성을 자처하는 이에게 이 거친 땅은 단순한 사막이 아니다. 예부터 이 황폐한 땅에서 구도자들이 은둔 생활을 하며 자신의 신념을 시험했다. 사막 끄트머리에 자리한 쿰란(Qumran) 국립공원의 동굴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수천 년 전 성서 『사해사본』 등 여러 유물이 발견됐다는 쿰란 동굴 주변은 나무 하나 없었다. 황폐한 풍경에서 세속을 떠나 은둔했던 유대인의 고난이 읽혔다.

쿰란부터는 본격적으로 사해(Dead Sea)가 펼쳐졌다. 사막 끝에 극적으로 펼쳐진 푸른 사해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물 건너로 희미하게 요르단 땅이 보였고, 남쪽으로 뻗은 사해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사해(810㎢)는 서울(605㎢)보다 큰 호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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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의 절벽에 놓인 가파른 계단. 그 뒤로 로마군이 쌓은 경사로와 그들의 옛 막사터가 보인다.


사해에 빠지긴 아직 일렀다. 사해를 마주한 거대한 요새 마사다(Masada)가 먼저였다. 유대인의 혼이 서려 있다는 마사다는 유대 광야 끝자락 바위산 정상에 있는 요새다. 높이 약 450m의 가파른 언덕 위의 평원에 2000년을 버틴 천혜의 방어기지가 숨어 있었다.

마사다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로 3분 거리였다.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는 비탈길이 나 있었지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니 사방이 열렸다. 너른 사해와 거친 유대 광야가 360도로 펼쳐졌다. 성벽 아래로는 곧장 깎아지른 낭떠러지였다. 가위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러나 마사다의 역사는 비극에 가깝다. 서기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자, 일부 유대인이 마사다로 도망쳤다. 죽음을 불사한 최후의 저항이었다. 당시 로마군은 마사다를 함락하는 데 자그마치 3년을 쏟았다. 땅에서부터 산 정상까지 흙을 쌓아 경사로를 구축한 것이다. 로마군이 마사다 턱밑까지 다다르자, 유대인은 집단 자결로 최후를 맞았다. 유대 왕국 종말의 순간이었다. 그 뒤로 디아스포라(Diaspora), 즉 유대인의 떠돌이 생활이 약 2000년간 이어졌다.

이스라엘 사람은 마사다의 비극을 영예로운 죽음, 그리고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교훈으로 받아들인다. 이날도 40도를 육박하는 무더위를 무릅쓰고 고난의 비탈길을 걸어서 오르내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마사다는 헤롯왕이 피신처로 지었다가 방어기지로 발전시킨 곳이다. 견고한 성벽 안에 헤롯왕의 궁전 터와 목욕탕 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북쪽 절벽에는 헤롯왕을 위한 전망 좋은 테라스도 있었다. 마사다 서쪽으로는 로마군이 쌓아올린 가파른 경사로와 막사의 흔적이 선명했다. 무엇보다 천혜의 풍광이 전방위로 펼쳐졌다. 서쪽으로 바위산과 와디가 파도를 쳤고, 동쪽으로는 육지와 만나 급격히 좁아지는 사해의 허리가 내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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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는 염분이 많아 몸이 저절로 뜨는 신기한 호수다.


마사다에서 남쪽으로 내달리니 사해를 마주보는 리조트가 연달아 나왔다. 사해는 세계적인 휴양지가 된 지 오래였다. 사해와 그 주변의 진흙이 피부병을 치유하는데 탁월하고, 미용 효과가 뛰어나다고 알려진 덕분이다. 물 위에 몸이 뜨는 이색적인 재미도 한몫했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은 바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해는 호수다. 바다보다 5배나 염분이 많은 호수다.

숙소에 짐을 풀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아니 바다에 몸을 뉘었다. 바다처럼 짠 호수는 온몸을 가뿐히 들어올렸다. 사해는 평온했다. 모두가 물 위를 떠다니며 망중한을 즐겼다. 진흙으로 온몸을 두르고 단잠에 빠졌다. 피부가 비현실적으로 부드러워졌다. 아직 꿈 속인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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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이스라엘의 대부분 지역은 외교부가 정한 ‘여행자제’ 구역에 포함된다. 여행을 막지는 않지만 신변 안전을 위해 주의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행자가 해를 입는 사례는 거의 없다. 그래도 종교적인 장소에서 오해를 부를 수 있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한국보다 7시간 늦다. 이스라엘 화폐는 셰켈인데, 1셰켈이 약 295원이다. 이스라엘 국민의 약 80%가 유대교인으로, 안식일(금요일 해질 녘부터 토요일 해질 녘까지)에는 상점 대부분이 문을 닫는다. 예루살렘에는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상점이 더러 있어 환전이 필수다. 이스라엘의 11월 날씨는 평균온도가 15도 정도로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와 비슷한 편이다. 12월부터는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편이어서 외투를 챙겨 입어야 한다. 대한항공이 인천~텔아비브 직항편을 주 3회 띄운다. 약 12시간 걸린다. 여행사 베스트래블(bestravel.co.kr)이 예루살렘∼사해∼티베리아스∼텔아비브 여정의 7박9일 패키지 상품을 운영한다. 1인 약 440만원. 02-397-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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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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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뉴시티 시온광장 일대는 우리의 `홍대앞`과 비슷한 젊음의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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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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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뉴시티 시온광장 일대는 우리의 `홍대앞`과 비슷한 젊음의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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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뉴시티 시온광장 일대는 우리의 `홍대앞`과 비슷한 젊음의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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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다마스쿠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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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시티 아랍인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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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로 오르는 케이블카. 멀리 사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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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에서 본 유대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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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감시탑 등 요새의 흔적이 마사다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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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위 바위산에 자리한 마사다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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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풍경. 건너편은 요르단의 영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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