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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대기업에 외국 변호사 1000명 … 실제 등록자는 89명뿐

중앙일보 2015.11.12 01:55 종합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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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신격호(92)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신임 비서실장으로 선임한 나승기(47)씨는 선임 직후 변호사 사칭 논란에 휩싸였다. 회사 측이 나씨를 소개하는 보도자료에 ‘법무법인 두우 출신의 변호사’라고 적었는데 실제로는 그가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 등록을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로스쿨을 졸업한 나씨는 “두우에서 외국법 자문만 했다. 변호사라고 쓴 것은 잘못”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나씨를 외국법자문사법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변호사들의 변호사 명칭 사용, 법률자문 행위가 불법임을 각인시키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법무부 승인, 변협 등록해야 자격
인터넷 ‘미·중 변호사’ 선전하지만
미등록 땐 외국법 자문도 안 돼
로펌들 “심사 요건 너무 까다롭다”

 실제로 국내 대형 로펌들은 외국 변호사 보유 현황을 강점으로 선전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선 ‘미국·중국·일본 변호사’ 등의 광고가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가 변호사 명칭을 쓰거나 법률자문 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사실상 ‘무자격자’들이다.

 현행법상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은 법무부에서 외국법 자문사 자격을 승인받고 변협에 등록해야 국내에서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다. 승인·등록 없이는 ‘미국 변호사’ ‘중국 변호사’ 등의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외국법 자문도 응해선 안 된다. 이를 어기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외국 변호사는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앤장(139명), 광장(70명), 태평양(50명) 등 10대 로펌에 400여 명, 대기업 사내 변호사 600명가량이다. 하지만 2009년 외국법자문사법 제정 후 올 10월까지 변협에 외국법 자문사로 등록한 이는 89명뿐이다. 서울변회 김한규 회장은 “89명도 외국계 로펌 변호사가 대부분이다. 국내 외국 변호사의 90% 이상이 변호사를 사칭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최근 서울변회는 네이버 인물정보에 ‘○○법률사무소 미국 변호사’로 표시한 이모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변협은 로펌 홈페이지에 ‘이민법률사무소’ ‘이민법 전문 미국 변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모씨 등 31명에 대해 외국법자문사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변협 측은 “대형 로펌 등이 ‘외국 변호사가 계약서 번역 등 한국 변호사의 보조 업무 범위 안에서만 일한다’고 주장하면 위법 행위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검찰 고발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6년간 검찰이 외국법자문사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벌인 사건은 2건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대형 로펌 등은 “국내 법률시장 보호를 이유로 외국법 자문사 등록 요건을 까다롭게 만든 탓에 ‘무등록’ 외국 변호사가 양산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외국법 자문사 자격을 얻으려면 외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해당국에서 3년 이상 법률 사무를 수행한 경력이 필요하다”며 “해외 국적자가 아니고선 비자 문제 등으로 이 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변협 관계자는 “외국 변호사 등록을 하면 사건 수임자료 제출 의무 등이 생긴다”며 “법무부 등의 관리감독을 받기 싫어 등록을 꺼리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외국 변호사 수가 급증하면서 관리감독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법적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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