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3년 조훈현(가운데)·이시다 요시오 초단의 국제전화 대국.[사진 한국기원]
1963년 1월 6일 오전 10시25분. 당시 서울 중학동에 있었던 한국일보 사장실에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전화기에 꽂혔다. 조남철 8단이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일본 도쿄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당시 열 살이었던 조훈현 초단이 조남철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조훈현은 홀로 바둑판 앞에 앉아 무언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조남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훈현에게 신호를 보냈다. 흑돌을 든 조훈현이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바둑판 위에 돌을 내려놓았다. 착점 위치를 확인한 조남철이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흑 17의 4.”
17일까지 인사동서 특별전
이창호 최연소 세계 제패 등
사진으로‘반상의 기적’정리
조남철·안영이 유물 전시도
곧이어 도쿄의 데이코쿠(帝國)호텔에서도 바둑알 놓는 소리가 들렸다. 조훈현처럼 홀로 바둑판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이시다 요시오(石田芳夫·당시 14세) 초단. 조훈현과 함께 당대의 천재 소년으로 꼽히는 기사였다. 조훈현과 이시다는 각각 서울과 도쿄에서 전화를 통해 서로의 착점을 확인하며 3시간에 걸쳐 혈전을 벌였다. 결과는 조훈현의 완패. 이날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던 소년은 훗날 바둑사를 뒤바꾼 ‘바둑 황제’로 성장한다.
이 사진은 세계 최초로 ‘국제전화 대국’이 열리는 순간을 포착했다. 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는 멀리 떨어진 사람과 바둑을 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편지뿐이었다. 종이에 바둑판을 그려 한 수씩 더해가며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식으로 대국이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한 판의 바둑을 두기 위해서는 몇 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당시 전화 대국은 멀리 떨어진 대국자를 연결하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한국 현대바둑사의 역사적인 순간을 조명하는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1층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 주제는 ‘위대한 여정’이다. 45년 11월 조남철이 한성기원(한국기원의 전신)을 세운 것을 기점으로 한국 현대바둑의 70년 역사를 돌아본다.

92년 제3회 동양증권배에서 이창호(오른쪽·당시 17세) 9단은 세계 최연소 챔피언을 차지했다.[사진 한국기원]

90년 백두산 천지에서 열린 조훈현(왼쪽)·유창혁 9단의 제2기 기성전 도전기 2국.[사진 한국기원]
한편 전시 기간에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 9단의 사인회가 열린다. 관람객 중 선착순 5000명에게는 웹툰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 캐릭터가 그려진 서류 파일을 나눠 준다. 관람료는 무료. 02-733-1981.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