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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경찰 반말에 항의하다 기소된 30대 무죄 선고

중앙일보 2015.11.10 10:19
지난 9월 6일 오전 5시쯤 대전시 서구 둔산로 H포장마차 앞길.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걸어가던 정모(38)씨는 경적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경찰 순찰차가 연신 경적을 울리며 길을 비켜달라고 요구했다. 술에 취한 정씨가 길을 비키지 않자 순찰차에 타고 있던 경찰이 반말로 “비켜”라고 외쳤다.

경찰의 반말에 화가 난 정씨는 순찰차의 진행을 막았다. 경찰은 정씨가 공무집행을 방해한다며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수갑을 채우려고 했다. 정씨는 경찰이 먼저 자신에게 반말을 했다며 거칠게 항의했다. 순찰차의 보닛을 내리치는 등 20여 분간 난동도 부렸다. 경찰에 체포된 정씨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법원은 정씨의 행동이 경찰의 부적법한 체포에 항의하는 정당행위로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전지법 형사8단독 이혜린 판사는 9일 “피고인이 단순히 길에 서서 순찰차를 비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공무집행방해죄에서 말하는 폭행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경찰은 재판과정에서 “정씨가 난동을 부린 게 체포되기 전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각 증거들을 살펴본 결과 피고인이 억울하게 체포되는 과정에서 난동을 부린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이 강제로 수갑을 채우려고 했기 때문에 정씨가 항의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경찰이 평소 다른 사건과는 다르게 현장을 촬영한 CC(폐쇄회로)TV나 순찰차에 부착된 블랙박스 영상·녹음물을 제출하지 않은 점도 경찰의 주장을 믿을 수 없는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순찰차가 진행하던 곳은 인도가 없어 평상시에도 통행인이 많고 주말이나 야간에는 오히려 차량 통행이 드물다”며 “경찰관에게 항의할 다른 방법이 없던 정씨의 행동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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