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섯 살 남자아이 ‘제제’는 왜 망사스타킹을 신고 있나

중앙일보 2015.11.10 01:25 종합 16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가수 아이유

가수 아이유의 신곡 ‘제제’를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노랫말서 성적 대상화” 주장 제기
'표현의 자유' 놓고 문화계 내분
이외수 “작품에 손대지 말아야”
허지웅 “작품이 박제되길 바라나”

 1978년 국내 첫 출간 이래 300만 부 넘게 팔린 브라질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주인공 제제에 대한 재해석이 발단이 됐다. 논란의 핵심은 노래 가사 중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해도 어딘가는 더러워/여기서 제일 어린잎을 가져가/하나뿐인 꽃을 꺾어가…” 등의 표현과 앨범 재킷 삽화에 망사스타킹을 신은 채 누워 있어 ‘핀업걸’을 연상시키는 제제의 모습이다. 국내에서 이 책을 출간한 동녘출판사는 지난 5일 페이스북에 “다섯 살 제제를 성적 대상으로 삼은 건 매우 유감스러운 부분”이라는 글을 올려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문화평론가 진중권·허지웅씨 등이 트위터를 통해 “문학에 표준적 해석을 들이댄다”며 반발했다.

 
기사 이미지

가수 아이유의 신곡 ‘제제’가 수록된 음반 ‘챗셔’의 재킷.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주인공 제제가 망사스타킹을 신고 누운 모습이다.

이번 논란이 주목받는 것은 그동안 ‘표현의 자유’를 강조해 왔던 문화계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이외수씨가 대표적. 이씨는 ‘제제’ 논란을 두고 6일 오전 트위터에서 “전시장에 가면, 작품에 손대지 마세요, 라는 경고문을 보게 됩니다. 왜 손대지 말아야 할까요”라고 지적했다. 아이유의 재해석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힌 것이다. 결국 아이유가 6일 오후 직접 나서 “다섯 살 어린아이를 성적 대상화하려는 의도로 가사를 쓰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평론가 허씨가 다시 트위터에서 “(이외수 작가님은) 자기 작품이 박물관 안에서 박제되기를 바라는 모양”이라고 비꼬자 이씨는 7일 “오스카 와일드는 평론가에 대해 ‘전봇대만 보면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는 개와 흡사하다’는 논지로 말했다”며 응수했다.

 
기사 이미지
 아예 음원을 폐기시켜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도 나왔다. 영화 ‘소원’(2013년·이준익 감독)의 작가 소재원씨는 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문제의 노래는 아동학대, 아동 성범죄를 떠올리게 만들어졌다”며 “제제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원’은 아동 성폭력에 희생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인터넷 커뮤니티 ‘다음’ 아고라에도 ‘아이유의 제제 음원 폐기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6일 올라왔다. 이후 사흘 만인 9일 현재 3만3750명이 서명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라는 작품이 갖는 특수성을 지목했다. 단국대 포르투갈어과 박원복(브라질 문학 전공) 교수는 “이 책은 국내에서 세대를 초월해 인기를 끈 작품”이라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던 제제의 이미지가 급격히 달라지니 당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대 김석호(사회학과) 교수는 “상상력이나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제제’는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주재용(한동대 언론정보문화학4) 인턴기자 pirate@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