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호근 칼럼] 집필(執筆)과 친교(親交)

중앙일보 2015.11.10 00:28 종합 35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술이 원수(怨讐)다. 초야에 묻혀 안빈낙도하던 우리의 최몽룡 교수가 조정의 부름을 받지 않았다면 독야청청 살 수 있었을 텐데. 아니 두주불사 송강(松江) 선생처럼 나 홀로 취흥을 ‘장진주사(將進酒辭)’ 같은 조선 최고의 시가로 뽑아낼 수 있었을 텐데. 과욕이었던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교과서로 환생시키는 그 원대한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낙마하고 말았다. 국정 집필진이란 조선시대로 말하면 사관(史官)일 터, 군주에게도 누설하지 않는 역사관을 관보(官報), 민보(民報) 기자들에게 진한 농담 섞어 다 털어놨으니 대참사가 일어난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금 맘대로 집필할 수 있는 사람 몇 안 될 거다.’ 최몽룡 교수의 이 말은 무슨 뜻인가? 학문적 권위를 발동해 정설이 아니라 개인 소신을 교과서에 싣겠다는 욕망의 분출이다. 그랬더라면 대참사는 교과서가 배포될 2017년 봄에 예정된 것인지 모른다. 조정의 호출을 받은 대표 집필진은 국사편찬위원장과 친분이 두텁고 학설을 공유한 학자다. ‘널리 최고의 학자를 구한다’는 건 희망사항일 뿐, 실제로는 친교 네트워크가 가동되기 일쑤다. 이 네트워크의 고리는 김부식이 관찬한 『삼국사기』(1142년)다. ‘삼국사기를 믿으면 진보, 안 믿으면 보수’라는 상황진단하에 최 교수는 ‘기록을 충실히 인용하겠다’고 밝혔다. 그 상황인식이 맞는지 모르지만, 『삼국사기』 연구의 권위자인 신형식 교수 역시 김부식의 일통삼한(一統三韓) 의식에 충실하다.

 
기사 이미지
‘맘대로 집필한다면’ 고대사가 어떻게 될까. 최 교수는 과거 교과서에서 ‘단군이 고조선을 B.C. 2333년에 건국했다’고 단정적으로 썼는데, 단군을 아예 빼먹은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로 일소한 신채호와 민족사학의 맹렬한 비난을 의식한 듯 보인다. 그러면서 백제 풍납토성 연대기를 기원전으로 끌어올려 김부식의 ‘삼국’을 확장하고 싶다. 실증사학과 민족사학을 진자운동하는 그가 정작 김부식에 충실하다면 『삼국사기』가 취급하지 않은 대가야, 발해 같은 고대국가의 존재는 어떻게 배치할까. 맘대로 집필에 신화가 끼어든다. 신형식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통일신라의 문화적 개방성을 강조한 김정배 위원장을 높이 평가했다. 통일신라의 위상을 확장하는 것은 역시 개인 소신이겠으나 신채호·문일평 계보를 잇는 학자들의 부정적 견해도 만만치 않다. 『삼국사기』를 고리로 한 친교 네트워크가 고대사 서술을 결정할 뻔했다.

그렇다면 근현대사는? 신형식 교수는 ‘나는 잘 모른다’고 했다. 고대사만으로도 벅찬 터에 솔직한 답변이었지만, 대표 집필자로서는 좀 무성의한 발언이었다. ‘여러 입장을 고루 반영하겠다’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만, ‘그건 나의 업무가 아니다’로 들렸으니 말이다. 근현대사엔 고대사 이상의 논란거리가 가득하다. 가장 예민한 쟁점이 ‘대한민국 건국’이다. 세계 10위 무역대국의 헌법에 ‘건국’이란 당당한 말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1948년 정부수립설(說)과 1919년 임시정부설(說)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는 국민을 대표하는 명망가들이 ‘대한민국’ 국호와 헌법을 제정하고 독립운동을 주관했던 민족 대표기관이었다. 임시정부가 있었기에 민족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었지만 운명적으로 ‘정식 정부’는 아니었다. 정식 정부는 전후의 숨가쁜 국제역학 속에서 최초의 보통선거를 통해 1948년 탄생했다. 그렇다면 국가 정통성은 어디에 있는가? 임시정부, 혹은 정식 정부? 1987년 개정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로 서술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민족’에 방점을 둔 진보학자들은 독립운동 대표설을 주장하고, ‘국가요건’에 초점을 둔 보수학자들은 근대 국민국가에 주목해 이승만 정부를 내세운다. 그래서 김구냐, 이승만이냐? 접전이 뜨겁다. 여기에 건준의 여운형은? 중도의 김규식은? 이런 질문이 끼어들면 드디어 헷갈리기 시작한다. 여기도 친교 네트워크를 가동하면 간단히 풀린다. 그러나 ‘올바른 교과서’는 아니다. 역사가 사관(史觀)인 한 ‘나은 교과서’는 있어도 ‘올바른 교과서’는 없다.

‘나은 교과서’란 이런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가령, 인류 최대의 악마를 잉태한 독일이 참회의 방식으로 창립한 연방정치교육원은 ‘보이텔스바허 합의’를 만들었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Bildung), 특히 의견 대립이 첨예한 역사, 정치교육에서 그렇다. 입장 강요 금지, 논쟁 사안 그대로 소개, 배우는 자의 관심 중시(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최영돈 교수의 글 참조) 원칙이 그것이다. 논쟁 사안은 양쪽의 입장을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 올바른 교과서보다 천 배 낫다. 그런데 ‘기필코 국정!’과 ‘필사 저지!’가 시정의 담론을 초토화한 이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까? ‘우정찬조출연’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집필자가 속출하는 한, ‘친교(親交)적 집필’은 ‘사교(私交)적 집필’ 혹은 ‘사교(私敎)적 집필’이 된다. 딸깍발이 역사학자들이 이래저래 우세 당하기 쉬운 계절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