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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교과서 선택은 누가 해야 할까

중앙일보 2015.11.10 00:10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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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시장경제의 핵심은 모든 의사결정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 서로 경쟁하면서 가격이 결정되고 거래가 이뤄진다. 지난 백여 년 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사회주의와 계획경제 간의 체제 경쟁에서 최종적으로 시장경제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경제는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이다. 한 때 세계 휴대폰 시장을 주름잡던 절대강자 노키아도 혁신을 게을리 하자 소비자에게 바로 외면당했다. 그 자리를 현재, 노키아보다 효율적인 애플과 삼성, 샤오미가 차지하고 있다. 비효율적인 공급자는 경쟁에서 탈락하고 자연 도태되는 시스템이기에 지금처럼 자고나면 새로운 기능과 디자인이 결합된 첨단 제품이 등장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교육시장에 과연 경쟁이 존재하는가? 우리 교육은 불행하게도 수요에는 경쟁이 있지만 공급에는 경쟁이 없다. 대한민국 공교육은 사실상 배급제다. 학교·학년·반·교사와 같은 하드웨어는 물론이고 교과목·교과서 등 무엇을 배울 지와 관련된 소프트웨어도 국가가 결정한다. 획일적인 교육에 지친 학부모는 자식을 위해 먼 타국으로 떠나거나, 어쩔 수 없이 기러기아빠로 남아 가족 간 생이별을 하기도 한다. 대입 예비고사가 시작된 1969년 이후 대학입시 제도는 무려 38번 바뀌었다고 한다. 1년 3개월에 한 번 꼴로 새로운 대입제도가 시행됐다는 의미다.

 국가가 독점하는 교육 공급에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국가는 통제받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고 언론을 통해 견제를 받는다. 국가는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거꾸로 국가 역시 국민에 의해 통제와 감시를 받는다. 이런 상호적인 시스템이기에 국민은 국가의 결정을 큰 무리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이 굴러가는 이유다.

 우리나라 교육은 모든 결정권이 국가에 있지만 예외도 있다. 교과서 결정권은 국가가 아닌 교사가 갖는다. 수학이나 과학, 영어는 가치판단과 이념이 반영되지 않는다. 반면 사회과학은 관점에 따라 상반된 의견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과 과목의 교과서 선택권이 두세 명의 교사에게 있다는 점이다. 소수 교사만이 선택권을 갖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

 전국에는 5000만 명의 소비자가 있고, 2만여 개의 약국이 있다. 얼핏 다수의 수요자와 다수의 공급자가 존재하는 완전경쟁시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외딴 섬에 약국이 하나밖에 없다면 이는 완전 지역독점이다. 섬 주민은 다른 약국을 선택할 자유도 없고 그렇다고 인터넷으로 약을 주문할 수도 없다. 만약 약사가 독점 권력을 악용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교육 수요자는 마치 외딴 섬에 달랑 하나 있는 약국의 소비자와 같은 처지다. 교과서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전국에 수십만 교사가 있다고 하나 특정과목에서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과목별로 만나는 교사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수요자는 소수의 교사들이 정한 교과서를 바꾸거나 거부할 자유가 없다. 선택의 자유, 경쟁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교과서 시장은 두세 명의 교사에 의한 전형적인 지역독과점 시장이다. 시장 실패다. 더 큰 문제는 소수 교사들의 권력은 국가처럼 국민의 견제와 감시도 받지 않는다.

 독과점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방법은 수요자가 교과서를 선택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게 가능할까? 자녀를 학교에 맡긴 학부모는 혹시 자녀가 잘못되면 어쩌나 마음 졸이며 학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을’의 입장이다. 어떤 학부모가 학교와 선생님의 뜻에 반해서 솔직하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환경에서 수요자에게 교과서 선택권을 주자는 주장은 허울 좋은 공허한 말일 뿐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있는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즉, 교과서 논쟁의 본질은 두세 명 교사의 선택을 믿을 것이지, 아니면 국가의 선택을 믿을 것인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애초에 수요자의 자유로운 선택이 어렵다면, 누구의 권력이 국민의 견제와 감시를 받을지 명확히 해보자. 방치된 권력인 두세 명의 교사와 통제된 권력인 국가 중, 누가 수요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까.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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