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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학창시절 나처럼 아이도 왕따 될까 두려워

중앙일보 2015.11.10 00:09 강남통신 1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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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쁜 기억에 고통받는 30대 엄마) 세 살과 일곱 살 아이를 둔 35세 엄마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왕따, 정확하게는 은따를 당했습니다. 제가 왜 은따를 당했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여러 친구와 친하게 지내며 우르르 잘 어울렸습니다. 한데 나중엔 항상 은따가 됐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모두 저는 은따였습니다.

어떻게 키워야 따돌림 안 당할까


사회에 나와서는 잘 적응하고 있지만 항상 맘속으로 은따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상처받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들 때문에 불안합니다. 아이들이란 잘 놀다가도 조금만 안 맞으면 ‘안 놀아’ 하며 다툴 수 있는데, 저는 그게 따돌림당하는 건 줄 알고 혼자 움찔합니다.

이런  마음을 누구한테 털어놓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마음 졸여야 할까요. 특히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 정말 답답합니다.

실제 따돌림보다 부모의 불안이 문제

 A (자신을 다그치지 말라는 윤 교수) 은따란 단어가 생소해 검색해 보니 은근한 왕따를 은따라고 하는군요. 주변 젊은 분들은 그 단어를 알고 있다고 해서 저도 은근 소외감이 느껴졌습니다. 사연 주신 분은 과거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자녀 양육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호소하고 계시지만 객관적으로는 결혼생활 등 사회 적응에 큰 문제가 없는 상황입니다. 마음을 졸이며 산다고 하셨는데 사연 내용을 보면 현재 당장 문제가 있다기보다 예기불안, 즉 ‘앞으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하는 염려가 마음을 졸이는 주된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마 마음이 불안하면 자녀와 불안 소통을 하기 쉬워집니다.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이 있는데 오랜만에 시험 성적을 잘 받아 왔습니다, 뭐라고 격려해 주시겠습니까. ‘아들, 잘했어. 하지만 여기서 멈춰선 안 돼’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죠. 불안 소통을 한 겁니다. 잘했다고 칭찬만 하면 아이가 열심히 안 할까 걱정되기에 ‘멈춰선 안 돼’라며 슬며시 불안감을 올려 동기부여를 하려는 것이죠.

 학생에겐 적당한 정도의 시험 불안이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것은 맞습니다. 이를 적정 스트레스 이론이라고 하는데요. 뇌에 적당히 불안 스트레스를 주어야 최대의 효과가 난다는 것이죠. 그러나 요즘 같은 불안사회에선 불안 소통법이 역효과만 내기 쉽습니다. 이미 아이들은 충분히 불안하기 때문이죠. 천하태평으로 보인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자기 마음에 대한 표현인 익숙지 않을 뿐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크죠. 불안이 나쁜 신호가 아니고 위기관리 행동을 일으키는 아주 중요한 감정 신호이지만 적정한 정도를 넘어가는 불안 스트레스는 오히려 뇌의 효율적 작동을 방해합니다. 공부 열심히 했는데 시험 성적을 잘 안 나오게 하는 주범이 과도한 시험 불안인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사연으로 돌아가 보면, 자녀가 친구와 놀다가 ‘너랑 안 놀아’란 이야기가 들리면 움찔하게 되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정말 답답하다고 하셨는데요. 자녀들이 실제로 따돌림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따돌림받으면 어떡하지’하는 엄마의 불안이 더 문제의 중심입니다. 엄마의 불안이 크다 보면 아이와도 불안 소통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아이도 불안해져서 대인 관계에서 사소한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쉽겠죠. 그래서 엄마의 불안이 큰 경우 자녀의 마음보다 먼저 엄마의 마음을 토닥거려 불안을 줄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자신을 더 몰아세우는 경우가 많죠.

당신은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입니다

그런데 좋은 엄마란 어떤 엄마일까요. 어렸을 때 겪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어머님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 여성분은 어머니가 오빠만 너무 사랑하고 자기한테 칭찬 한 번 해주지 않아 마음의 상처가 컸다며 어머니의 사랑을 받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 그 덕분에 공부도 잘했고 결혼도 어머니 원하는 시기에 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따뜻한 성격의 남편을 만나 잘살고 있지만 여전히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섭섭함이 깊숙이 남아 있어 대인 관계에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다고 합니다. 특히 현재 두 자녀가 있는데 자신의 어머니처럼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 너무 두렵고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되물어 보았습니다, “혹시 아이들이 엄마를 좋아하지 않나요, 만족스러워하고?” 그랬더니 “어떻게 아셨어요, 전 아직도 아이들만 보면 자신이 없고 미안한데 아이들은 절 좋아해서 더 미안할 때가 많아요”라고 하시더군요. 엄마는 아이와 잘 지낼 자신감이 없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엄마를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우리 엄만 최고다’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거죠. 왜일까요.

 엄마의 자신 없음이 엄마와 자녀 간에 정서적으로 적정거리를 확보하게 해서라 생각됩니다. 가까운 인간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는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 마음에 있는 사랑이란 욕구와 자유란 욕구가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에 그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고 하나가 되고 싶은데 상대방과 일치가 된다는 것은 결국 서로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돼버려 숨이 막히게 되죠.

 엄마가 하는 사랑의 표현에 대해 자녀들이 잔소리 그만하라며 짜증을 내는 것도 독립된 개체인 자신의 자유가 억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춘기 시절은 심리적 독립이라는 중요한 발달 과제를 완수해야 하는 시기라 자유 욕구가 큽니다. 그래서 엄마 이야기라면 보지도 않고 저항하는 모습까지 보여 마음 상하는 어머님들이 많습니다. 모든 걸 다 희생하며 아이들을 키웠는데 아이들이 저항을 하니 엄마의 속상한 마음이 이만저만 한 것이 아니죠.

 그런데 위 사례의 경우 엄마가 자신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보인 거리감이 오히려 아이들과의 적정거리를 유지 시켜 심리적 독립에 중요한 자유라는 감성을 지나치게 억압하지 않는 결과를 낳은 겁니다. 아이들이 심리적 독립을 잘 이룰 수 있고, 또 미안한 마음에 엄마가 아이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게 되니 아이들의 자존감도 올라가는 효과도 일어나게 됩니다. 자유와 칭찬을 주는 엄마, 아이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는 미안한데 아이들은 좋아해 주니 엄마는 아이들에게 더 미안하고 더 사랑하게 되는 거죠. 서로에 대해 내가 잘못해줘서 미안하다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랑의 관계가 있을까요. ‘내가 이렇게 너를 위해 희생했는데,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란 마음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엄마가 자녀의 성장에 영향력이 큰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엄마가 자녀를 성장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성장은 본인의 몫이죠. 과거 흔했던 10남매의 엄마는 아무리 애를 써도 한 아이에게 제한적인 관심만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한 자녀에게만 몰입하는 지금보다 그 시절 10남매가 잘못 성장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엄마가 자녀 성장에 중요하다는 여러 이론은 중요합니다만, 그렇다고 이것을 너무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아이 성장의 모든 책임이 엄마에게 있다는 식의 해석은 옳지 않습니다. 좋은 엄마의 정의를 저에게 물어보신다면 세끼 밥 먹여 주고, 정상적인 감성적 대화를 나누면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여기서 감성적인 대화란 엄청난 육아 지식이나 심리 지식을 가지고 하는 대화가 아니라 그냥 사랑을 머금은 따뜻한 일상의 대화를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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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잘 성장하는 게 엄마가 완벽한 성격으로 자신의 인생을 다 희생해야 가능한 일이라면 인류는 현재까지 유지되기 어렵지 않았을까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입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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