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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두는 복고…1980년대로 문화 여행

중앙일보 2015.11.10 00:03 라이프트렌드 1면 지면보기

한동안 1990년대 열풍 속에 빠져 있던 복고 트렌드는 이제 80년대에 이르렀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방영을 시작하면서 80년대로의 역주행은 한층 가속화할 전망이다.
옛 인기가요를 찾아 리메이크하는 JTBC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도 시청자들을 그 시절 추억 속에 젖게 하고 있다. 30년 전 흥행한 영화 ‘백 투 더 퓨처1, 2’도 영화 속의 시간여행 시점인 ‘2015년 10월 21일’에 맞춰 재개봉해 중장년층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직장인 최태성(46)씨는 요즘 1980년대 팝 음악과 영화에 빠져 산다. 심야 FM라디오에서 듣던 듀란듀란과 프린스, 건즈 앤 로지스의 그 시절 팝 명곡을 스마트폰에 넣어 출퇴근할 때 듣는다. 지난달 멀티플렉스에서 재개봉한 영화 ‘백 투 더 퓨처2’(1989)도 챙겨 봤다. 스크린에 비친 배우 마이클 J 폭스는 2편 동시상영관에서 가슴 두근거리며 영화를 관람하던 스무 살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그 시절 ‘남자다움의 교과서’였던 영화 ‘영웅본색’(1986)도 이달 26일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강씨는 고교 동창들과 영화 관람을 약속해 뒀다. 물론 드레스코드는 바바리코트(트렌치코트), 준비물은 성냥개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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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와 드라마, 음악, 먹거리를 찾아 즐기고 옛 패션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80년대 스타일이 대중문화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옛것 접하면 마음 따뜻해져

시장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과거와 현재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평가 결과를 지난달 발표했다. 조사 대상 10명 중 9명(85.8%)은 “사회가 불안할수록 옛것을 찾는 사람이 많다”, 10명 중 7명(73.9%)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건 지금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복고문화 열풍을 힘들고 어려운 시대상과 연결해 생각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디지털화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람을 복고문화의 인기가 보여준다는 의견도 83.3%에 달했다. 전체 10명 중 8명(80.1%)이 복고문화를 접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응답할 만큼 복고문화가 주는 정서적 효과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복고가 현재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는 데도 63.3%가 동의했다.

 가장 좋아하는 복고문화는 옛날 노래(53.5%·중복 응답)였으며, 과거 배경의 드라마(42.8%)와 영화(42.6%)에 대한 선호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명 중 7명(68.1%) 정도는 앞으로 복고문화가 지금보다 더 성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요즘 복고문화는 빠르게 식상해지고 있다는 의견은 26.9%에 그쳐 당분간은 복고문화의 인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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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장에서 먹던 느낌을 살려 출시한 뚜레쥬르의 ‘ 엄마랑 장볼 때 먹던 그때 그 도나쓰’.


이처럼 현실에 대한 불만과 회피로 복고문화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자 관련 제품들도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기존 백설햄에 80년대 디자인을 적용한 ‘백설햄 1988 에디션’을 선보였다. 비엔나·프랑크 소시지를 비롯해 사각햄·동그랑땡 같은 당시 제품에 추억과 향수가 담긴 디자인을 접목했다.






맛·디자인 그대로 살린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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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마크로밀엠브레인 트렌드 모니터 2015년 7월 1~20일,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2000명 대상 설문 결과

하이트진로도 1993년 단종된 ‘크라운맥주’를 22년 만에 한정판으로 내놨다. 롯데푸드 역시 최근 아이스크림 ‘삼강하드’를 새롭게 선보였고 해태제과도 ‘브라보콘 스페셜 에디션’을 한정판으로 선보였다. 뚜레쥬르는 ‘엄마랑 장볼 때 먹던 그때 그 도나쓰’를 출시했다. 옥수수 가루를 넣은 찹쌀 반죽을 튀겨 설탕을 바른 도너츠로, 투박한 종이 봉투에 담아 옛 시장에서 먹던 느낌을 살렸다. 이 제품은 구수한 맛과 저렴한 가격으로 고객을 사로잡아 목표 대비 120% 판매량을 달성하는 등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패션업계에도 복고 마케팅이 한창이다. 각종 진 브랜드는 스키니 팬츠 대신 통이 큰 와이드 팬츠를 주력 상품으로 내놨다. 국내외 패션쇼에서도 테이퍼드 핏 팬츠(허리에서 밑단으로 내려가며 점점 통이 좁아지는 바지)가 런웨이를 채웠다. 다양한 캐주얼 브랜드는 80년대 유행했던 맨투맨 티셔츠, 항공 점퍼, 체크 남방 같은 ‘복고 라인’을 선보이고 있다.

 

아날로그·디지털 세대 공감대

80년대로 옮겨가고 있는 복고 트렌드의 중심에는 40, 50대들이 있다. 80년대에 고교와 대학시절을 보낸 이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중심 세대가 됐다. 김현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최근 사회적으로 경직된 분위기, 침체된 경기로 심리적으로 무력감을 느끼게 된 사람들이 비슷한 무드의 80년대를 떠올리고 있다”며 “그 시절 향유했던 문화를 상기시키고 경험함으로써 현재를 돌파하려는 현상을 요즘의 ‘복고 트렌드’라고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힘들었고 풍족하진 않았지만 익숙한 것 자체가 주는 ‘편안함’을 즐기려는 것이 바로 80년대 문화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라고 덧붙였다.

 더 힘든 때를 돌아보며 그래도 지금 정도면 괜찮다고 위안하거나 옛 기억을 거울 삼아 오늘을 살아갈 힘과 교훈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복고 현상은 중장년층에게는 고교, 대학 시절 등 젊은날의 추억의 기제로,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대중문화의 코드로 다가가며 세대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하고 있다.

하현정 기자 happy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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