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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살리는 캐스팅의 힘

중앙일보 2015.11.09 11:11
[TV 보는 남자] 미스터리 살리는 캐스팅의 힘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기사 이미지

사진 = SBS


스릴러와 미스터리는 스크린에서는 자주 접하지만, 안방 극장에서는 희귀한 장르다. 그동안 국내 드라마는 멜로 드라마를 기반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와 가족극이 꽤 오랫동안 우위를 점해 왔다. ‘마을-아치아라의 비밀’(방영 중, SBS)은 브라운관에서 보기 힘들었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다.

강원도의 평화로운 마을 ‘아치아라(작은 연못)’에 암매장당한 시체가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같은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는 한 회가 끝날 때마다 조금씩 단서가 발견되면서 실마리가 풀리는, 단단하고 점층적인 구조로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중이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시골 마을을 공들여 담은 영상미는 물론, 공포감을 유발하는 음산한 음악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캐스팅의 힘을 보여주는 앙상블 연기가 인상적이다. 각 배우들의 전작을 떠올려 보면 이 캐스팅은 더욱 흥미롭다.

먼저 자신과 가족의 죽음이란 무서운 비밀 앞에 놓이는 주인공, 한소윤 역을 맡은 문근영은 영화 ‘장화, 홍련’(2003, 김지운 감독)에서 공포를 맞닥뜨린 여주인공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극 중 비밀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소녀 유나 역의 안서현은 영화 ‘하녀’(2010, 임상수 감독)와 ‘몬스터’(2014, 황인호 감독)에서도 베일에 쌓인 사건의 관찰자 역할로 등장했던 바 있다. 또한 야누스의 얼굴을 지닌 서기현 역의 온주완은 영화 ‘더 파이브’(2013, 정연식 감독)에서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닌 본인의 외모를 십분 활용했던 배우다.

이밖에도 다양한 주말극에서 진폭이 큰 감정 연기를 선보였던 신은경, 아름답지만 처연한 여성 캐릭터를 연기해 온 장희진, 정성주 작가와 안판석 감독 콤비의 드라마에서 ‘증인’처럼 날카로운 한 방을 선사했던 장소연까지,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캐스팅 논란에 휩싸였던 박우재 역의 육성재 또한 갑갑할 정도로 음산한 극의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드는 활력소로 제 몫을 충분히 해낸다. 아이돌 출신으로 특유의 매력과 해사함을 떠올려보면 오히려 신의 한 수라 할 만한 캐스팅이다.

이렇듯 전작의 기시감을 등에 업고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십분 활용한 캐스팅은 캐릭터의 결을 풍성하게 하며, 다양한 추측을 가능하게 만든다. ‘범인은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범인은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살해당한 피해자는 마을과 어떤 관계일까’라는 물음으로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와 배우의 존재감은 극의 재미를 높이고, 추리의 한 요소로 일조한다. 브라운관에서 보기 드문 스릴러의 장르적 특성을 강화하며,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한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천편일률적인 TV 드라마의 장르 편향성을 벗어나 다양성을 확장시키는 흥미로운 시도로서 충분히 유의미하다.


글=진명현. 노트북으로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 등 장르 불문하고 동영상을 다운받아 보는 남자. 영화사 ‘무브먼트’ 대표. 애잔함이라는 정서에 취하면 헤어나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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