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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메라를 든 테헤란의 택시 운전사

중앙일보 2015.11.09 10:58
[기획] 나는 카메라를 든 테헤란의 택시 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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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택시’

이란을 대표하는 감독 자파르 파나히(55)가 택시 기사로 변신했다. 영화를 찍기 위해서다. 2010년 이란 법원으로부터 20년 동안 영화를 제작·연출하는 행위를 금지당했다. 그래서 그는 자동차 계기판 위 화장지 통에 카메라를 숨긴 채 택시에 타는 승객의 모습을 찍었다. 파나히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인 극영화 ‘택시’(원제 Taxi, 11월 5일 개봉)는 그렇게 완성됐다. 올해 2월 열린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이 영화에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안기며 이렇게 말했다. “영화에 보내는 연애 편지 같은 작품이다. 파나히 감독이 그의 예술과 국민, 조국, 관객에게 바치는 사랑으로 가득한 영화다.” 파나히 감독이 보여준 이 특별한 사랑의 의미를 살펴본다.

‘택시’는 파나히 감독이 영화 연출을 금지당한 뒤 만든 세 번째 작품이다. 2010년 이란 법원은 그에게 6년의 구금을 명했다. 또 20년 동안 영화를 제작·연출할 수 없으며 시나리오를 써도 안 되고, 이란은 물론 해외 매체와 인터뷰를 해서도 안 된다고 선고했다. 출국 역시 금지됐다. 이후 가택에 연금된 파나히 감독은 각각 자신의 집과 별장에서 다큐멘터리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2011, 모즈타바 미르타마스브 감독과 공동 연출)와 극영화 ‘닫힌 커튼’(2013, 캄부지아 파르토비 감독과 공동 연출)을 비밀리에 연출했다. 두 작품 모두 영화 활동의 제약을 받는 파나히 감독의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그린다. 그리고 파나히 감독은 마침내 집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테헤란 시내를 돌며 ‘택시’를 찍었다. 물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다.

하지만 이란 정부가 파나히 감독이 영화를 계속 찍으려 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는 영화의 영상을 담은 USB를 케이크 안에 숨겨 운반한 끝에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고, ‘닫힌 커튼’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탔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파나히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건 불법이다. 하지만 세계 여론이 이란 법원의 결정을 비난하고 있고, 파나히 감독이 워낙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인물이라 이란 정부 역시 그를 함부로 처벌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2013년 개혁적 성향의 하산 로우하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파나히 감독도 가택 연금에서 풀려난 것으로 보인다.”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의 말이다. 김 프로그래머는 파나히 감독의 첫 장편 ‘하얀 풍선’(1995)을 제1회 부산영화제에 초청한 이후 지금껏 그와 인연을 이어왔다. ‘택시’가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된 뒤에도 이란 정부는 파나히 감독에게 별다른 처벌을 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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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극영화다. 파나히 감독이 운전하는 동안 총 여덟 명의 승객과 젊은 영화학도, 파나히 감독의 어린 조카(하나 사에이디)와 파나히 감독의 고향 친구가 택시를 타고 내린다. 창 밖으로 불법 CD를 파는 남자와 쓰레기 줍는 소년의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 남녀노소를 망라하는 그 인물들은 자기들끼리 사형 제도에 대해 설전을 벌이고, 불법 영화 DVD가 횡행하는 이란의 현실을 보여주며, 자기 잇속을 차리기도 한다. 또 어떤 승객은 자신들이 지닌 특별한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파나히 감독의 친구는 파나히 감독에게 정의와 인정(人情) 사이에서 고민하느라 괴로워하는 이야기를 털어놓고, 마지막 승객인 인권 변호사는 이란 사회의 개혁적 변화를 바라는 인사들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하는 이란 정부에 쓴소리를 던진다.

이 영화에 출연한 사람들은 파나히 감독의 지인 혹은 지인에게 소개 받은 이들로, 모두 비(非)전문 배우다. 특히 파나히 감독의 조카로 등장하는 꼬마 숙녀 하나와 불법 DVD 판매상 오미드, 인권 변호사 나스린 소투데는 그들 자신을 연기했다. 파나히 감독은 이들이 실제 할 법한 이야기를 그들의 대사로 썼다. 비전문 배우를 주로 기용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아주 사실적인 느낌의 영화를 만드는 건 파나히 감독, 나아가 1980년대 이후 그 흐름이 형성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이란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특징이다. 이란 사람들의 다양한 처지와 생각을 보여주는 등장인물을 통해 ‘택시’는 오늘날 테헤란의 풍경을 다각도로 비춘다. 그 풍경은 때로 격렬하고 가슴 아프고 절망적이지만, 영화는 나름의 평온과 웃음, 어떤 등장인물이든 따뜻하게 바라보는 휴머니즘의 시선을 놓지 않는다. 파나히 감독의 전작처럼 말이다. 이란이라는 나라는 그에게 더 이상 합법적으로 영화를 찍지 못하게 했지만, 파나히 감독은 여전히 자신의 조국과, 자신과 함께 이란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거장의 따스한 태도에 영화를 보는 이의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 어떤 것도 내가 영화를 만드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최후의 궁지에 몰렸을 때 내 안의 나와 대면했다. 그 순간, 어떤 제약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충동이 어느 때보다 강렬해졌다.” 파나히 감독의 말이다. 그는 원래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로 만들 계획이었다. 택시를 탔다가 함께 타고 있던 승객 둘이 언쟁을 벌이는 걸 본 파나히 감독은 택시 승객들이 자유로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다큐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그는 택시에 승객으로 타서 다른 승객들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곧 그를 알아본 한 승객이 ‘최소한 택시 안에서라도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을 치워 달라’고 했다. 그 일을 계기로 파나히 감독은 지금과 같은 형식의 극영화를 구상했다. 운전사와 승객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다큐멘터리 형식의 드라마로 엮어낸 건 이란의 또 다른 거장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텐’(2002)이란 영화에서 이미 시도했던 방식이다. 파나히 감독은 이란 정부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진짜 택시를 구했다. 택시 안에는 스태프들이 숨을 만한 공간이 없었다. 따라서 운전석에 앉은 파나히 감독이 카메라 위치를 조절하고, 현장음을 녹음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자신의 연기를 살피는 일을 동시에 해야 했다. 그는 지난해 9월 27일부터 그렇게 테헤란 시내를 돌며 보름 동안 촬영을 진행했다.

‘택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는, 파나히 감독의 조카인 하나가 학교에서 배운 ‘극장에 배급할 영화’의 조건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다. 남녀 간 접촉을 피하라, 폭력을 피하라, 추악한 리얼리즘을 피하라,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슈를 다루지 마라…. 엷은 웃음을 띈 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파나히 감독이 이제 그만하라며 하나를 말린다. 영화 말미에 하나가 파나히 감독에게 묻는다. “추악한 리얼리즘이 뭐예요?” 파나히 감독은 그에 답하는 대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진짜 리얼리즘, 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란의 가난한 현실이 생생한 감각으로 전달되는 가운데, 카메라 앞에 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가 놓여 있다. 택시 마지막 승객인 인권 변호사 나스린 소투데가 영화인들에게 바친 꽃이다. 그 풍경이 아름다운 리얼리즘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어떤 제약도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삶의 자유, 거장의 혜안을 옥죌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영화가 거룩하게 증명하고 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어떻게 이란의 거장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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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파나히는 단편을 만들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그의 영화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청했다. 그 결과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의 조감독으로 일했다. 이듬해 파나히 감독은 첫 장편인 극영화 ‘하얀 풍선’을 발표했다. 새해 풍속에 맞춰 금붕어를 사고 싶어 하는 소녀(아이다 모함마드카니)와 그 오빠(모흐센 카필리)의 여정을 담은 작품으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신인 감독상)을 수상했다. 마찬가지로 어린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극영화 ‘거울’(1997)을 만든 뒤, 파나히 감독은 세 번째 장편인 극영화 ‘써클’(2000)에서 좀 더 넓은 주제로 나아간다.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통해 이란의 여성 문제 전반을 그린 것.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이 영화에 황금사자상을 안겼다. 그의 영화가 이란에서 상영이 금지되고, 그가 이란 정부와 갈등을 빚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오프사이드’(2006) 역시 이란의 10대 소녀들이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남장한 채 경기장에 들어가려는 소동을 그린 극영화다. 이란 사회의 문제와 차별을 그리는 영화를 계속 만드는 이유에 대해 파나히 감독은 “이제 막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는 이란의 어린 영화인들을 위해, 우리는 한계를 극복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글=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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