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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떼이고 성희롱 당해도 속앓이만 … ‘을’ 변호사의 눈물

중앙일보 2015.11.09 01:33 종합 1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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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구성원 변호사) 1명이 빠져 법인 유지가 어려우니 구성원으로 등기를 하든지 아니면 나가라.”

초임들, 부당 노동 행위 시달려
재취업 어려워질라 소송도 못 해
"중요한 클라이언트 잘 모셔라"
구치소 ‘황제접견’ 집사로 부려
서울변회 ‘분쟁조정센터’ 설치

 한 소형 법무법인 대표가 6개월 의무 수습기간을 마치고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던 A변호사(33·변호사시험 4회)에게 최근 이같이 통보했다. 사회 초년생인 A변호사에겐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변호사법상 법무법인은 구성원으로 등기된 변호사가 3명 이상이 돼야 설립할 수 있고 구성원은 법인의 채무에 무한책임을 진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난 직후 A변호사의 놀란 가슴은 한 번 더 쿵했다. 직원들이 “이미 사무실 임대료도 3개월째 밀렸는데 신중하지 그랬느냐”고 귀띔해 주면서였다. A변호사는 “취업할 때까지 이미 수십 군데에서 거절당했는데 이번에 나가면 경력이 단절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B변호사(37·여·변시 2회)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난 7월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낸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냈더니 면접을 하자는 통보가 왔다. 그런데 면접 장소가 변호사 사무실이 아닌 ‘○○기업’이었다. 의아해하면서도 대표가 판사 출신 여성 변호사라서 면접을 봤다. 이틀 뒤 합격통보를 받은 B변호사는 첫 업무로 구치소 접견을 갔다가 깜짝 놀랐다. 대표 변호사와 함께 면접을 봤던 ○○기업 사장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전 사장이 구속됐다는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고 이후 그 사장을 접견하는 게 업무의 전부였다. 결국 일주일 만에 사표를 내고 나온 B변호사는 지인들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돌아와도 ‘중요한 클라이언트니 잘하라’는 대표에게는 입을 뗄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변호사 2만 명 시대를 맞아 법률시장이 포화되면서 ‘사장님’ 변호사들로부터 부당 근로조건, 부적절한 업무 강요 등으로 시달리는 고용 변호사가 늘어나고 있다. 가장 흔한 피해 사례는 임금체불이다. 사법시험 출신인 C변호사는 1년여 동안 다니던 법무법인을 지난 8월 그만두고 구직 전선에 다시 나섰다. 초기에는 체불돼도 한 달 안에 나오던 급여가 사직 전 3개월 동안은 아예 나오지 않았다. 대표 변호사에게 항의했지만 돌아온 건 “사정이 어려운데 너도 사건 수임에 신경 쓰라”는 식의 훈계뿐이었다. 퇴직금까지 포함해 1500만원이 넘는 돈을 못 받았지만 C변호사는 소송도 제기하지 못한 채 속앓이만 하고 있다. C변호사는 “서초동 바닥이 좁은데 대표와 소송 중이라는 게 알려지면 재취업도 어려워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가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변호사근로분쟁조정센터’를 설치해 변호사 고용과 관련된 분쟁에 적극 개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임 실적과 무관하게 고정급여를 받아온 고용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서울변회는 조정센터에 진정이 접수되면 사용자 변호사와 근로자 변호사 간 분쟁을 조정해주되 이 과정에서 사용자 변호사의 회칙 위반 사유가 발견되면 징계할 방침이다. 임금체불, 구성원 등기 강요, 기타 부당한 근로를 강요하는 행위 등이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일부 사용자 변호사의 행태는 도가 지나친 수준”이라며 “의뢰인이 변호사 채용 여부를 사실상 결정짓거나 무리한 접견을 강요하는 행위도 징계 대상”이라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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